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형편에 악기 전공을 해도 될지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CJ나눔재단에서 저의 가능성을 믿고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신 덕분에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감사함을 평생 기억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기악과 3학년 플루트 전공 변상훈(21) 씨는 주목받는 신예 플루티스트다. 2023년 국내 최고 권위의 클래식 음악 콩쿠르인 제63회 동아음악콩쿠르 플루트 부문에서 1위를 수상한데 이어 지난해 부산음악콩쿠르, 올해 해외파견콩쿠르까지 연속 1등을 차지하며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주위에선 그가 어려서부터 탄탄대로로 엘리트 음악 교육을 받았을 것이라 짐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변 씨는 지체장애가 있는 아버지, 음악을 전공한 어머니 밑에서 4남매 중 셋째로 녹록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다. 변 씨는 “정부 지원 없이는 생활이 힘들 정도로 어려운 환경이었다. 손을 내밀어준 분들이 없었다면 음악 전공은 꿈도 꾸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변 씨는 초등학교 방과후교실에서 어머니의 30년 전 낡은 플루트로 음악을 배웠다. 중학생 때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의 저소득 청소년 예술 지원 프로그램 ‘예술영재 발굴 아카데미’ 수업을 들으며 본격적으로 연주자의 꿈을 키웠다. “주변엔 비싼 악기로 초등학생 때부터 체계적으로 레슨을 받은 친구가 많았어요. 저희 집 형편을 생각하면 막막했지만, 꿈을 포기할 순 없으니 눈 딱 감고 죽을 힘을 다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변 씨의 어머니는 중학교 3학년 때 대출까지 받아 새 악기를 마련해 줬다.

그 무렵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을 통해 ‘CJ도너스캠프 장학’을 알게 됐다. 이 프로그램은 지역아동센터 청소년 중 예체능, 기술 등 특기 또는 학업 분야에 재능 있는 청소년을 발굴하고, 교육비, 멘토링, 심리상담과 함께 연간 최대 1,700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211명의 청소년이 장학 혜택을 받았다.
이후 변 씨는 충북예고 1학년 때부터 3년간 레슨비부터 콩쿠르 출전비까지 연간 평균 1400만 원을 CJ나눔재단에서 지원받았다. 변 씨는 “매년 지원할 때마다 ‘이번에 선정되지 않으면 음악을 그만둬야 한다’는 위기감을 갖고 간절히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형편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한 살 터울 친형이 투병하면서 금전적 어려움이 더 커졌다. “제가 아무리 열심히 음악을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 회의감이 들었어요. 지원해 주시는 건 감사했지만 제가 좋은 대학을 간다고 해서 형의 병이 낫는 것도 아니고, 우리 가족이 행복해질 것 같지 않아서 큰 우울감에 빠졌던 것 같아요.”
전환점이 된 건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참가했던 CJ도너스캠프 장학 문화 체험 캠프였다. 비슷한 환경의 또래 장학생들과 경험을 나누고, 가족의 아픔을 극복하고 좋은 학교에 입학해 과수석을 한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강한 동기부여를 받았다.
“그날의 경험이 입시 과정은 물론 대학에 입학해서도 쉬지 않고 달리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한 해에만 5개의 콩쿠르에 출전하며 음악에 매진했어요. 단 1년도 허투루 써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받은 지원을 돈으로 계산해서 보답할 수는 없지만, 열심히 살면서 더 어려운 친구들에게 돌려주자고 다짐했습니다.”

변 씨는 대학 입학 후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을 위해 CJ도너스캠프 장학 대학생 멘토로도 3년째 활동하고 있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저의 모습이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한다. 제가 받은 나눔이 더 큰 나눔으로 이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년엔 대학 입시를 앞두고 제대로 된 악기를 구하지 못해 고생하던 멘티 후배에게, 중학생 때 어머니가 대출까지 받아 마련해주신 플루트를 선뜻 빌려주기도 했다. “다른 고3들이 쓰는 악기엔 훨씬 못 미쳤지만 제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이었어요. 그 친구가 나눔에서 오는 기쁨까지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CJ도너스캠프 장학’이 단순한 금전 지원을 넘어 장학생 개개인의 상황과 필요를 세심하게 살피는 점이 특별하다고 말했다. 전공에 맞는 멘토 연결, 국내 정상급 연주자의 전문 멘토링 등 ‘맞춤형’ 지원이 장학생들에게 큰 힘이 된다. “기업이 운영하는 장학 프로그램에서 이런 퀄리티가 가능하다는 게 정말 놀라웠어요. 지원받는 학생끼리도 ‘우리는 참 특별한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변 씨는 재단과 CJ도너스캠프 관계자들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했다. “저를 선발하실 때 ‘이 친구가 스스로 인생을 이끌어갈 수 있는가, 지원을 받아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까’를 보고 뽑아주셨다고 들었어요. 이유 없는, 대가 없는 지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처럼 챙겨주시는 재단 선생님들과의 정서적 유대감이 저에겐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그는 지역아동센터 시절 CJ의 지원으로 문화예술 체험을 했던 기억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무대를 보며 예술적 시야를 넓혔고, 창작자들의 열정을 체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클래식 무대 밖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법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며 “음악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경험은 꿈과 원동력을 찾는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CJ도너스캠프는 저조차도 몰랐던 제 가능성을 믿어주고, 꿈꿀 기회를 만들어 줬어요. 저에겐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감사함을 평생 잊지 않고 저처럼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우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연주자로 살겠습니다”
20년 동안 키워 주셔서 이렇게 잘 자랐어요.
주신 사랑보다 더 많이 베풀고 싶어요.
아무도 없던 저한테 유일한 희망이었어요.
힘내서 달려갈 용기를 주셔서 모두 감사합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중앙예닮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완이화입니다.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부 25학번 이영찬입니다.
저는 한국 예술종합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플루트 전공 변상훈입니다.
고양 총시청 마라톤팀입니다.
저는 일단 부모님 두 분이 미얀마분이세요.
미안마의 소수민족인 카렌족이신데 저희 아빠가 미안마의 유명한 가수세요.
아빠가 콘서트도 되게 많이 하러 다니는데 가끔 아빠 무대 사기도 했었고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좀 노래를 자주 시켰던 거 같아요.
태국에서 제가 한 일곱살이 되었을 때 아버님 돌아가셔서
엄마랑 남동생이랑 2016년에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학교 반가우에 플루트 교실이 있어서 그때 우연치 않게 시작을 했고
집에 또 마침 엄마가 한 30년 전에 대학생 때 부셨던
낡은 플룻이 하나가 있었어서 저거 한번 불어보고 싶다.
악기가 되게 이쁘다 생각하고 막연하게 시작을 했었는데
제가 초등학교 때 지역 아동센터에 다녔었는데
그 지역 아동센터에서 학습지와 문제집 관련해서
되게 많은 지원을 해 주셨어요.
관련한 공부의 흥미가 좀 생겨서
그 과정에서 굉장히 열심히 공부를 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저가 조금 달리기를 잘 뛰어서
그 초등학교 코치 님한테 스카우트 제가 와서
그때 처음으로 육상을 시작하게 됐어요.
육상은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될 거 같지만
1년에 천만 원 이상 장비가 드는 운동이에요.
근데 가정편이 좋지 않고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육상을 계속 해야 되나 고민이 많았어요.
정부 지원을 받아야지만 살 수 있는 집안의
산매 중에 셋째였고 음악 전공을 한다는 거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는데
제가 다니던 지역아동 센터에 어 CJ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한번 플루스로 지원을 해봐라.
어 거의 3년 동안 레슨비를 전액정 지원받았고
콩크루도 거의 다 이제 CJ 도움으로
나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CJ 아니었으면 절대 못 했을 지원을
매년 해야 되는데 매년 할 때마다
아 이번에 안 되면 악기 그만둬야 된다
싶은 마음으로 좀 간절하게 준비를 했었던 거 같아요.
어 제가 사실 음악 동화를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하게 되었어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어 집안에 힘든 그런 마음들 잠 좀 순간순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꾸준히
음악 동아리 활동을 했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께서
이러한 좋은 장학 프로그램이 있다
한번 지원해 보는게 어떠냐 하셔서 지원했는데
감사하게도 장학생으로 선발해 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3남매 가정인데 세 명 다 학원을
보내기에는 조금 재정이 넉넉 지역 아동센터서
선생님께서 제가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
CJ 장학이라는 이러한 장학 제도가 있다라고
저에게 소개를 해주셨어요.
그 결과 좀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학습 지원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받으면서부터
잘 뛰 뛰기 시작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68 33m에서 1위
작년에 종국 체육대회에서는 3,m
장애을 1위 10km 1위를
했습니다. 그래서 국가대표 후보
상비군에 들어갈 수 있게 됐어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여기까지 왔는데
1년이라도 허트로 쓰고 싶지는 않았어
가지고 한 다섯 개 정도 콘크로를
도전을 했었던 거 같아요.
제가 이름을 알리게 된게 그 외국인
이주민 가요제라고
있었는데 제가 전설서
계셨는데 앞에 앉아 계신 아저씨께서
저 보면서 많이 와 지금 제 노래하는
영상을 보고 계셨던 거예요. 사실
음악이 아니었다면 되게 무너졌을 것
같아요. 상황적으로도 그렇고
실질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닥쳐와서
개시제의 지원을 통해서
좀 나의 음악을 마음껏 펼치고 배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저도 고등학생 때 그 멘티로 생활을
하면서 제 대학생 멘토 선생님께 되게
큰 도움을 많이 받았어서 이제 저도
대학생 멘토로서 나눔의 선수를
실천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대학생 멘토로 이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대학생
멘토 활동을 하면서는 제 멘티
학생들이 어 굉장히 열심히 하면서 잘
따라와 주는 모습을 보면서 되게
뿌듯함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첫 월급을 받고이 월급을 의미 있게
쓰고 싶어서 고민을 하다가 저에게
도움을 줬던 CJ에게 다시 기부를
하게 되었어요. 제 도움이 필요한
후배들이나 사람들이 있으면은 제가
가서 할 수 있는 거는 다 해 드리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더 열심히
훈련하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가수 활동을 하고
있잖아요. 받은 돈으로 미안마에 있는
아이들에게 기부를 해 준 적이
있어요.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저의
재능을 통해서 많은 아이들에게 또
제가 시제에게 받은 이런 사랑과
도움처럼 이렇게 자기의 꿈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사실 그때는 저의 가능성을 저
스스로도 몰랐는데
어떻게 나한테 한두 푼도 아닌 큰
금액을 지원을 해 주실 생각을
했을까? 선발 면접을 볼 때 정말이
친구가 스스로 인생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가? 어떻게 지원을 받아서 사회
일원으로서 이걸 다시 재현신할 수
있을까를 보셨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스스로는 자기 가능성을
판단하지 못하지만 뭔가 꿈꿔 볼 수
있는 기회라도 만들어 주셨던 거에
너무 감사하고 계속해서 이런 지원
사업을 통해서 더 꿈을 크게 키우고
더 나아가서 선한 영향력을 꿈꾸는
그런 어린 친구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흔결
절망한 영원이
안녕.
사랑아
사람으로 오래 살지 말고 사랑으로
뜨겁게에
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