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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회 칸영화제는 두 가지 이유로 큰 화제를 낳았다. 1993년 제인 캠피온 감독 이후 28년 만에 여성 감독인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점, 그리고 그 작품이 폭력적인 장면을 과도한 수위로 재현하여 수상 자체에 논란을 야기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은 흥미롭게도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데,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황금종려상 수상작 ‘티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봐야한다. 이동윤 | 영화 평론가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여성, 신체 변신의 모티브 오토쇼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알렉시아(아가트 루셀)(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올 한 해, 전 세계 영화계의 가장 큰 화제를 몰고 온 감독, 쥘리아 뒤쿠르노는 프랑스 출신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이다. 산부인과 의사인 어머니와 피부과 의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프랑스 국립 영화학교, 라 페미스(La Fémis)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했다. 상류층에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녀이지만 첫 영화계 경력은 편집감독과 시나리오 컨설턴트였다. 그녀가 감독으로서 인정받게 된 것은 2011년 연출한 단편영화 ‘쥬니어’ 이후다. 이 작품은 그해 칸영화제에서 단편영화에 수여되는 비평가상인 ‘쁘띠 레일’상을 수상하며 다수의 영화제에서 화제를 몰고 다녔다. 첫 단편의 성공은 두 번째 기회로 이어져 TV용 영화 ‘Mange’(2012)를 연출하게 되는데, 이후 장편영화 ‘로우’(2017)와 ‘티탄’까지 이어지며 여성, 신체, 변신의 모티브로 이뤄진 그녀만의 영화세계를 만들어 냈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경계를 뒤흔들다! 어릴 적 사고 후 수술을 받은 어린 시절의 알렉시아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에게 여성은 단지 생물학적 또는 사회적 성으로 한계 지어질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녀에게 ‘여성’은 한 존재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며 폭발적인 에너지와 힘을 발산할 수 있는 잠재력을 내포한다. ‘쥬니어’에서의 벗겨지는 피부를 통해서 소녀다움에 대한 편견들을 정면으로 응시했다면, ‘Mange’는 거식증에 걸린 성공한 변호사의 삶을 통해서 여성의 사회적 성공과 대중적 인식에 기입되어 있는 고정관념들을 가감 없이 뒤틀어 버린다. 이후 연출한 두 장편 영화는 이전 작품들과 달리 좀 더 과감하게 사회적 터부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로우’에서 인육을 욕망하는 주인공과 ‘티탄’의 금속성과 결합된 주인공은 모두 사회가 여성에게 덧입혀 놓은 ‘여성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그 한계를 깨트려 나가는 인물들이다. 과연 여성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여성성, 남성성이란 무엇인가? 감독은 끊임없이 과감한 표현과 의도적인 논란을 야기하며 이 질문들에 대한 새로운 답을 관객들이 직접 찾으라 제안한다. 감독이 의도하는 불편함, 공포스러움, 혐오감들 오토쇼에서 춤을 추는 알렉시아(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티탄’의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상징적이며, 실재적이지만 신화적이다. ‘킬링 디어’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그리스 신화와 비극 서사를 능수능란하게 직조하여 터부시된 현대사회의 금기를 건드리듯이,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은 상징화된 실재적 세계 속에 여성에 대한 금기와 터부들을 해체한다. 어릴 적 교통사고로 머리에 티타늄 합금을 삽입한 소녀 알렉시아. 성인이 된 그녀는 동성애와 이성애, 여성과 남성, 살인자와 피해자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은폐시킨다. 알렉시아의 변신은 이분법으로 구성된 사회의 인식 체계를 깨부순다. 저는 성별이 누군가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성별이 우리를 정의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인디와이어 인터뷰 中) 성별에 의해 모든 것이 제한되고 정의되는 사회를 감독의 생각처럼 변화시키기 위해서 어쩌면 우리는 그녀가 펼쳐 놓은 영화 속 불편함들을 응시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공고한 성처럼 쌓아 올려진 남성 중심의 사회체제를 변화시키기란 그만큼 어렵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영화 세계가 불편하고 혐오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미 우리가 그 문제적 세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한편으로 변화를 원하면서도 막상 그 변화가 야기한 결과들에 대해선 불편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한 번쯤은 짚어볼 문제다. 혜성처럼 등장한 문제적 배우, 아가트 루셀 집을 불태우고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는 알렉시아 ‘티탄’을 더욱 돋보이도록 만든 이는 주인공을 맡은 아가트 루셀이다. 그녀는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잡지 ‘Peach’를 배우이자 가수인 티펜-티아나 포네로와 함께 공동으로 창립했다. 프랑스 여성 예술집단이 주체가 되어 직접 문화 전반에 대한 리뷰를 담아내는 이 잡지는 전통적인 페미니스트 잡지들과는 달리 여성과 남성, 트랜스와 논바이너리까지 모든 젠더를 옹호하고 포용한다. 또한 그녀는 수공예 자수 회사인 ‘Cheeky Boom’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한데,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맞춤 자수로 제작된 옷을 판매한다. 장편 영화에서 잠깐의 단역으로 출연한 적은 있어도 그녀에게 배우는 주된 직업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목소리를 주체적으로 가시화 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연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그녀의 역할인 듯 보인다.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은 알렉시아 역할에 맞는 인물을 찾기 위해서 가급적이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다고 말한다. 이미 알려진 배우가 젠더를 가로지르는 것은 이미 그 배우의 신체에 각인된 고정관념들에 의해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가트 루셀은 그러한 감독의 의도가 가장 잘 담길 수 있는 배우다. 중성적인 외모와 근육질의 마른 몸매, 각진 얼굴과 무표정에서 배어 나오는 날카로움, 특히 감독의 의도를 단지 외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실천해왔던 아가트 루셀은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에게 가장 이상적인 배우였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아가트 루셀을 배우로서, 모델로서, 또 사회활동가로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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