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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븐 베일즈> 리뷰 영화 <세븐 베일즈> 메인 포스터 그녀는 이름이 없었다. ‘헤로디아의 딸’ 혹은 ‘작은 소녀’로 불렸을 뿐이다. 성서가 집중한 것은 세례자 요한이 참수된 내막이어서, 주변 인물에 불과했던 그녀의 이름 따위는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헤롯왕이 이복동생을 죽인 후 그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혼인하자, 세례자 요한은 율법을 어긴 왕을 비난한다. 이 과정에서 창녀로 지목된 헤로디아는 그에게 앙심을 품는다. 헤롯왕의 생일, 헤로디아의 딸은 왕 앞에서 춤을 추고 기꺼워진 왕은 수양딸에게 원하는 건 뭐든지 주겠다고 약속한다. 헤로디아는 딸에게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청하라고 구슬린다. 성서에서 세례자 요한은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고, 타락한 왕비가 계략을 꾸몄으며, 딸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녀에 지나지 않았다. 훗날 학자들은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해석한다. 대중들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세례자 요한은 헤롯왕에게 정치적인 위협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며, 반란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존재를 왕이 제거했다는 것. 역사학자들은 소녀의 이름도 찾아주었다. 그래서 후대에 이르러 살로메라는 이름이 비로소 등장하게 되었다. 옥미나 | 영화 평론가 영화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배웁니다 살로메는 르네상스 이후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때로는 헤롯왕의 앞에서 춤추는 모습으로, 때로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은쟁반에 받쳐 들고 있는 무심한 소녀의 모습으로 묘사됐다. 1874년 귀스타브 모로의 그림에서는 베일을 걸치고 에로티시즘과 결합한 나신을 드러낸다. 영화 <세븐 베일즈> 스틸컷 새로운 층위의 상상력을 본격적으로 결합한 자는 오스카 와일드다. 그는 살로메가 어머니의 꼬임에 넘어간 순진한 소녀라고 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집요한 상상력은 욕망에서 답을 찾는다. 세례자 요한에게 일방적인 연정과 욕망을 품지만 끝내 거부당하자 분노한 나머지 그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 이제 정치극은 치정극으로 변모했고 살로메는 위험한 여자가 되었다. 그녀의 욕망은 맹목적이고 광적인 페티시즘이다. 영화 <세븐 베일즈> 스틸컷 그녀는 수양딸을 탐하는 헤롯왕 앞에서 일곱 개의 베일을 몸에 휘감고 춤춘다. 능동적으로 유혹하고, 자신에게 매혹된 이들을 조종하며, 욕망하는 것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 여자. 구원을 가로막는 치명적인 유혹의 상징. 그렇게 살로메는 팜므파탈의 계보학에서 가장 상단에 놓이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1893년)는 막상 영국에서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무대에서 재현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 탓이었다. 바그너 이후 독일의 가장 뛰어난 음악가로 알려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오페라 <살로메>를 작곡한 것은 1902년이었는데, 이때 ‘일곱 베일의 춤’에서 연상되는 선정성은 더욱 강조되었다. 살로메는 수양아버지를 유혹하기 위해 일곱 개의 베일을 하나씩 벗으면서 춤추는 관능의 팜므파탈이 된 듯 했다. 영화 <세븐 베일즈> 스틸컷 아톰 에고이안은 성서에서 시작해 여러 예술가를 거치면서 팜므파탈로 굳어진 살로메를 현재의 관점에서 다시 관찰한다. 고대에서 춤은 창녀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렇다면 살로메의 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어머니는? 모든 것을 알면서 묵인했을까? 아톰 에고이안은 살로메의 고전에서 도출한 키워드들 – 관계, 욕망, 가족, 비밀, 거래, 복수, 묵인, 폭로를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을 반복하면서 하나의 유려한 이야기로 완성해 낸다. 그는 1996년 이래 <살로메> 오페라 공연을 반복하고 있다. 오페라의 주연을 맡았던 독일 출신의 바리톤 미셸 쿠퍼-라데츠키와 캐나다 소프라노 엠버 브레이드를 캐스팅하여 영화 <세븐 베일즈>의 오페라 배우 역할을 맡겼다. 영화 <세븐 베일즈> 스틸컷 오페라 연출을 맡은 제닌(아만다 사이프리드)은 리허설 브리지,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한다. 이는 실제 극장에서 그녀의 물리적인 위치이자 관찰자와 주인공을 오가는 몇 개의 서사가 교집합을 이루는 장소다. 중첩되는 것들은 또 있다. 아톰 에고이안의 실제 오페라 영상이 라이브 연극의 형태로 영화에 삽입된 것. 연습이 이뤄지는 극장의 경사진 무대, 무대 뒤 스크린의 영상, 영상 위에 드리워지는 영화 속 인물들의 그림자는 메타적 형식의 확장을 보여주는 즐거운 실험이다. 이를 통해 과거의 장면들을 관찰하고, 복기하고, 암호 같은 기억들을 해독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영화 <세븐 베일즈> 스틸컷 오스카 와일드는 ‘희대의 악녀’를 생산한 다음 헤롯왕이 참수하는 것으로 그녀를 처벌했고, 슈트라우스는 칼과 방패를 동원해서 그녀를 죽였다. 그러나 자신이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소녀는 이제 죗값을 추궁당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꼬임에 넘어갈 만큼 순진하지도 않지만, 어머니의 묵인이 동조와 허락을 의미한다는 것을 간과할 만큼 둔하지도 않다. 유혹의 위력을 이해하고, 타인의 욕망에 분노하는 대신 납득하는 아량도 배웠다. 무엇보다 욕망과 배신, 과거의 진실을 마주한 이후에도 아톰 에고이안의 그녀는 무너지지 않는다. 아톰 에고이안의 살로메가 유독 빛나는 이유다. ‘세븐 베일즈’는 1905년 초연 이래 파격과 논란을 낳았던 오페라 ‘살로메’로부터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스페셜 갈라 섹션과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되며 많은 화제를 모았다. ‘세븐 베일즈’는 오는 5월 14일 전국 CGV에서 단독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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