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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주는 미션은 딱 하나에요. 그 밭이 풍성하게 초록으로 가득 차서 우리가 수확을 하고 나면, 이 프로그램의 시즌 1은 끝나는 겁니다.” tvN 예능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이하 <콩콩팥팥>)의 연출을 맡은 나영석 PD가 출연자들에게 한 얘기다. 이들에게 강원도 인제의 500평 땅에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예능 출연자에게 주어진 임무치곤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 일반 예능처럼 크고 작은 웃음을 계속해서 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두뇌 서바이벌 예능처럼 치열하게 게임을 해서 승부를 봐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실제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그저 농사를 열심히 지을 뿐이며, 카메라도 이를 담는 데 주력한다. 그런데 <콩콩팥팥>은 시청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밥친구 같은 프로그램”이라는 나 PD의 말처럼 “밥 먹으면서 보기 좋은 편안한 예능”이라는 호평이 나온다. 시청률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첫 회 3.2%로 출발, 지난 4일 방영된 4회에선 4.1%를 기록했다. 케이블, 종편 포함 동시간대 1위에 해당한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 속, <콩콩팥팥>과 같은 ‘힐링 예능’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다. 최근엔 ‘도파민 중독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자극적인 콘텐츠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그런데 자극은커녕 오히려 느리게 흐르는 프로그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왜 힐링 예능에 매료된 걸까. 김희경|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이자 영화평론가, 한국영화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중문화 산업 관련 칼럼을 연재 중이다. TV 예능이야, 초보 농사꾼 브이로그야?! <콩콩팥팥>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비결을 알 수 있다. 답은 ‘뺄셈의 미학’에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인위적 설정과 개입, 대규모 인력과 카메라 등 기존 예능에 있던 요소들을 최대한 줄였다.  <콩콩팥팥>이 가져온 ‘농사’라는 소재는 다른 예능에서도 자주 활용됐다. 하지만 이미 잘 가꿔진 상태에서 수확만 하는 등 일반적인 농사 과정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아예 땅을 새롭게 일구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렇다고 출연자들이 농사에 능숙하지도 않다. 출연자 이광수, 김우빈, 도경수, 김기방은 농사짓는 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제작진이 이들에게 사전에 관련 지식을 알려주거나 도와주지 않는다. 인위적 설정과 개입을 배제한 것이다. 출연자들은 처음엔 이랑을 어떻게 만드는지, 씨앗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조차 몰라 헤맨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등 자신들의 힘으로 하나씩 배우고 협업하며 천천히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도 이들과 동일한 초보 농사꾼이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많이 자란 농작물을 보며 뿌듯해하거나, 수확한 깻잎을 따서 전을 부치는 모습에선 농사만이 가진 특별한 매력과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그래서인지 ‘연예인이 잠깐 농사를 짓는다’라는 인상보다, 일반인이 농사를 처음 시작하는 상황을 찍은 브이로그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흔들리는 카메라, 궁서체 자막에 빠지다 여기엔 또 다른 뺄셈의 미학이 작용했다. 이 프로그램엔 PD와 작가 포함 8명의 제작진만이 참여한다. 다른 예능에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적은 인원이다. 심지어 카메라도 대폭 줄였다. 보통 500평을 촬영하려면 30여 대의 카메라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엔 작은 4대의 카메라만이 동원됐다. 고정된 카메라에만 의존하지 않고 PD가 직접 찍기도 하기 때문에 화면이 많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덕분에 홈비디오를 찍은 것처럼 투박한 매력과 생동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작은 카메라로 출연자들을 따라다니기 때문에, 그들의 일상에 밀착된 듯 표정과 호흡도 보다 밀도 있게 담아낸다. 요즘 예능에 꼭 필요한 멋진 자막도 <콩콩팥팥>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예능에서 자막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재밌고 감각적인 자막을 넣은 인기 유튜브 영상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과거에나 많이 썼던 ‘궁서체’ 자막을 사용하고 있다. 촌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시청자들은 오히려 “<인간극장>, <전원일기> 같다”라며 그 안에서 새로운 재미를 느끼고 있다. 화려한 스타는 없다…정겨움 내세운 <어쩌다 사장> <콩콩팥팥>뿐만 아니라 tvN 예능 <어쩌다 사장>도 힐링 예능으로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차태현, 조인성이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은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한국 시골 가게에서 미국 몬터레이의 한인 가게로 무대를 옮겼다. 해외로 나아갔지만 여전히 화려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출연자들은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분주히 움직여 김밥, 대게 라면 등을 선보인다. 주문이 밀려 김밥을 만들 때 김보다 밥을 먼저 까는 등의 귀여운 실수에선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멀게만 보이던 스타들이 한껏 멋을 내고 과장된 모습이 아닌 담백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은 더 크게 공감하고 호평을 보내고 있다. ‘더하기’ 보다 ‘빼기’로 실천하는 도파민 디톡스 힐링 예능의 인기는 도파민 중독 시대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도파민(Dopamine)은 뇌가 큰 자극을 받으면 분비되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이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인간은 쾌락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주 분비될수록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 알코올, 담배부터 쇼핑, SNS 등에 걸친 다양한 형태의 중독이 발생하는 이유다. 이런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오늘날 사회 전체가 도파민 중독에 빠졌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콘텐츠 시장도 도파민 중독 현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갈수록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4>는 2024년 주요 트렌드로 ‘도파밍’을 꼽았다. 도파밍은 도파민에 ‘파밍 Farming’을 결합한 단어다. 이 책은 “게이머가 ‘파밍’하며 아이템을 모으듯, 사람들은 재미를 모은다”라며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가 범람하는 오늘날 도파밍은 피할 수 없는 추세”라고 분석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능 업계도 생존을 위해 계속해서 ‘더하기의 예능’을 해왔는지 모른다. 물론 다양한 아이디어를 더하는 것은 좋지만, 그 과정에서 작위적인 느낌도 함께 커져만 갔다. 예능의 본질은 ‘웃음’이다. 웃음은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한껏 더했던 여러 설정과 요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점검해 봐야 한다. 나아가 뺄셈의 미학을 실천하는 예능은 앞으로도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게 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도파민 중독의 시대,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디톡스를 원하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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