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웹툰이 드라마가 되고, 즐겨보던 TV 프로그램이 책으로 출판된다. 콘텐츠 장르 간의 경계는 허물어진 지 오래. 더 이상 콘텐츠의 외형은 중요하지 않다.
IP(Intellectual Property)를 활용한 ‘OSMU(one source multi-use)’는 이미 콘텐츠 업계의 보편 전략이 됐다. 미생(tvN), 유미의 세포들(TVING), 내 남편과 결혼해 줘(tvN) 등 웹툰이나 웹소설을 재창작한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인기 있는 영화의 세계관이 ‘○○○ 유니버스’ 라는 이름으로 거침없이 확장된다.
일찌감치 IP의 중요성을 알아본 CJ ENM은 웹툰 등의 단순 영상화에 그치지 않고 콘텐츠 IP를 활용한 뮤지컬, 연극, PC 게임, 출판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스튜디오드래곤 제작, tvN 편성)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PC 게임 <아스달 연대기>와 인기 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tvN)를 기반으로 출판된 교양서적 <벌거벗은 세계사>가 대표적이다.
해당 사업을 담당한 스튜디오드래곤 한상윤 님과 CJ ENM 강희진 님을 만나 프로젝트 비하인드 스토리와 IP사업 성공 전략을 들었다.
✅ “게임으로 즐기는 <아스달 연대기>, 여기에 꼬박 3년 쏟아부었죠”
‘아스달 연대기’ 게임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한상윤 님(이하 한) : 게임 <아스달 연대기: 세 개의 세력>은 동명의 인기 드라마 세계관을 기반으로 제작된 MMORPG* 게임입니다. 기존에도 드라마 IP를 기반으로 제작된 게임은 있었으나, 드라마 IP 기반 MMORPG 게임은 <아스달 연대기: 세 개의 세력>이 최초이며 규모도 남다릅니다. 게임은 2024년 4월 런칭 예정인데요. PC게임에 이어 모바일, 콘솔 등으로 플랫폼을 계속 확장하여 추가 런칭할계획입니다.
* MMORPG :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가상공간에 모든 게임 유저가 접속하여 세계관 체험 및 전투, 스토리를 풀어가는 등 콘텐츠를 즐기는 형태의 게임
<아스달 연대기>의 게임화는 어떻게 이뤄졌나요? 과정을 간략히 들려주세요.
한 : 스튜디오드래곤은 아스달 연대기 게임화 프로젝트 이전부터 다양한 드라마 IP를 게임사에 지속적으로 제안해 왔어요. 이에 대한 피드백을 분석해 게임화에 대한 인사이트를 도출했고요.
게임화에 적합한 콘텐츠 요소와 그렇지 못한 요소 등을 체크하고, CJ ENM이 가진 IP 들과 비교 분석하는 작업을 반복했어요.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게임사와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드라마 인물은 ‘외모’ ‘직업’ ‘성격’ 등으로 설명되죠. 게임사 제안 시에는 소속 및 종족, 강점, 약점, 기술의 능력치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식이었습니다. 게임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맞춘 셈이죠.
결국 <아스달 연대기> 게임화 프로젝트가 성사될 수 있었던 비결은 게임사와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TV 드라마를 게임으로 만드는 작업이 업계에서는 드문 일인가요?
한 : 사실 국내에서 드라마 IP로 게임을 만들어보려는 시도가 드물긴 해도 종종 있었어요. 여러모로 쉽지는 않았죠. 종영이 있는 드라마와 다르게 게임은 정해진 ‘끝’이 없잖아요. 드라마 속 세계관과 차별화된 스토리를 지속적으로 창조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개발 사례를 살펴보면 전부 드라마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게임 정도였어요. 모바일게임의 경우 PC게임과는 다르게 개발기간 및 비용이 상대적으로 작아 위험부담이 적거든요. 드라마 스토리와 큰 차별성이 없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어 크게 성공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반면 이번에 저희가 제작한 <아스달 연대기>는 대규모 PC 게임입니다. 시즌1 제작 이전부터 드라마 작가님과 개발사 간 미팅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며 서사를 구축했어요. 기획 및 개발에만 3년 이상 투자하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기대작이죠. 22년부터 국내 최대 게임쇼인 G스타를 통해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그 기대감을 연료 삼아 런칭하게 되었습니다.
‘아스달 연대기’의 서사엔 어떤 매력이 있나요? 어떤 요소 덕분에 게임화가 가능했는지 궁금합니다.
한 : 크게 4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확장 가능성입니다.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아스’라는 대륙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그 세계관이 매우 방대하고 깊어서 지속적으로 확장할 만한 요소가 충분했죠.
두 번째는 드라마 속에서 다양한 종족 또는 집단이 등장하는데, 세계관 특성상 얼마든지 새로운 종족 또는 집단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이고요.
세 번째는 드라마 속 다양한 캐릭터들이 각각 다른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상당히 ‘게임적인’ 요소죠.
마지막으로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연대기’의 특성상,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메인 서사가 있고,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스토리가 펼쳐지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이 역시 MMORPG라는 장르의 특성과 형식적으로 일치하죠.
원작 드라마와 게임의 공통점 vs 차이점은 각각 무엇인가요?
한 : 드라마 속 세계관과 스토리에 기반했기 때문에 디자인이나 등장인물들의 컨셉 등은 거의 비슷합니다.
게임에는 드라마에 없는 차별화된 요소와 스토리들을 추가했는데요. 드라마 속에서 단순히 대사로만 언급되었던 공간이나 지역 등이 실제 맵으로 구현됐고요.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스달’ ‘아고’ 두 세력 외에 새로운 세력도 등장합니다.
이밖에 아스달 연대기 신화 속 신수 및 크리처의 등장과 다양한 전투 장면의 구현 등 게임적 요소들은 드라마와의 가장 근본적인 차별점입니다.
게임을 개발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점이 무엇인가요?
한 : 가장 먼저 드라마 스토리와의 연계성에 중점을 뒀어요. 의상, 건축, 언어 등 기본적인 요소부터 <아스달 연대기>의 세계관을 사실적인 그래픽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두 번째는 차별화입니다. 드라마와 구별되는 게임만의 새로운 즐거움이 필요한 만큼 전략적이고 전투적인 새로운 부족, 새로운 세력, 드라마에 나오지 않은 아스 대륙의 새로운 장소들 등 차별화 포인트에 집중했어요. 유저들이 아스달 연대기 세계관의 당사자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현실 세계와 유사하게 날씨 및 기후 변화를 설정했고요. 유저들이 직접 건물, 항구 등 건축물을 건설할 수 있도록 했어요. 자원 채집이 많아지면 자원 고갈로 이어지는 등 게임 내 자체 생태계를 구축했고요. 실제 아스 대륙에서의 생활을 체험하는 감각을 느끼도록 구현한 셈이죠.
끝으로 전체 세계관 안에 존재하는 집단들의 상호 연계적인, 사회적 요소를 개발함으로써 각 집단의 매력과 흥미를 높였습니다.
콘텐츠 IP를 게임으로 만들면 어떤 강점이나 효과가 있나요?
한 : 콘텐츠가 게임화되면 생명력이 높아집니다. PC게임은 런칭 후 최소 10년 정도는 운영하거든요. <아스달 연대기>의 경우에도 향후 상당 기간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지속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데요. 이를 기반으로 웹툰, 웹소설, MD 등의 2차 사업으로 확대 가능할 것이라고 봅니다.
두 번째는 글로벌 서비스입니다. 게임은 국내에서만 런칭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로 서비스할 예정인데요. <아스달 연대기> IP에 대한 글로벌 화제성을 가지고 올 수 있다고 예상합니다. 이를 통해 글로벌 IP 사업, 리메이크 등의 다양한 기회가 창출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아스달 연대기: 세 개의 세력>은 언제 정식으로 출시되나요? 사전예약 유저들의 피드백도 궁금합니다.
한 : 공식 출시 일정은 4월로 확정되었고, 지금 사전 등록을 받고 있습니다. 출시에 앞서 베타 테스트에 참여한 유저들에게 게임 구조에 대한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스달, 아고 세력에 새롭게 추가된 무법 세력의 2+1 구도가 전략적 균형이 생겼다는 점에서 게임의 재미적 요소를 배가시킨다고 하시더라고요.
고과금 유저 중심의 게임성에서 탈피해 세계관의 체험, 전쟁 등 무소과금 유저까지 폭넓게 참여하게 설정된 시스템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피드백이 많았습니다.
콘텐츠 측면에서는 풍부한 세계관과 스토리라인을 수려한 그래픽으로 녹여낸 부분과 정치 및 사회 시스템 내재화, 가령 실제 선거를 통해 리더를 선출하는 등의 사회 시스템을 도입한 점이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번 게임 외에 스튜디오드래곤의 OSMU 사례는 어떤 게 있었나요?
한 : 스튜디오드래곤은 4년 전부터 드라마 IP를 뮤지컬 또는 연극 등으로 공연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실제로 <또 오해영>, <빈센조>, <악의 꽃>, <사랑의 불시착> 등이 공연으로 무대 위에 올랐죠. 추가로 논의 중인 작품도 많이 있고요.
공연은 보통 1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확장·수정을 거치며 유지되는 형태이기에, IP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져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앞으로 IP의 다양한 활용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현재 최고의 프로듀서 분들이 이미 좋은 IP를 충분히 만들어 주시고 계십니다. 다양한 사례와 사업화 노하우를 구축하여 훌륭한 IP를 재가공하는 방법을 갈고 닦을 때라고 생각해요.
좋은 콘텐츠 만큼 파트너사와의 상호보완 관계도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잘할 수 없기에, 다양한 장르로의 사업화를 위해선 파트너의 역할이 절대적입니다.
파트너사와 1회성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끝낼 수도 있겠지만, 이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관계를 맺어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현재 몇몇 중요 파트너사와 공동 TF를 만들어 정기적인 회의를 운영하고, 관계 형성 및 사업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결국 IP의 성공적 활용을 위해선 끊임없는 도전과 리뷰, 분석, 그리고 파트너사와의 중장기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성공 사례 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교양 예능의 성공 신화, tvN<벌거벗은 세계사>, 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를 책으로 보다
<벌거벗은 세계사> IP를 활용한 도서를 최초로 출판한 건 언제인가요?
강희진 님(이하 강) : 지난 2021년 교보문고와 <벌거벗은 세계사 – 사건 편>을 출간한 게 시작이었습니다. <벌거벗은 세계사> 도서 출판 프로젝트는 제작팀, 특히 메인 PD인 김형오 피디님의 긍정적인 검토가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벌거벗은 세계사>를 함께하던 전민호 PD님이 tvN STORY에서 <벌거벗은 한국사>라는 프로그램의 런칭을 준비하시면서 출판 프로젝트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보여주셨는데요. 스타 강사 최태성 선생님도 참여하실 수 있게 조율해 주셔서 22년에 또 다른 베스트셀러인 <벌거벗은 한국사>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벌거벗은 세계사> 등을 도서로 출판하면서 어떤 점을 기대하셨나요?
강 : 저희 팀에서 고려하는 출판 조건은 IP의 ‘가치’를 높혀줄 수 있는지입니다. 출판으로 IP의 브랜드 밸류를 높이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를 기대했죠. 재무적인 측면도 물론 포함해서요.
파트너 출판사의 유통/마케팅 역량도 주요 의사결정 포인트인데요, 그런 면에서 <벌거벗은 세계사> 서적은 국내 1등 도서 플랫폼인 교보문고와 함께한다는 점에서 의미있었습니다.
<벌거벗은 세계사> 도서 시리즈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버전은 무엇이며 어떤 이유였는지요?
강 : 하나를 꼽기가 어려워요. 신간이 나오면 그 신간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세계사든 한국사든 신간이 새로 출간되면 이전 시리즈에 대한 관심까지 높아지면서 함께 구매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지속적인 신간 출간이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로 보입니다.
하나의 IP로 교보문고, 아울북, 웅진주니어 등 다양한 출판사와 협업하는 이유가 있는지요?
강 : 출판사마다 판매 전략에 차이가 있는데요. 각 전략에 맞는 파트너를 선정하다 보니, 다양한 출판사와 협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20대 이상의 성인을 타깃으로 대중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1위 도서 플랫폼사이기도 교보문고와 협업하고 있구요, 초등타깃의 정보도서는 이미 그 시장에서 그리스로마신화, 마법천자문으로 검증된 아울북과 정보 도서를 출간했습니다.
아동 도서 시리즈계의 1위 사업자인 웅진출판사와는 이번에 런칭한 아동 학습만화로 초등학생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며 롱런할 수 있는 시리즈물을 사업화하고 있습니다.
파트너 출판사들의 공통점도 있는데요, 파트너 출판사 모두 규모화가 가능한 사업자로 유통/마케팅에 대한 투자 역량이 있는 사업자입니다. <벌거벗은 세계사> <벌거벗은 한국사> 모두 시리즈물로, 단건의 사업이 아닌 ‘시리즈화’ 플랜을 갖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파트너사의 안정성도 중요했습니다.
콘텐츠를 책으로 출판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강 : TV 콘텐츠와 책은 제작 환경이 다르다 보니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 많았어요. 예컨대 예능 프로그램은 구성안 외에 정보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출판사에서는 대본 수준의 스크립트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더라고요.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나 해석에도 차이가 있었고요.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연예인의 초상권 해석에도 심도 깊은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했죠.
<벌거벗은 세계사> 외 IP가 출판됐거나 출판 예정인 사례가 있나요?
강 : 가장 성적이 좋았던 프로젝트라면 CJ ENM IP 중 <신비아파트>가 단연 1위이죠. 현재까지 400권 이상 출간되었고, 100만 부 수준의 판매량을 갖고 있습니다.
예능 IP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데요, 최초로 출판 매출 1억 원을 달성하며 IP 확장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어쩌다 어른>, 영어 학습 출판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해 <어쩌다 어른>의 기록을 깼던 <나의 영어 사춘기>, 이후 김수미 선생님과 함께했던 <수미네 반찬>, 스튜디오 사피엔스 <읽어드립니다> 등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향후 계획은 <벌거벗은 세계사> <벌거벗은 한국사> 모두 다른 형태로 출판하는 것도 고려 중이에요. 2023년 인기리에 종영한 <형따라 마야로> IP의 도서도 올해 하반기 선보이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향후 계획에 대해 들려주세요.
강 : 현재는 예능에만 포커싱하고 있는데, 장르를 확장해서 사업화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실력 있는 출판 파트너들과 협업하며, 단기 사업에 그치지 않고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