7월 2일, CGV아트하우스에서 어른들을 위한 장르영화 기획전 ‘시네마 어덜트 베케이션(Cinema Adult Vacation)’이 열린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고전 공포 영화부터 인간의 심리와 광기를 다룬 다양한 영화들이 준비되어 있는 가운데, 유독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스왈로우>다. 제18회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 최우수여우주연상 등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어 삼키는(?) 공포를 제대로 보여준 이 작품을 미리 만나보자.
옥미나 | 영화 평론가
영화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배웁니다
<스왈로우>, ‘바디 호러’ 장르를 표방한 낯선 감각의 공포
<스왈로우>는 공포 영화의 하위 장르 중에 ‘바디 호러’에 해당한다. ‘바디 호러’는 그래픽 혹은 심리적 묘사를 통해서 인간의 신체를 왜곡하거나 위반하는 여러 영화들을 일컫는데, 신체 절단물인 슬래셔, 스플레터 뿐 아니라 기형적인 상태가 된 다음에도 죽지 않고 추적을 계속하는 좀비 영화들 역시 신체 공포물에 포함된다.
그에 비하면 <스왈로우>는 화면에 드러나는 폭력적인 이미지 대신 혀에 닿는 차가운 감촉, 입 안의 촉감, 식도를 넘어가는 묵직한 이물감을 상상하게 만들고 겪어본 적도 없는 날카롭고 선명한 찰과상의 고통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완전히 낯선 감각을 일깨우는 새로운 영화인 셈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허드슨강을 내려다보는 여자의 뒷모습에서 시작된다. 그녀의 이름은 헌터(헤일리 베넷).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해 욕실 용품을 판매하는 가게 점원으로 일했지만, 최근 부유한 남자와 결혼했다. 곧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맨하튼의 CEO가 될 리처드(오스틴 스토웰)는 자신의 성공을 아내의 덕으로 돌리는 다정한 남편이다. 호수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화려한 집, 수줍게 웃는 금발의 아름다운 아내. 여기까지는 딱 신데렐라 스토리의 결혼 해피엔딩 같다.
그러나 임신과 함께 완벽해 보였던 일상에는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임신에 대한 축하는 아무렇지도 않게 진통의 고통에 대한 경험담으로 이어지고, 가부장적인 가족의 산모 건강에 대한 염려와 안부에는 어쩐지 헌터의 외모와 신체를 통제하고 장악하려는 시도가 담긴 것처럼 들린다.
가족들은 여전히 예의 바르고 다정하게 헌터에게 질문하지만 막상 그녀의 대답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없고, 출신 계급과 경험의 차이는 사소한 살림 실수로 자꾸 돌출되어 헌터를 위축시킨다. 이제 창이 많아 전망이 좋던 집은 헌터를 가둔 유리 진열장처럼 느껴지고, 고립감이 선명해진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이 그저 ‘미래 CEO를 생산할 산모’가 아니라 본인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과 통제권을 가진 주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임신이 불러온 한 여성의 신체적·정신적 고통
<스왈로우>라는 제목은 중의적이다. 우리가 삼키는 것은 ‘음식’이기도 하지만, ‘감정’이기도 하다. 극 초반, 어린 양의 도살에서 이어지는 만찬의 이미지는 ‘먹는다’는 행위에서 본능과 야만의 흔적을 드러낸다. 소화할 수 있는 것을 삼키는 것이 ‘먹는다’라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식이행위라면, 소화할 수 없는, 먹을 수 없는,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삼키는 그녀의 행각은 ‘이식증(異食症)’의 병리적 증상이다. 이 질병은 격리와 감시가 필요한 정신 질환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성공을 거둔 남편의 가족에게 이식증을 앓는 헌터는 난데없는 악몽이자 남부끄러운 치부다. 당장 절연하고 내칠 수 없는 것은 헌터가 자신들의 핏줄을 품고 있는 산모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헌터를 치워버린 다음, 너그럽게 모든 치료비를 지불하고 출산까지 이혼을 유보하겠지만, 대신 태아의 소유권은 당연한 그들의 권리다.
<스왈로우>는 국가 사회적으로 장려되고, 즉각적인 축하의 대상이 되는 ‘임신’에 대해서 여성의 신체를 중심에 놓고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다. 불경하여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었던 임신의 불안과 공포를 인정하고, 헌터가 과거 어떤 감정과 기억을 뱉어내는 대신 그저 꾹꾹 삼켰길래 임신이 그녀에게 이식증을 촉발시켰는지를 추적한다. 임신, 출산, 부모, 자식, 가족. 어디에서 무엇이 어긋났던 것일까. 과연 헌터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영화의 아이디어는 감독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
다큐멘터리 <원스 어게인>의 연출을 맡기도 했던 카를로 미라벨라–다비스 감독은 영화의 아이디어가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고백한다. 1950년대 불행한 결혼생활을 버텨야 했던 그의 할머니가 강박적으로 손빨래에 집착하게 되었던 것. 결국 그녀는 일주일에 비누 4개와 세제 12통을 소비할 만큼 빨래를 거듭하다가 남편 손에 이끌려 강제로 정신 병원으로 옮겨졌고 각종 치료법을 거친 끝에 전두엽 절제술까지 받게 된다.
감독은 비극적으로 끝맺은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올바른 처신’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처벌받았던 여자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통제와 억압이 강박이 되고, 뱉아내는 대신 삼켜버렸던 감정이 결국 시간을 건너와 정신을 흔들어 놓을 때 <스왈로우>는 공포영화가 어떻게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편견과 맞서 싸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스왈로우>는 바디 호러 장르에 입각한 작품으로서도 신선한 충격을 안기지만, ‘임신’이란 축복이 정작 여성에겐 자신의 자아를 잃게 될 수 있다는 신선한 시각이 뇌리에 남는다. 이는 일련의 공포영화보다도 더 잔혹하며 그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 생채기가 날 줄 알지만 이내 그 날카로운 감정을 삼키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이 작품을 보는 것을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