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고 담백한 곰탕이 생각나는 날. A 씨는 기름기를 정리해 푹 고아낸 사태 육수와 부드럽게 익힌 양지로 깔끔하고 담백한 맛을 낸 비비고 양지 곰탕을 사 왔다. 뜨끈하게 데워 밥 한 그릇을 훌훌 말아 먹으려는데, 앗! 고기가 초록색?
한국인의 소울푸드 ‘곰탕’엔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있다. 초록색, 무지개색 등 신기한 색을 띠는 고기가 종종 발견된다는 것이다. 포털사이트에 ‘설렁탕 고기’ ‘곰탕 고기색’ 등 검색어를 입력하면 형광빛을 띠는 고기를 발견했다는 목격담과 이런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묻는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정말 고기가 상해 먹으면 안 되는 것일까? CJ뉴스룸이 CJ제일제당 최정인 연구원에게 초록빛을 띠는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물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먹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고기 자체의 색깔이 변한 게 아니라,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는 일종의 ‘착시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곰탕이나 족발, 설렁탕에 올라가는 고기에서 종종 형광빛을 볼 수 있는데요. 여기서 공통점은 ‘얇게 썬 고기’라는 점입니다.
고기의 물리적인 구조가 살짝 틀어지면서 빛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휘어져 나타나는 ‘회절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죠. CD 표면이나 비눗방울이 초록색, 무지개색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 회절현상: 빛의 파장이 좁은 곳을 통과하면서 확산되는 현상
실제로 정육점에서 갓 구입한 신선한 고기를 삶은 후, 얇게 저며 빛에 비춰보면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식재료에선 일어나지 않는 ‘회절 현상’이 유독 고기에서만 잘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CD 표면에서 회절현상이 극단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는 표면에 보이지 않는 작은 홈들이 파여 있기 때문이다. 고기를 얇게 자르면 잘린 근육 섬유들이 마치 CD 겉면처럼 미세한 홈들을 형성하게 되고, 이 홈들이 제각각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빛을 반사하면서 밝은색이나 무지갯빛을 발하게 된다.
고기를 이용한 요리 중에서도 유독 설렁탕이나 족발에서 고기 회절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고기의 회절현상은 소금 등 염류가 포함된 육수에서 끓여진 경우 효과가 증폭되기 때문이다. 고기를 자르는 도구에 따라서도 영향이 있다. 고기를 자르는 도구가 날카로울수록 고기 표면이 매끄럽게 잘려 빛이 균일하게 회절되어 우리 눈에 무지갯빛이 더 잘 보이게 된다. 가정에서 쓰는 일반적인 칼로 식재료를 자를 경우 변색 현상은 잘 나타나지 않고, 주로 전문점에서 요리하는 음식에 이런 현상이 발견되는 이유다.
따라서, 설렁탕 등에서 녹색 고기가 발견됐다고 무조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냄새와 촉감 등의 또 다른 징후를 함께 확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