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를 사랑하는 10~20대의 우상이자 184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1인 크리에이터계의 조상! 게임 영역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와 기획력으로 무장한 마성의 입담꾼. 유튜버의 신이라 불리는 대도서관의 랜선 라이프 세상은 흥미롭고도 다채로움의 향연이었다. 나도 모르게 ’구독’과 ‘좋아요’를 누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마음속으로 ‘훅’ 들어온 기획자의 꿈!
대도서관(본명 나동현)는 국내 최고의 크리에이터이자 1인 미디어의 시장을 이끄는 인물이다. 2010년 게임 스트리머로 출발한 그는 재기발랄한 끼와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인기몰이에 성공, 자신만의 기획력과 추진력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꾀했다. 현재는 ‘대도서관TV’를 운영하고, CJ ENM 다이아 티비 대표 1인 크리에이터, 미디어 콘텐츠 회사 ‘엉클대도’의 대표이사이며, 방송, 광고 등 다방면으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성공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 것. 대도서관도 명확히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가 1인 크리에이터를 시작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로 월드컵 4강 신화를 쏘아 올린 그해, 그는 제대 후 웹 커뮤니티 ‘세이클럽’에서 음악방송을 했다. 뚜렷한 꿈이 없었던 대도서관이 하고 싶었던 건 누군가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일뿐이었다. 그런 그가 우연히 일하게 된 대형 학원 계열의 IT 회사에서 마음속으로 ‘훅’ 들어온 꿈이 생겼다. 바로 기획자였다.
회의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멋져 보였다는 그는 종종 기획 회의에 들어가고 그때마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기획 업무에 맛을 들였다. 이후 정직원이 된 그는 미디어팀에 들어가 촬영, 편집 관련 업무의 노하우를 쌓았고, 이를 기반으로 동종 업계로 이직을 했다. 옮긴 회사가 SK커뮤니케이션즈와 합병을 하면서 그는 보다 빠른 IT 트렌드를 경험하고 구성원들의 생각과 마인드를 공유하며 발전해나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많은 것을 배울수록 자신의 역량 부족을 느꼈다. 고졸 출신에 자격증도 별로 없었기에 대기업에서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였다.
그런 와중에 눈에 띈 게 바로 인터넷 방송이었다. 자신을 ‘브랜드’로 만들어야 자신만의 무기로 삼을 수 있다고 판단, 잘 다니던 회사를 1년 만에 박차고 나왔다. 당시 인터넷 방송은 ‘그들만의 리그’처럼 받아들여졌지만, 과거 음악 방송을 하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남들에게 좋게 들린다는 것 하나를 믿고, 꾸준히 게임 방송을 해왔다고. 자신의 실력(장점)을 증명할 수 있는 게 바로 브랜드화로 이어진다는 걸 그는 그때 알았다.
‘다이아페스티벌’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팬미팅’?
대도서관에게 2013년은 중요한 해다. 유튜브로 주 활동 플랫폼을 옮겼고, CJ ENM MCN(Multi Channel Network) 사업 부문 브랜드 ‘다이아 티비(DIA TV)’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특히 다이아 티비 첫 번째 소속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면서 그는 자신의 기획력을 동력 삼아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영역 확장을 넓혔다.
다이아 티비는 국내 최초 설립한 MCN이자 ‘크리에이터 그룹’으로 유튜버들의 활동을 돕고 관리하는 곳이다. 대도서관을 비롯해, 벤쯔, 씬님, 헤이지니, 보겸 등 소위 각 분야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크리에이터들이 파트너십을 맺고 활동하고 있다. 이중 대도서관은 초창기부터 다이아 티비와 협력하며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더 나아가 1인 미디어 시장을 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대도서관에게 다이아 티비가 꼭 필요한 건 크리에이터들에 대한 완벽한 지원과 보증을 해준다는 점이다. CJ ENM의 규모와 인력, 자원 리소스들 등을 통해 소속 크리에이터들을 향한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고, 만약 문제가 생겼을 경우 안전한 보증까지 맡고 있으니 이들에게 다이아 티비는 든든한 지원군인 셈. 이런 든든한 지원군과 함께 한 일 중에 기억에 남는 게 뭐냐고 물으니 바로 ‘다이아페스티벌’이라고 말한다.
처음에 다이아페스티벌을 한다고 했을 때 반대했습니다. (웃음)
뭐라? 대도서관이 반대를? 하지만 그에게도 이 행사는 큰 도전이었다. 1인 크리에이터만으로 구성된 행사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찾을까 하는 의구심에서였다. 중요하고도 재미있는 건 이 행사의 발단이 2015년 대도서관 유튜브 100만 구독자 돌파 기념 첫 팬미팅 행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약 300명과 함께 하는 미니 팬미팅이었는데, 참기 신청자만 4,000여 명이 넘었다. 그 중 300여 명을 선별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는 그였지만, 자신의 영향력이 크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고, 자신을 보러 온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자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 행사를 기반으로 성공 가능성을 낙점한 다이아 티비는 대도서관의 반대(?)에도 1년 후인 2016년 8월, ‘제1회 다이아페스티벌’을 열었다. 오전 7시부터 행사장으로 모여든 팬들로 인산인해, 세계적인 유튜버들의 축제 ‘비드콘(Vidcone)’ 보다 더 많은 팬이 모였으니 행사는 성공적. 첫 회의 성공을 기반 삼아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다이아 페스터벌’은 누적 관람객 수가 15만 2,000명을 기록했다. 대도서관은 매년 참석할 때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흥’의 민족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고 말하며, 오시는 분들을 위해 멋진 공연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고. 이를 증명하듯 올해는 ‘마미손’과 힙합 공연을 선보이며 행사장 열기를 끌어올렸다.
매력? 우선 퍼스널 브랜딩이 중요!
대도서관이 많은 이들에게 1인 크리에이터로서 사랑 받는 이유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손톱만큼의 깊이와 태평양만큼의 넓이의 지식이라고 말한다. ‘1인 크리에이터 = 기획자’라는 마인드에 따라 깊이는 얇더라도 다양한 영역의 지식은 곧 장점이 된다고. 하나의 프로젝트 기획 시, 자신이 아는 지식의 파편을 하나씩 합친 후 기둥을 세우고 각 영역 전문가를 데려와 완성한다. 이런 자신의 정점을 통해 MBC <100분 토론>에도 출연했고, EBS <대도서관 잡쇼>의 진행을 맡는 등 많은 부분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대도서관의 장점의 근원은 바로 ‘퍼스널 브랜딩 (Personal Branding)’이다. 과거 IT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접했던 ’퍼스널 브랜딩’은 자신을 브랜드화해 특정 분야에 대해서 그 사람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그가 이 개념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건 이력서에 단 세 줄(고졸, 운전면허 1종 보통, 군필)로만 자신의 능력을 판단하는 아쉬움과 어떻게든 장점을 알리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력을 상쇄하기 위한 목적으로 참신한 기획과 자기 자신을 믿는 자신감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큰 힘이 되었던 것.
대도서관이 앞으로 1인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자신에게 또 다른 꿈을 심어준, 발전 기회를 만들어 준 ‘퍼스널 브랜딩’을 강조하는 건 이 때문이다. 소속된 단체보다 개인의 브랜드가 중요해지는 시대, 즉 개인의 전문성을 살린 1인 제작자 시대가 올 것이고, 그만큼 자신의 장점과 개성이 중요해질 거라는 그의 계획은 무엇일까?
자신의 개성과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한다면 그 자체로서 브랜드화가 될 겁니다.
이를 위해 저 또한 힘을 다해 여러 가지 준비하고 있으니 지켜봐 주세요.
누구나 될 수 있지만, 누구나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1인 미디어 세상을 넘어 모든 창작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대도서관은 1인 크리에이터로서, 창작자로서 기획자로서 차별화를 하기 위한 담금질을 계속해오고 있다. 성공이란 단꿈에 젖기보단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발걸음을 내딛는 대도서관. 그가 정진하는 이상 유튜버의 신이란 닉네임은 계속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