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현지 시각) <더CJ컵 바이런 넬슨> 시상식에서 우승자 테일러 펜드리스가 묵직한 사각형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며 활짝 웃었다. 어두운 목판에 역대 우승자들의 이름을 한글 양각으로 새긴 ‘직지 트로피’였다. 올해 우승자인 테일러 펜드리스의 한글 이름 일곱 자도 트로피 오른쪽 상단에 새겨지게 됐다.
K컬처가 국경을 넘어 글로벌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직지’와 ‘한글’의 정신을 담은 우승 트로피에 대한 외신 반응이 뜨겁다. 해외 골프 팬들의 SNS에서도 화제다. 초대 챔피언으로 직지 트로피의 첫 주인공이 됐던 저스틴 토마스는 “한글 우승 트로피를 서재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오고 가면서 자주 들여다본다”고 했다.
<더CJ컵 바이런 넬슨>의 새 우승 트로피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기록유산인 ‘직지심체요절(직지)’과 ‘한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직지’는 고려시대 청주 흥덕사에서 제작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가로 36cm, 세로 38.7cm의 검은 트로피에 세로 방향으로 촘촘하게 쓰인 글자들이 옛 금속활자를 연상케 한다.
트로피에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유산 ‘한글’로 선수들의 이름을 새겼다. 기존 트로피엔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 78명의 한글 이름을 모두 담았는데, 올해부턴 역대 우승자의 이름을 담는 구성으로 바뀌었다. 이경훈, 강성훈, 배상문 등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한국 선수들뿐 아니라 타이거 우즈, 잭 니클라우스, 샘 스니드, 어니 엘스 등 PGA 투어 전설들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오른쪽 상단엔 올해 우승자인 테일러 펜드리스의 이름이 ‘2024 챔피언’ 글자와 나란히 금빛으로 새겨진다.
미국의 골프 전문지 ‘골프위크’는 <더CJ컵 바이런 넬슨>의 우승 트로피와 의미를 담은 기사에서 “‘직지’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사용하여 성경을 만들기 78년 전인 137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했다.
이어 “‘한글’은 창조자와 창조의 원리가 알려진 세계에서 유일한 문자 체계”라며 “5개의 기본 자음과 3개의 기본 모음을 포함하는 28개의 문자로 구성되어 있다. 자음은 발성 기관을 따라 모양이 만들어지며 모음은 하늘, 땅, 사람을 나타낸다”고 한글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트로피에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직지’의 정신을 담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당시 프로젝트를 맡았던 CJ그룹 관계자가 청주의 고인쇄박물관과 서울국립중앙박물관을 수십 차례 방문하며 제작 방식을 고민했다. 전통 방식을 구현하는 금속활자 장인을 만나 다양한 방식을 시험한 끝에 지금의 트로피를 완성했다.
트로피의 활자들은 쇠붙이를 녹여 주형에 부어 만들었던 옛 금속활자들처럼 낱개로 분해하고 조합할 수 있다. 실제 종이에 잉크를 발라 찍으면 이 대회에 출전하는 연도와 선수들을 실제로 인쇄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교하게 제작했다. 글자체엔 CJ그룹 고유의 폰트인 CJ ONLYONE 폰트를 적용했다.
트로피 하단은 다리를 형상화한 모습으로, ‘꿈을 현실로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뜻한다. 2017년부터 대회 슬로건으로 활용해 온 “Bridge to Realization(꿈을 연결하는 다리)”을 시각화했다. 80년 전통의 PGA 투어인 바이런 넬슨과 CJ그룹의 파트너십에 대한 의미도 담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트로피엔 전 세계 골프 팬들에게 K컬처를 알리는 무대인 <더CJ컵 바이런 넬슨>의 정체성이 담겼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PGA투어 우승 트로피가 K컬처 글로벌 확대의 ‘기념비’가 된 셈이다.
미국 댈러스 현지에서 더CJ컵 바이런 넬슨 대회를 준비한 CJ그룹 관계자는 “최근 개최한 로컬 미디어데이에서 현지 미디어들의 관심이 트로피에 쏠렸다”며 “트로피의 모티브인 금속활자에 대해 매우 흥미로워했고, 자신들의 한국 이름을 묻기도 했다.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어 뿌듯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