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때로 그 어려움을 돌파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공감을 나누는 기회가 찾아온다. 단편 <나의 새라씨>의 김덕근 감독도 그런 경험을 하는 중이다. CJ문화재단 스토리업 단편영화 제작 부문 지원작, 제1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작품, 연기 부문 수상 등의 기분 좋은 일을 겪은 그는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게 큰 용기로 돌아온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나의 새라씨>의 시작은 나의 어머니?
국내에서 처음 받는 상이라서 저에게 큰 의미가 있죠.(웃음)
지난 7월 5일 제1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폐막식에서 김덕근 감독의 입가에 미소 짓는 일이 생겼다. 심사위원 특별상 작품, 연기 부문에 그가 연출한 <나의 새라씨>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기 때문이다. 영화제 특성상 현업 감독들이 직접 심사를 하는 방식인데, 작품, 연기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그에겐 영광스러운 일. 여기에 지난 7월 14일 폐막한 제3회 안양신필름예술영화제에서 단편 작품상을 받는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그에게 연이은 상복을 전한 <나의 새라씨>는 뜻대로 풀리지 않는 서울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온 50대 여성 정자(오민애)가 새라라는 가명으로 도축공장에서 일을 시작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젊은 감독의 시선에서 바라본 중년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시나리오 구상 계기를 물어보니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3년 전, 그는 실제 고향으로 내려가 공장에서 일하며 사시는 어머니에게 노래자랑 대회에 출전해서 직접 무대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퇴까지 하며 노래자랑 대회에 참가한 어머니가 어떤 생각으로 그 자리에 나갔는지,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은 상황에서 꿋꿋이 노래를 부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은 곧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이후 어머니와 같은 세대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허구의 이야기를 작성했고, 지금의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 것. 그는 어른이 된 후부터 부모님, 중년 세대들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었던 욕구가 강하게 일었던 게 동력이라 말한다.
시나리오에 담고 싶었던 주제는 정자가 희망을 품고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었다. 감독은 주인공의 인생이 무너지고 밑바닥까지 치는 상황에서 자신의 현 상황을 받아들이며 용기를 내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나의 새라씨>는 부모를 이해하려는 자식의 관점에서 출발해 인간을 탐구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자세가 녹아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CJ문화재단 스토리업 단편영화 제작 지원으로 얻은 것은?
김덕근 감독은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한편으로 걱정이 들었다. 주 배경지가 도축공장이었기 때문에 제작비 투여가 많이 될 거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단편영화제작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제작비. 한편당 평균 5~800만원이 들어간다고 봤을 때, 이 작품의 제작비는 평균치보다 더 많이 투여되었다.
한예종 영화과 예술사과정 재학생으로서 큰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터. 하지만 그에겐 제작 지원 사업이 있었다. 그의 전작 <민혁이 동생 승혁이>도 다수의 지원 사업을 통해 영화를 완성했던 이력이 있어, <나의 새라씨>도 같은 방법을 통한 제작 계획을 세운 것.
운명이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던 CJ문화재단 스토리업 단편영화 제작 지원 공고를 보게 된 것이다. 그동안 CJ문화재단은 시나리오 작가 지원사업을 해왔는데, 2018년부터 단편영화 제작 지원 사업도 신설됐다. 그는 곧바로 <나의 새라씨> 시나리오를 보냈다. 이후 현업 감독과 영화학과 교수로 이뤄진 심사위원 면접을 본 후 최종 5인에 합격, 지원사업의 혜택을 받게 됐다.
물어보나마나 이 사업의 가장 큰 혜택은 바로 지원금(최대 1,000만원 지원)이었을 터. 물론, 사비를 털어 모자란 제작비 수혈에 들어간 그이지만 지원금은 큰 선물과도 같았다. 다행히도 가장 걱정됐던 도축공장 촬영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최소 금액으로 촬영했다. 실제 그림을 담아야 하는 내장 등을 구매하고 실제 일하시는 여사님들을 엑스트라로 섭외하는 등 발품과 입품을 팔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에 몰두했다. 여기에 학생 작품임에도 기꺼이 출연을 승낙한 오민애 배우 등 중년 배우들의 참여 또한 그에게 힘이 됐다. 그렇게 총 5회차 6일 동안의 모든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고.
그가 CJ문화재단에 또 하나 고마운 건 지지와 응원이었다. 흔히들 예술가들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 ‘뼈를 깎는 고통’의 과정을 거친다고 말하는데, 김덕근 감독에게 이 작품은 고통의 세기를 떠나 힘든 과정이었다. 그런 와중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버틴 것. 그는 CJ문화재단에서 준비한 전문가 코칭은 물론이고 촬영 현장이나 출품된 영화제에 꼭 참석해 직접 응원해 주는 담당자의 모습에 고마움을 느꼈다. 게다가 작년 12월에는 제1회 한베청년꿈키움 단편영화 상영회에 자신의 영화를 상영하고 해외 관객들을 만났다며, CJ문화재단을 통해 좋은 경험의 기억을 소환했다.
인간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연출에 올인!
학창 시절 시네필은 아니었지만, 친구들보다 다양한 영화를 보려고 노력했다는 그가 본격적으로 영화 세계에 빠진 건 군 복무 시절이었다.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긴 이후 휴가 때마다 집보단 극장을 택했고, 그 때 좋은 영화를 많이 봤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이 바로 <비 러브드>(2011). 엄마와 딸의 사랑을 향한 여정을 그린 이 작품에서 그는 인생에 있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는 인간을 이해하는 좋은 통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2014년에 한예종 영화과에 입학했고, 휴학 중 <사냥>(2016)에서 촬영팀으로 일하면서 상업영화 현장을 경험하는 등 자신만의 연출 및 작업 스타일을 찾고자 노력 중이다. 단편영화 연출도 그 일환인 셈. 지속해서 단편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와 실현을 위해 지원사업은 그에게 꼭 필요한 도움이다.
자신과 같은 꿈을 지닌 이들이 많을 터. 지원 사업 첫 주인공으로서 그는 시나리오 준비가 가장 먼저라고 강조한다. 그의 경우 지원 사업 마감 기일에 제출하는 시나리오 경우 못해도 6, 7고 수정을 한 버전이라고. 그만큼 미리 준비해야 지원의 행운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노력으로 세상의 빛을 본 <나의 새라씨>는 감독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만의 시선을 최대한 담으려고 시도한 작품으로 남아있다. 완성 자체의 기쁨과 더불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는 것에 많은 성취감이 쌓였다. 그는 이 작품을 들고 대구단편영화제 등 국내 영화제는 물론, 오는 11월 카이로 국제 영화제에 참가할 예정. 특히 카이로 국제 영화제 같은 경우 CJ문화재단의 혜택 중 하나인 해외 단편영화제 출품 지원을 통해 기회를 얻은 것. 최근 좋은 일이 계속 생겨 나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던 김덕근 감독. 앞으로의 꿈을 들어봤다.
올해 안에 학교 졸업을 하기 위해 장편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나의 새라씨>를 통해 얻은 용기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그 또한 단편 <백색인>(1993)을 시작으로 영화의 꿈을 키웠다. 예나 지금이나 단편영화는 미래의 영화감독들이 자신의 역량을 표출할 수 있는 신호탄이자 좋은 기회다. CJ문화재단을 통해 전문적으로 완성도 높은 단편영화를 보다 순탄하게 만들 수 있었던 김덕근 감독. 하루빨리 극장에서 그의 작품을 만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