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백일의 낭군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왕이 된 남자>. 이들의 공통점은 tvN, 그리고 ‘스튜디오 드래곤’이다. 특히 기획과 공동제작을 통해 연이어 히트작을 내는 스튜디오 드래곤의 힘은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 같은 성공 요인 중 하나는 드라마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며 콘텐츠 제작에 힘쓰는 프로듀서들이다. 과연 이들은 어떤 일을 하며 드라마의 완성도에 기여하는 것일까? 최근 <왕이 된 남자>의 프로듀서를 맡은 이정묵 PD를 만나 그 궁금증을 풀어봤다.
프로듀서는 프로듀서가 아니다?
이정묵 PD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드라마 프로듀서(PD)가 아니다. 기존의 PD라는 개념이 연출을 하는 ‘감독’만을 지칭했다면, 그가 맡은 프로듀서 업무는 콘텐츠 기획과 개발, 예산에 맞는 제작 운영, 촬영, 의상, 미술 등 제작진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프로덕션, 장소 섭외, 후반작업 등 드라마 제작에 관한 거의 모든 영역에 관여하는 일이다.
프로듀서와 연출자의 영역 구분이 모호했던 과거와 달리, 콘텐츠 창작과 지원 체계가 확실히 나뉘면서 그 역할이 더 중요해진 셈이다. 프로듀서의 역할은 글로벌 드라마 스튜디오를 지향하는 ‘스튜디오 드래곤’ 비즈니스 모델을 알아보면 이해가 쉽다.
스튜디오 드래곤은 드라마 기획, 제작, 운영, 유통 등 전체 사업을 주도하는 허브 역할로서 실제 콘텐츠 제작을 중심으로 한 개별 제작사와 협업을 통해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프로듀서는 연출자, 작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기획, 제작, 판매 등 작품 외적인 부분까지 담당한다. 이처럼 프로듀서는 한 콘텐츠의 생사고락을 끝까지 함께하는 최종 책임자라고 말할 수 있다.
2013년 CJ ENM 하반기 공채로 입사한 이정묵 PD는 이듬해부터 프로듀서로서 작품에 참여했다. 그의 첫 작품은 SBS <괜찮아 사랑이야>.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방송에 뛰어든 그로써 직무 이해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막내 PD로서의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다.
첫 현장에서 그에게 놀라웠던 건 드라마 제작 스탭 수였다. 평균 참여 인원은 80~100여 명. 묵묵히 자기 일을 맡아 협업을 하면서 한가지 목표를 이루려는 이들의 열정에 놀랐다고. 스탭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업무를 해야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제작된다는 믿음으로, 사소한 것도 잘 챙기려는 노력했다. 드라마 제작에 직접 관여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작은 도움이 결국, 완성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몸소 깨달은 것이다.
드라마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모든 스탭들을 위해 크게는 드라마를 위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죠.
현장은 나의 배움터
드라마 한 편을 만들 때 CP(책임 프로듀서)의 지휘에 따라 2~3명의 프로듀서가 현장을 오가며 일을 한다. CP가 제작현장을 다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각 프로듀서는 각자 맡은 업무를 CP에게 보고하고, 중요한 결정은 체크해서 전달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이정묵 PD는 선배 프로듀서들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특히 그는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디어 마이 프렌즈>를 통해서는 콘텐츠 제작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계기를,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는 해외 로케이션 촬영의 어려움과 노하우를, <명불허전>에서는 사극의 어려움을, <라이브>에서는 의상, 소품의 디테일 챙기기를 온 몸으로 경험하고 배웠다. 이런 소중한 경험은 자신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
현장에서의 경험은 저에게 큰 자산이에요. 특히 갖가지 변수에 대처 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죠. 현장에서 선배님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됩니다.
극의 흐름상 로케이션팀과 최적의 장소를 찾고 촬영 환경을 맞추는 것도 프로듀서의 일. 이정묵 PD는 <왕이 된 남자>에서 까다롭다는 경복궁 내 촬영을 성공시키며,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한몫 했다. 극중 중전으로 나오는 유소운(이세영)과 그의 아버지이자 중도파 신료인 유호준(이윤건)의 대화 장면을 입체감 있게 살리기 위해 경복궁 관리 담당자 앞에서 10여 분간 운명의 프리젠테이션을 했다고. 드라마 제작 목적과 경복궁 안의 모습이 꼭 나와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설득했다.
오픈세트장이 용인에 있지만 실제 궁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죠. 시청자들에게 사실감을 전하고자 도전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최소 인원이 경복궁 안에 들어가 촬영을 마쳤고, 완성된 촬영본을 보니 기분 좋고 일에 대한 보람도 느껴지더라고요.(하하)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인간애’
이정묵 PD는 드라마와 만화 덕후였다. <서울의 달> <여명의 눈동자> 등 1990년대 주요 드라마를 봤고, 일본에 직접 가서 고전 만화 원서를 살 정도로 콘텐츠에 미쳤었다. 공채 원서 작성 시 자신의 인생을 드라마나 만화의 주인공처럼 스토리 화해서 제출하기도 했다. 이런 보이지 않은 애정(?) 덕분에 성덕으로서 드라마 제작에 일조하고 있는 셈. 하지만 그는 프로듀서로서 콘텐츠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열정은 기본이라 말한다.
이 일도 많은 사람과 협업을 하는 일이다 보니 ‘인간애’가 없으면 안 되더라고요.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고 그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있어야 드라마의 완성도가 높아지죠. 프로듀서 지망생 분들도 이점을 잘 알아주셨으면 해요.
올해로 6년 차에 접어든 그는 해를 거듭할수록 업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제 현장 업무와 함께, 음악, 색보정 등 후반 작업에 관여하고, 드라마 기획도 하나씩 배워나가는 중이다. 프로듀서로서 전문성을 견고하게 다지는 계기임은 분명하지만, 해보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불안감은 존재한다. 하지만 도전을 피하지 않고 가능하게 만들 준비를 차근히 하고 있다.
더욱더 넓게 보는 시선을 갖추고, 한 스텝 더 올라가는 시기라 보고 더 많이 배우고 노력할 예정이에요. 하나의 드라마가 만들어질 때까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관련 스탭들과 협업해서 더 좋은 콘텐츠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이정묵 PD는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는 말을 하며,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수(?)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이처럼 드라마는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셈. 그는 프로듀서로서 이들의 능력을 인지하고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방법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배움의 자세로 일관하며 양질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이 올해도 계속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