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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인 없는 물건이 있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유실일까? 유기일까? 부주의나 실수로 잃어버린 것이라면 유실이고, 일부러 버린 것이라면 유기다. 주인을 특정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다음에도 물건의 운명은 원래 주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셈이다. 여기에서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잃어버린 것이라고 믿고 싶은 남자, 그게 아니라 일부러 버린 것이 분명하다고 대꾸하는 여자. <창밖은 겨울>은 이 두 사람의 동행을 따라간다. 옥미나 | 영화 평론가 영화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배웁니다 유실물, 정말 누군가 잃어버린 것일까? 일부러 버린 것일까? 영화 메인 포스터(출처: 네이버 영화) 누가 잃어버렸든 혹은 일부러 버렸든, 어차피 이제 주인도 없는 마당에 그게 왜 중요할까? 그에 따라 남아 있는 물건의 처리 방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잃어버린 것 같은 물건은 유실물 보관소 행이다. 어쩌면 언젠가 이 물건을 애타게 찾던 주인이 찾아올지 모른다. 유실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해피엔딩의 재회를 꿈꿀 수 있는 미래가 아직 존재하는 셈이다. 그러나 일부러 버린 물건이라면 사실상 쓰레기 불법 투기와 다를 바 없다. 더 이상 원하지 않아서, 그 효용과 가치가 다했다고 생각하고 누군가 손을 놓아버린 물건에는 미래가 없다. 완벽하게 단절된 과거만 있을 뿐이다.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아 잊혀가는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는 유실물 보관소(출처: 네이버 영화) 버스 터미널의 캄캄한 유실물 보관소에는 그런 물건들이 쌓여 있다. 하루 만에 누가 찾으러 오지 않으면 결국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영애(한선화)의 주장은 아마 옳을 것이다. 찾는 사람 없는 물건들 위에는 하루하루 고요한 먼지가 내려앉고, 결국 애초에 잃어버린 것이었든 버려진 것이었든 모두 공평하게 이내 사람들에게 잊힌 것이 될 것이다. 물건의 효용과 가치에 대한 판단은 으레 주관적인 것이라지만, 터미널 벤치 위에서 발견한 낡은 MP3가 유실물 같다는 석우(곽민규)의 주장은 엉뚱한 생떼처럼 들린다. 하필 고장 난 MP3라서 더 그렇다. 모두가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SNS를 탐독하는 이 시대에, 설령 멀쩡한 MP3라고 해도 찾으러 돌아올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석우는 MP3를 수리할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하고, 기왕이면 MP3에 담긴 음원도 복구해달라고 조른다. 이쯤이면 석우에게는 어떤 확신이 있는 게 분명하다. MP3의 음원에 따라 물건의 주인을 특정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그 주인이 버린 것인지, 잃어버린 것인지는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오기일까? 미련일까? 석우는 왜 고장난 MP3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일까? 지나간 마음에 대한 미련 영화를 관두고 고향 진해로 내려와 버스기사가 된 석우(출처: 네이버 영화) 모두의 인생에는 포기한 것들이 있다. 포기한 관계가 있고, 포기한 꿈이 있고, 내 것이 아니라고 돌아선 길들이 있다. 모든 포기가 자의는 아니었겠지만, 그렇다고 내내 타의로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포기해버린 것에는 이따금 미련이나 후회가 남는다. 포기가 곧장 단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시간이다. 물품 보관소에서 먼지가 쌓이는 것 같은 나직하고 고요한 시간. 혹은 소도시를 달리는 대낮의 버스 안, 더디고 나른해서 마치 고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시간. 석우에게는 옛 여자친구와 그가 관둔 영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뭉뚱그려진 세월이 전부 고장 난 MP3에 겹쳐진다. 잃어버린 걸까? 아주 버린 걸까? 혹은 (나도 함께) 버려진 걸까? 주고받는 시간 속, 스며듦에 대해 탁구를 통해 석우와 영애는 새로운 시간을 함께하게 된다(출처: 네이버 영화) MP3를 두고 옥신각신하며 가까워진 석우와 영애에게는 탁구라는 새로운 공통분모가 등장한다. 옛 여자친구가 제자리에서 ‘계속 앞뒤로 혼자 움직이는’ 진자 운동 장난감으로 남았다면, 탁구는 서로 마주 본 상태로 테이블 너머로 공을 보내고 받는 ‘왔다 갔다’ 운동이라는 지점에서 맥락의 대구를 이룬다. 결과적으로 수리점에서 석우가 ‘유기’해버린 MP3를 찾아오는 것도 영애다. 그녀가 천연덕스럽게 이어폰 한쪽을 내밀면서 같이 듣겠냐고 묻는 순간, 유실과 유기 사이의 긴장과 미련, 석우의 불안도 사라진다. 영화 <창밖은 겨울> 포스터(출처: 네이버 영화) 그러나 <창밖은 겨울>은 ‘과거의 사랑을 잊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라는 식으로 확실한 로맨스 장르의 결말을 취하지 않는다. 고장 난 MP3와 탁구라는 공통점 때문에 느슨한 동료에서 조금 더 가까워진 두 사람의 동행을 멀리서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다. 영화의 시선과 무관하게, 두 사람의 우정과 호감이 좀 더 발전되기를 기원하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관객의 마음이다. 과거에 대한 미련을 털어버리고, 달라진 현재를 내 몫의 삶으로 살아가면서, 모쪼록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영화의 인물들에게 투영하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삶에 품고 있는 바람인 까닭이다. <창밖은 겨울>은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부문 공식 초청작이다.주목받는 배우 한선화X곽민규 주연의 아날로그 감성이 돋보이는 영화다.11월 24일 개봉해 CGV 아트하우스를 비롯한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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