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미쉐린 3스타 셰프가 눈앞에 있다. ‘요리계의 피카소’라 불리는 프랑스 미식의 거장 피에르 가니에르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그에게 자신의 요리를 시연하는 젊은 셰프들에게는 긴장과 기대의 표정이 공존했다. 보는 이마저 긴장되는 순간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요리 스타일로 각광받으며 금세기 최고의 요리사로 사랑받는 피에르 가니에르와 한국 셰프들의 만남을 취재했다.

퀴진케이, 한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다

지난 3월 28일, CJ제일제당센터 1층 CJ더키친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피에르 가니에르&퀴진케이 영셰프의 만남: 페리에 주에 샴페인과 한식의 페어링’이란 행사로 샴페인 브랜드 ‘페리에 주에’의 글로벌 앰배서더인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의 방한을 기념해 기획되었다.
이날 퀴진케이* 알럼나이(Alumni) 영셰프 7인은 팀 퀴진케이(Team Cuisine.K)를 구성, 거장에게 한국의 지역 대표 식재료를 프랑스 요리로 재해석한 메뉴를 선보였다. 한국과 프랑스의 미식 문화가 교차하는 순간이자, 한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간이었다.
*퀴진케이(Cuisine.K) 프로젝트는 CJ제일제당이 한식의 발전과 세계화를 목표로 추진하는 차세대 K-Food 셰프 육성 프로그램이다.
*퀴진케이 Alumni 7인: 신용준(주052), 엄지원(정식당), 최수빈(소울), 윤상희(CSC), 최현승(에스콘디도), 김하은(개인), 최유진(권숙수)

“오늘 저희 팀 퀴진케이는 대한민국 각 지방의 고유한 식재료와 조리법을 활용해 프렌치 요리로 재해석한 특별한 코스를 준비했습니다. 신선한 제철 재료와 독창적인 조화를 마음껏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부산 2025’에 미쉐린 셀렉티드로 등재된 ‘주052’의 오너셰프로 이번 팀 퀴진케이를 이끈 신용준 셰프의 상기된 목소리가 이번 코스의 컨셉을 설명했다.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긴장과 기대가 얽히고, 본격적인 테이스팅의 막이 올랐다.

셰프들의 진짜 무대는 바로 주방.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분명 ‘테이스팅’이겠지만, 거장의 첫걸음은 CJ더키친의 메인 공간이자 셰프들의 진면목을 살펴보는 ‘주방’이었다. 조리대 위 정갈히 놓인 제철 재료들 사이, 도마 위 셰프들의 칼이 리드미컬한 음악을 만들어 냈다.
영셰프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던 거장 셰프는 CJ더키친 곳곳을 살피고, 공간의 구성과 조리도구에 세세히 질문하여 관심을 보였다. 주방을 한 바퀴 돌아본 뒤, 셰프들과의 짧은 인사가 오갔다. 서로 다른 언어지만 손짓과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교감이 오갔고, 곧 자연스럽게 단체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낯선 긴장감 속에서도, 같은 무대 위에 섰다는 사실만으로 영셰프들의 얼굴엔 묘한 자부심과 설렘이 엿보였다.
프랑스 감성을 입은 한국의 식재료, 새로운 미식의 탄생
팀 퀴진케이가 첫 번째로 선보인 요리는 직접 수확한 농산물로 만든 한 입 거리와 충무깁밥 모티브의 충무감태밥. 이어서 ‘봄 한 접시’를 테마로 한 관자 요리, 영동의 오징어 순대를 오마주한 요리가 등장했다. 새로운 접시가 테이블에 오를 때마다 잠시 공기가 멈춘 듯 고요해졌다. 포크가 살짝 부딪치는 소리, 음식에 집중한 눈빛들만이 조용한 공간을 채웠다.


메인 요리가 등장하자, 참석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접시 위로 쏠렸다. 돼지의 모든 부위를 활용하는 한국의 식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한판 가득 돼지 여러 부위의 조화를 담은 요리는 보기만 해도 입안 가득 상상을 자극했다. 여기에 프랑스식 감각이 가미된 까라비네 젓갈과 돼지간 깜빠뉴가 곁들여졌고, 영암 간장과 9년 숙성 흑초를 베이스로 한 밀면이 히든 메뉴로 등장해 예상치 못한 감탄을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전통 한식 디저트 6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플레이팅은 정찬의 마무리를 우아하게 장식했다.
거장의 한마디, 퀴진케이의 가능성을 말하다

모든 테이스팅이 끝난 뒤, 테이블엔 차분한 감상과 시식평이 오갔다. “한국의 식재료가 세련되게 정제되어 프랑스 퀴진 스타일로 변주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물랑 윤예랑 셰프, 소울 김희은 셰프 등 업계의 전문가들도 이들의 요리를 맛보고 시식평을 전했다. 오랜 경험과 전문성, 요리에 진심을 다해보지 않은 이라면 언뜻 이야기할 수 없는 감상이었다. 직접 맛볼 수는 없었지만, 내가 잠시 거장들의 ‘미식의 신세계’를 엿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 행사의 중심에 있던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가 입을 열었다. 요리 하나하나에 대한 평가 대신, 그는 전체적인 인상을 짧고 굵게 남겼다. “만약 누군가 ‘이 식당에 다시 오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다시 오겠다고 대답할 겁니다.” 짧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팀 퀴진케이가 보여준 한식의 가능성과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순간, 긴장했던 영셰프들의 얼굴에도 서서히 안도와 뿌듯함이 스며들었다. 각자의 레스토랑 영업을 마치고, 새벽까지 이어진 리허설과 준비 과정을 지나 맞이한 오늘. 부담이 컸던 만큼, 이 자리에서 요리를 선보일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한 마음을 내비치는 팀 퀴진케이였다. 한 셰프는 “쉽지 않았지만, 절대 잊지 못할 하루가 될 것 같다”며 짧은 소회를 전했다.
미식의 미래를 향한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이날의 경험으로, 퀴진케이 영셰프들의 손끝에서 탄생할 한식이 글로벌 무대에서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기대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