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8일, 대한민국 패럴림픽 역사상 최초의 스노보드 메달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CJ대한통운 장애인스포츠단 소속 이제혁 선수다.
이날 열린 남자 스노보드 크로스 결승 무대에서 그는 충돌 위기를 뚫고 짜릿한 역전극을 펼치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네 명의 선수가 동시에 질주하며 충돌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고 빚어낸 값진 결실이었다.
“너무 떨리고 믿기지 않았어요.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싶었죠.”
CJ뉴스룸과 만난 이제혁 선수는 아직 가시지 않은 결승전의 감격을 이렇게 회상했다. 짧은 소감이었지만, 그 안에는 사상 첫 메달리스트가 되기까지 견뎌온 인고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야구를 그만두고 방황하던 이제혁 선수는, 아버지 지인의 권유로 처음 스노보드를 접했다. 그중에서도 여러 명이 동시에 출발해 순위를 겨루는 크로스 종목은 단번에 그를 사로잡았다.
눈앞에서 순위가 뒤바뀌는 짜릿함과 끝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 이 선수는 그 매력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스노보드 크로스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을 목표로 훈련에 매진하던 중, 예상치 못한 부상이 그의 선수 인생을 뒤바꿨다.
“훈련 중 발목에 골절상을 입었어요. 치료 과정에서 감염이 생겨 왼쪽 발목에 영구 장애를 입게 됐죠. 처음엔 선수로서 경쟁력이 사라졌다고 생각해 보드를 내려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평창 패럴림픽을 직접 관람하며 그의 생각이 다시 바뀌었다. 비장애인 선수 경기 못지않은 장애인 선수 실력을 보며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다시 보드를 잡았고, 장애인 선수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그렇게 생애 처음 출전한 장애인 스노보드 대회에서 전체 7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 성과 뒤에는 새로운 방식에 적응하기 위한 치열한 과정이 있었다. 양발로 균형을 잡는 일반적인 스노보드와 달리, 그는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싣는 방식에 적응해야 했다. 10kg을 증량하고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견디며 훈련에 매진했다.
이후 그는 꾸준한 훈련을 바탕으로 국내를 넘어 국제 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2021년 유로파컵에서 대한민국 장애인 스노보드 역사상 첫 금메달을 기록했다. 또 이번 패럴림픽 동메달로 그 가능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4년 전 베이징 패럴림픽에서 아쉽게 탈락했던 그는, 이번 무대에서 마침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낸 것이다.
“좌절하기보다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했어요. 위기가 닥쳤을 때 해결 방안을 찾고 빠르게 실행하는 편인데, 그 점이 선수 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이제혁 선수의 꺾이지 않는 도전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꿈지기’ 철학과 맞닿아 있다. “기업은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사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 회장의 신념에 따라, CJ대한통운은 지난해 장애인스포츠단을 공식 창단하고 장애인 사회참여 확대와 체육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CJ대한통운 소속 선수들은 창단 첫해부터 ‘전국장애인체육대전’과 ‘2026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등에서 다수의 메달을 획득하며 좋은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혁 선수 역시 작년 7월부터 CJ대한통운 장애인 스포츠단 소속 선수로서 후원받고 있다. 스노보드처럼 계절 의존도가 높은 종목에서 훈련 환경은 성과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 선수는 “CJ대한통운의 지원 덕분에 마음껏 훈련할 수 있었던 것이 이번 동메달로 이어진 것 같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동계 종목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계절과 관계없이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이에요. CJ대한통운의 지원 덕분에 안정적으로 훈련을 이어갈 수 있었고, 그 과정이 이번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에게 스노보드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선 존재다. 수많은 위기의 순간마다 다시 일어서게 만든 버팀목이었기 때문이다.
“스노보드는 ‘인생의 지지대’라고 생각해요. 야구를 그만두고 방황할 때도, 발목 부상으로 장애를 입었을 때도 스노보드를 타며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죠.”
어린 시절 이제혁 선수는 국민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에 나서고 그 응원에 보답하는 선수를 꿈꿨다. 이번 패럴림픽은 그 꿈에 한 걸음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동시에 스노보드 크로스라는 종목이 가진 짜릿한 매력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 전했다.
대한민국 스노보드 역사상 최초의 패럴림픽 메달이라는 기록과 함께, 이제혁 선수의 질주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노보드 크로스의 재미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한 그의 다음 도전에 기대가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