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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말했듯이 아카데미 시상식은 로컬 영화제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로 진행되는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장편영화상(외국어영화상) 6개 부문에 올랐다. 이제 더이상 남의 잔치가 아닌 셈. 그래서인지 이번 시상식을 기다리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 기다리며 보는 재미를 더 느껴보라는 의미에서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3인이 나섰다. 6개 부문 중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각각 맡아 <기생충>을 비롯한 후보작들의 수상을 점쳐본 것.(국제장편영화상 수상은 거의 확실해 제외.) 과연 각본상 후보작을 담당한 박지한 큐레이터는 어떤 작품을 꼽았을까? 박지한 |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영화가 선물해준 빛나는 순간을 나눕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21세기 버전, <나이브스 아웃> 라이언 존슨 개봉 당시 다수의 해외 영화 매체에서 오스카 각본상 후보라 점쳐졌던 영화 <나이브스 아웃>(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라이언 존슨은 데뷔작 <브릭>(2005)에서부터 고전적인 장르영화의 스타일을 가져온 뒤 클리셰를 자유자재로 활용했다가 혹은 회피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서 자리매김 했다. 고색창연한 외양과 그만큼이나 클래식한 메시지로 무장한 아가사 크리스티의 21세기의 버전 밀실 추리극 <나이브스 아웃>은 그런 감독의 장기가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라이언 존슨의 전작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2017)의 서사가 호불호가 갈렸다면, <나이브스 아웃>의 서사는 유려하면서도 맺고 끊음이 분명하며, 이야기의 전개를 급정거 시켰다가 다시 치고 나가는 리듬감 역시 뛰어나다. 특히, 영화 초반에 제시한 작은 복선들을 꼼꼼하게 짚어 나가며 회수한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의 라이언 존슨 감독(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나이브스 아웃>에는 괜히 등장하는 소도구가 없으며 의미없이 단편적인 목적 즉, 웃음을 이끌어내거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등장하는 편의적인 대사도 최소화 되어 있다. 대사의 효율성, 소도구의 인상적인 활용, 인물들 간의 얽히고 설킨 감정선을 설계하는 솜씨는 아주 인상적이다. 거기에 깨알같이 가미된. 그러나 묵직한 사회비판적 풍자(극단주의자들의 메시지에 감응하는 10대 소년, 트럼프식 자수성가 신화에 대한 비판 등)는 영화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단, <나이브스 아웃>은 어른을 위한 동화에 가까운 이야기다. 메시지 역시 휴머니티를 강조하고 있다. 바로 작년 아카데미는 어른을 위한 동화이자 사랑의 의미를 진심으로 전달하고자 한 ‘착한’ 영화 <그린북>(2018)에 각본상을 수여한 바 있다. 장르는 다르나 결국 형식은 비슷한 <나이브스 아웃>이 연이어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조금 의문이다. 옛날 옛적 할리우드에 대한 절박한 회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두 주인공(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Brad Pitt and Leonardo DiCaprio star in Columbia Pictures ?nce Upon a Time in Hollywood” 쿠엔틴 타란티노의 시나리오가 ‘문학’에 가깝다는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그냥 단독으로도 ‘문학’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그의 특징이 발현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는 그가 1969년의 헐리우드로 되돌아가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 대한 낭만적인 헌사를 담은 작품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가 이뤄낸 서사적 성취라면, 결국 샤론 테이트를 가십성으로 기억되는 사건의 피해자에서 한 시대를 살아간 영화인으로 자리를 바꿔냈다는 데 있지 않을까 한다. 결국 이 영화는 1969년 실제로 일어난 맨슨 패밀리의 로만 폴란스키 자택 습격사건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자택 습격사건에서 참살 당한 샤론 테이트는 아주 오랜시간, 로만 폴란스키의 부인이자 사이비 사교집단 맨슨 패밀리에게 참살당한 비운의 인물로 기억되었다. 샤론 데이트를 가십성으로 기억되는 피해자에서 한 시대를 살아간 영화인으로 기억하게 만든 게 신의 한수!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속에서 샤론 테이트는 비운의 희생자가 아니라 샤론 테이트가 자기의 일을 사랑했던 영화인으로 변모한다. 이를 증명하듯 감독은 샤론 테이트가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극장에 찾아가 자신이 연기한 인물을 바라보는 장면을 아주 공들여 묘사했다. 동시에, 샤론 테이트라는 인물에 담은 애정의 크기만큼 맨슨 패밀리에게는 분노를 실어 보낸다. 이 극단적인 온도차가 뒷골 서늘하게 다가오는 결말부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우리가 왜 늘 기대하는지에 대한 어떤 대답처럼 보인다. 물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가 <펄프 픽션>처럼 신기에 가까운 비선형적 서사를 직조했거나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처럼 날카로우면서도 명징한 영웅서사를 구축한 작품은 아니겠지만. ‘미국 영화’라는 대상에 바친 애정은 이 영화가 유력한 각본상 후보임을 유추하게 한다. 작지만 큰 사랑의 역사, <결혼 이야기> 노아 바움백 과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넷플릭스와의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그 결과에 따라 <결혼 이야기>의 상복이 판가름 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는 올해 각본상 후보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이야기지만 가장 ‘현실’에 밀접한 서사를 갖추고 있다. 동시에 한 관계의 파국이 가져오는 감정적 파고가 얼마나 높은지를 증명하는 걸출한 드라마다. 한때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부부가 이제 서로의 삶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그런데, ‘결혼’은 단순히 서로간의 약속이 아니라 ‘제도’이고, ‘제도’는 시작할 때 와 끝날 때 모두 절차를 거쳐야 한다. 노아 바움백은 이 제도 안에서 그야말로 전쟁 같은 이혼 과정을 밟는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다. ‘건조하게 다루고 있다’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기엔 파경을 맞은 커플이 서로에게 발산하는 증오의 기운이 날카롭다. 수없이 회자된 이혼 전문 변호사 노라(로라 던)앞에서 이혼을 결심한 이유를 토해내는 니콜(스칼렛 요한슨)의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가 가 닿은 성취의 지점이 대체 어디까지인지 가늠이 어려울 정도다. <결혼 이야기>의 각본상 수상 허들은 넷플릭스. 국내에서도 일부 극장에서만 상영했다.(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감독은 한 커플의 파경이라는 단순한 플롯을 무시무시한 대사들과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필연적이며 운명적인 비극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다만, <결혼 이야기>가 넷플릭스로 스트리밍 된 영화라는 점이 조금 걸린다. 물론 마틴 스코세이지의 새로운 걸작 <아이리시맨>도 넷플릭스의 힘을 빌어 완성한 작품이지만, 여전히 넷플릭스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이전 세대의 영화인들과 아카데미 시스템은 잔존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는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는 필연적 과정이며 아카데미 역시 넷플릭스를 끌어안아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이야기>에 ‘작품상’이나 ‘감독상’이 아닌. ‘각본상’을 수여하는 형식을 갖춰 넷플릭스와의 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하는 아카데미의 모습도 상상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언해피한 해피엔딩! <기생충> 봉준호, 한진원 올해 유력한 각본상 후보로서 손색 없는 <기생충>(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봉준호의 영화에서 어떤 파괴력을 느낄 때는, 엔딩이 ‘언해피한 해피엔딩’으로 끝났을 때다. <플란다스의 개>(2000)에서 결국 개를 죽인 살해범인 시간강사 윤주(이성재)는 교수에게 뇌물을 주고 교수가 된다. <살인의 추억>(2003)의 박두만(송강호) 형사는 결국 사건으로부터 도망치길 선택하고 자신의 일상을 되찾지만 여전히 과거의 기억에 붙들려 있다. <괴물>(2006)의 강두(송강호)는 돌아오지 못한 자신의 딸과 마치 교환된 것처럼 자신의 앞에 앉아 밥을 먹는 아이를 바라본다. <마더>(2009)의 엄마(김혜자)는 결국 자신과 아들이 저지른 죄로부터 도망치길 선택한다. <설국열차>의 세계는 모두 죽어버리지만, 살아남은 아이들은 설원에서 북극곰을 발견한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조차 난감하지만 분명 보는 이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엔딩을 설계하는 솜씨야 말로, 봉준호 적 서사의 매력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기생충>은 봉준호가 지금껏 보여준 ‘언해피한 해피엔딩’의 어떤 중간결산처럼 보인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이 구축한 ‘언해피한 해피엔딩’ 계열 영화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다만, <기생충>은 이전의 봉준호가 구축한 ‘언해피한 해피엔딩’의 계열에는 포함되겠으나, 농도가 조금 다르다. 이전의 영화들은 언해피하나 어찌했듯 ‘해피’ 쪽에 조금 더 가까웠다면. <기생충>은 ‘언해피’가 조금 더 짙어 보인다. <기생충>의 엔딩을 관통하는 정서를 한 마디로 축약한다면 ‘무력함’이요, 한 음절로 요약한다면 ‘꿈’일 테다. 그런데 이 꿈은 무섭고, 슬프며, 비통하다. 봉준호가 지금껏 그려낸 어떤 세계들 보다도 공포스러우며, 부정의 기운이 물밀듯이 닥쳐오는 결말에 다름아니다. 영화 내내 건드리고 있는 계급의 문제. 차이의 문제. 차라리 ‘신분’이라 부르고 싶은 공고한 시스템을 묘사하면서 봉준호는 이것이야 말로 작가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에 거짓된 희망없이 날 것에 가까운 ‘현상’으로서의 힘을 부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기생충>의 서사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없지만. 이 엔딩은 그야말로 절창이다. <기생충>은 여타의 다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부문에서 주로 수상하고 있으나. 봉준호가 그린 지옥도가 살아 숨쉬는 각본 역시 대단한 매력을 발산하는 작품임에는 틀림 없으며, 유력한 각본상 후보임을 부정할 수 없다. 아쉽게도 다섯 후보 중 <1917>은 현재(1월 25일) 기준으로 국내 개봉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직 영화 본편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짧게 언급만 하겠다. <1917>의 경우,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작품상, 감독상을 수상하며 올해 최대의 이변 중 하나로 꼽혔고, 전미제작자조합상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유력한 작품상 후보로 꼽히고 있다. 다만 각본 쪽으로는 수상 실적이 두드러지 않기 때문에, 올해 아카데미 ‘각본상’에서 유력한 후보는 아닌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처럼 보인다. 신이 아닌 이상 아카데미 회원들의 표심이 어느 영화에 돌아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5작품 모두 각본상 후보에 오를 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것. 누가 받던 오스카 상을 거머쥘 주인공에게 미리 박수를 보낸다. 물론 그게 <기생충> 이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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