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리포트] ‘새로운 사다리’, 오디션의 진화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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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영국의 한 방송 프로그램이 세계적으로 많은 화제가 됐다.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서 폴 포츠라는 인물이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이었다. 휴대폰 판매원이었던 그는 뛰어나게 노래를 잘했지만 무대 위에 설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재능을 오디션 심사위원과 시청자들이 발견하고 우승자로 만들어냈다. 이는 국내서도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평범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는 ‘새로운 사다리’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3년 후인 2010년,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Mnet의 ‘슈퍼스타K’ 시즌 2에서 환풍기 수리공이었던 허각이 1위에 오른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시즌 1부터 관심을 받더니 시즌 2에선 ‘한국의 폴 포츠’를 탄생시키며 열풍을 일으켰다. 허각 뿐만 아니라 2016년 시즌 8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전자들이 감동의 드라마를 써 내려갔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 시청자들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최근의 상황은 또 달라졌다. 한국은 오디션 강국으로 거듭났다. ‘슈퍼스타K’시리즈를 시작으로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잇달아 인기를 얻으며 국내 방송의 주요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쇼미더머니’, ‘걸스플래닛999:소녀대전’ 등 장르와 국적을 불문한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제작되며 또 다른 차원의 도약이 이뤄지고 있다. 이젠 과거와 반대로 해외에서 한국의 오디션 포맷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김희경 기자 사진

김희경 |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김희경 기자는 한국경제신문 문화부기자이며 한국예술종합대학교 겸임교수로서

한국 대중문화 산업 관련 칼럼을 연재 중이다.

보물찾기의 즐거움과 영웅 신화의 서사

우리나라 오디션 프로그램의 장을 연 Mnet의 ‘슈퍼스타K’ 포스터로 검은색 바탕색에 '슈퍼스타K 대국민 스타발굴 오디션'이란 텍스트가 삽입되어 있다.
우리나라 오디션 프로그램의 장을 연 Mnet의 ‘슈퍼스타K’

오디션은 이 시대의 코드인 ‘공정성’에 대한 인식 확산과 맞물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공정성은 현재 젊은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은 새롭고 튼튼한 사다리를 원하는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여기에 보물을 발견하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잘 다듬어지진 않았더라도, 기존 아티스트와 다른 음악적 특색을 가진 원석과 마주하는 것은 문화·예술을 소비하는 감상자 입장에서도 즐거운 일이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영웅 신화’를 볼 때와 유사한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두 서사 구조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영웅 신화는 오랫동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서사를 갖고 있다. 여기서 영웅은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시련이 닥쳐도 이겨내며 끝내 재능을 펼쳐 보인다. 오디션도 마찬가지다. 모두를 놀라게 하는 빛나는 재능, 그럼에도 좌절해야 했던 안타까운 사연, 오디션을 통해 완성된 인생 역전의 스토리는 영웅 신화의 서사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오디션 프로그램만의 개방형 시스템도 포맷의 지속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시청자는 투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응원하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이를 통해 아티스트에게 자신을 투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서사를 직접 완성해 주는 능동적 주체로 거듭난다. 이렇게 형성된 팬덤은 일반 아티스트들의 팬덤에 비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오디션 때도 높은 결집력을 보여주고, 오디션이 끝나도 아티스트를 적극 응원한다.

비주류 장르였던 힙합과 오디션의 폭발적 시너지

'쇼미더머니10' 레퍼 공개 모집 포스터로, 황금 목걸이 디자인에 'Show Me The Money 10' 제목이 삽입되어 있고, 하단에 '래퍼 공개 모집 7월 1일 - 7월 31일' 텍스트가 삽입되어 있다.
올해도 ‘쇼미더머니’ 시리즈는 계속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새로운 장르의 확산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힙합, 트로트 등은 일부 세대나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불렸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주요 음악 장르로 부상했다.

특히 국내 최장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시리즈는 힙합 대중화를 이끈 대표 콘텐츠로 꼽힌다. 2012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엔 매 시즌마다 실력있는 힙합 뮤지션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여기서 발표하는 음원마다 각종 음원 플랫폼 차트를 휩쓸었다. 올 가을에도 시즌 10으로 다시 찾아온다.

‘쇼미더머니9’에서 화제를 모았던 ‘Freak’. 음악을 좋아하는 괴짜 릴보이, 원슈타인, 칠린호미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성공을 향해 달린다는 메시지가 잘 드러난 곡이다.

힙합 고유의 특성과 오디션의 특성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영향이 크다. 힙합은 최대한 아름답고 서정적인 단어로 감정을 표현하는 발라드와는 다르다. 래퍼 자신이 겪은 일과 일상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듯 부른다. 이 과정에서 가난하고 우울했던 과거, 그 과거를 딛고 대중 앞에 서게 되며 얻은 자신감 등이 고스란히 노래에 담기게 된다. 10~20대뿐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힙합에 빠져들게 된 것도 이 가사들에서 공감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은 그동안 발견되지 못했던 원석들에게 기회를 주는 오디션의 취지와도 부합한다. 힙합과 오디션은 그렇게 시너지를 내며 폭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화합과 성장 다룬 글로벌 오디션이 온다!

오는 8월 6일 첫 방송 예정인 한중일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 ‘걸스플래닛 999:소녀대전’ 포스터로, 보라빛 배경에 프로그램에 출여하는 99명의 소녀들이 무대에 서 있고, 하단엔 '한중일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 당신은 누구의 꿈을 지킬 것인가 8월 6일(금) 밤 8시 20분 첫방송' 텍스트가 삽입되어 있다.
오는 8월 6일 첫 방송 예정인 한중일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 ‘걸스플래닛 999:소녀대전’

물론 오디션 프로그램이 과도하게 늘어나며 그에 따른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더욱 정교해지고 한 단계 진화된 오디션들이 탄생하며 새로운 재미를 더해가고 있다.

오는 8월 6일 첫 방영되는 ‘걸스플래닛 999:소녀대전’도 이전엔 볼 수 없던 형태의 오디션이다. 이 프로그램엔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온 99명의 소녀들이 ‘K팝 아이돌’이라는 같은 꿈을 향해 도전하는 과정이 그려질 예정이다. 여기선 경쟁보다 화합, 그리고 함께 성장해 가는 여정이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다채로운 매력의 소녀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K팝의 탄생도 기대된다.

시청자들의 소중한 한표 한표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시스템도 업그레이드 된다. 외부 플랫폼인 엔씨소프트의 K팝 플랫폼 ‘유니버스’를 통해 투표를 진행한다.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 참관인도 둔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하는 것만이 평범한 사람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든다.” 평범한 인생에서 나아가 특별한 인생을 살게 된 폴 포츠가 한 얘기다. 오랜 시간 인내하며 꾸준히 나아가는 ‘지속성’은 꿈꾸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세상 앞에서, 예상치 못한 극한의 상황 앞에서 좌절하고 중단하게 된다.

오디션의 진정한 의미는 이 꿈이 지속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에 있다. 꿈을 포기할 뻔한 재능있는 청춘들이 계속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그렇기에 오디션은 도전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지속되어야 하고 또 발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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