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ULAR NOW

01

자카르타 한복판에서 “아주 나이스” 한국어 떼창… CGV 그랜드 인도네시아 방문기
2025.07.10

02

AI로 만든 애니·드라마… 글로벌 AI 스튜디오로 도약하는 CJ ENM
2025.07.04

03

‘맨즈 케어’로 남심 저격, 올리브영 홍대놀이터점 르포
2025.06.18

04

‘올영 모범생’ 토리든, 입점 5년 만에 메가브랜드로 성장한 비결
2025.06.24

05

[CGV아트하우스] 문학에서 영화로, 퀴어가 지나온 길
2025.06.23
영화 <미세리코르디아> 리뷰 영화 <미세리코르디아> 메인 포스터. 시네필들이 알랭 기로디 감독의 이름을 집단 암호처럼 들먹이기 시작한 시점은 확실치 않다. 일찌감치 <도주왕>(2012)부터 발칙하고 엉뚱한 블랙 코미디에 매료되었을 수도 있고 <호수의 이방인>(2016)이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이후 <용감한 자에게는 안식이 없다>(2003)까지 다시 찾아봤을 수도 있겠다. 저명한 평론가가 그를 ‘현존하는 최고의 감독 5인 중 하나’로 소개하는 동안, 봉준호 감독은 ‘기묘한 괴력의 작품들, 항상 신작이 궁금해지는 감독’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당연히)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알랭 기로디의 마스터클래스는 일찌감치 매진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명성은 영화제 예매 전쟁에서 성공한 소수의 무용담에 가까웠다. ‘대중성의 부족’이든 ‘노출 수위’의 문제이든, 알랭 기로디의 작품 대부분이 영화제 위주로 소수의 관객에게 한정되어 있었던 탓이다. 마침내 극장에서 개봉되는 <미세리코르디아>는 알랭 기로디의 ‘입문용’으로 – 감독의 영화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순한 맛) 기회가 될 것이다. 옥미나 | 영화 평론가 영화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배웁니다 ‘미세리코르디아’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자비’와 ‘관용’을 뜻한다. 여기까지는 거룩한 종교 교리 같다. 하지만 사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엉뚱한 설명이 이어진다. 끝이 날카롭고 긴 단검의 명칭도 ‘미세리코르디아’라는 것. 중세 시대, 전쟁에서 치명상을 입은 이들의 가망 없는 고통을 ‘단칼’에 끊어주었다는 것이 미세리코르디아라는 이름이 무기에 붙게 된 유래다. 관념을 지시하는 단어가 구체적인 실행 수단까지 전이된 셈이다. 종교 외부에 존재하는 자비의 의미와 범위는 정확히 어디까지일까. 사랑에서 파생된 – 보상을 바라지 않는 – 용서의 한 형태라는 정의에 동의한다면, 알랭 기로디의 <미세리코르디아>에서 과연 우리는 자비를 목격했던가? 영화 <미세리코르디아> 스틸컷. 대신 스크린에 또렷하게 드러난 것은 – 알랭 기로디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 들끓는 욕망이다. 욕망은 성별, 나이, 종교와 직업, 사회적 관계 같은 보편적인 가치에 가로막히지 않는다. 욕망은 인간의 선택과 행동에서 논리와 맥락을 누락하고 대신 의심과 질투를 파생시킨다. 비밀은 욕망의 힘을 증폭시킨다. <미세리코르디아>에서 욕망은 짐작하고 의심하고 원한을 품고 공격하고 질투하고 비난하고 숨기고 공모한다. 욕망이 세상의 동력으로 작동하는 동안, 죽음은 생명을 가진 존재가 마땅히 겪어야 하는 보편적인 과정의 일부로 격하된다. <미세리코르디아>에는 두 번의 죽음이 등장하는데, 첫 번째 죽음은 제레미를 마을로 불러들이고, 두 번째 죽음은 그를 그대로 마을에 포박시킨다. 어느 죽음에도 상식적인 수준의 애도와 추모는 이어지지 않는 모양새다. <미세리코르디아>의 세계에서 죽음으로 발생한 빈자리는 고통이나 상실이 아니라 대체자를 (즉시) 물색해야 하는 공석의 발생에 가깝다. 영화 <미세리코르디아> 스틸컷. <미세리코르디아>는 욕망과 충동, 암시와 비밀, 거절과 분노, 변화와 타협의 과정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데 비해, 인물들의 과거와 관계, 진심을 가늠할 수 있는 정보 제공에는 인색하다. 기억을 비교하고 질문하고 반복하는 과정이 욕망의 구심점을 구축하지만 인물들의 속내와 진실은 모호한 상태로 애매하게 남겨진다. 그래서 예측 불가능한 서사는 인물들의 관계와 위치를 교란하고 전복하면서 알랭 기로디 특유의 블랙 코미디를 드러낸다. 번번이 제레미에게 향하는 엉뚱하고 일방적인 구애 때문에 서사 전체는 제레미의 판타지 같다. 그의 인지 여부에 따라 비로소 서사가 진행되고, 매번 결국 그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분명 제레미는 아직 (운전 면허증이 없는) 소년일 것이며, 괜히 시비 걸고 괴롭히는 – 힘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 동급생이 있을 것이다. 그의 부모와 교구 신부도 백일몽의 등장인물이다. 아주 지루한 미사 중간일 수도 있겠다. 피에타의 성모로 끝맺는 설교가 들릴 가능성이 높다.  영화 <미세리코르디아> 스틸컷. 그런데 소년의 상상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에로티시즘에서 자꾸 막힌다. 소년이 아는 모든 로맨스의 해피 엔딩은 (전체 관람가 영화들이 그러한 것처럼) 동침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정작 침대에서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소년은 아직 알지 못한다. 무엇인가 더 있다는 사실만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하필 이것이 제레미의 판타지라서, 등장하는 어른들조차 침대에 나란히 누운 다음에는 같은 지점에서 삐걱거린다. ‘실용적으로’ 욕망을 시각적으로 드러낸 다음에도 마찬가지다. 지금 소년이 매혹된 것은 욕망이라는 헤게모니다. 영화 <미세리코르디아> 스틸컷. 그리고 버섯이 있다. 숲에 가야 하는 이유. 찾아야 하는 대상. 수확 시기가 아닌데 출몰한다. 애써 숨긴 비밀인데 눈치 없이 집요하게 거듭 솟아오른다. 신부는 이렇게 많다면서, 가득한 광주리를 내보인다. 마르틴이 요리하고 신부가 맛있게 먹는다. 버섯을 채취하다가 (경찰들에게) 적발된다. 제레미는 버섯을 감춰야 한다. 그래야 무고하게 보일 수 있다… 짓궂다. 과연 알랭 기로디다.  ‘미세리코르디아’는 제77회 칸영화제 프리미어 초청작으로, 2024년 카이에 뒤 시네마 선정 ‘올해의 영화’ 1위에 올랐다. 연출을 맡은 알랭 기로디 감독은 ‘호수의 이방인'(2013)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과 퀴어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미세리코르디아’는 오는 7월 16일, CGV 아트하우스를 비롯한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