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 피자, 파스타 등 이제는 외국 음식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즐겨 찾는 음식이다. 우리의 입맛이 글로벌 하게 바뀌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외국 음식이 우리나라에 입맛에 맞게 조금씩 바뀌었기 때문에 즐겨 먹게 된 것. 이처럼 현지에서 사랑받으려면 그 나라의 고유한 입맛을 공략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김치도 마찬가지다. 건강에 좋고, 맛 좋은 김치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려면 현지인의 입맛을 먼저 만족시켜야 한다. 베트남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김치는 이에 충실했기에 지금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한국 김치의 본질과 정통성은 고수하면서도 현지 입맛에 맞게
음식에도 국경이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가 베트남 쌀국수를 즐기듯, 베트남에서는 우리나라의 김치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중에서도 비비고 김치는 시장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사랑받는 음식이다. 하지만 비비고 김치가 처음부터 현지인의 입맛에 딱 맞았던 것은 아니었다.
CJ제일제당이 베트남에 진출한 것은 2016년. 당시 베트남 최대 김치업체인 ‘킴앤킴(Kim&Kim)’을 인수하며 현지 김치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현지인에게 한국 김치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음식인 데다 김치를 먹어본 사람도 많았는데, 시장 규모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김치의 맵고 자극적인 맛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어려웠고, 절임 채소가 다양해 김치를 대체할 음식이 많다는 게 그 이유였다. 베트남 음식과 김치가 잘 어우러지지 못한다는 점 또한 장벽으로 작용했다.
CJ제일제당은 이러한 장벽을 넘기 위해 현지 김치의 맛과 품질 개선에 집중했다. 새로워진 한국김치의 맛으로 기존의 한국 김치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CJ제일제당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현지 생산 라인을 확대했고, ‘비비고’ 브랜드를 앞세워 새로워진 한국 전통 김치를 선보이기로 한다.
김치의 고수가 만든 ‘고수 김치’, 베트남 현지 입맛에 딱!
김치의 고유한 맛을 지키면서 현지의 식문화에 스며들 방법을 찾던 CJ제일제당은 두 가지 전략을 펼쳤다. 첫번째 전략은 바로 ‘한국 발효 기술 기반의 현지화’였다. 재료나 담그는 법 등 김치 본질과 정통성은 지키면서도 현지 소비자 입맛에 맞게 바꿨다. 베트남이 ‘느억맘(베트남식 젓갈)’, ‘유어까이(절임채소)’ 등 발효식품과 절임채소 문화권이라 발효식품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는 점에 집중한 것이다.
발효 기술은 유지하되 김치의 맛은 철저히 현지의 입맛을 따랐다. 맵고 자극적인 맛 때문에 김치를 즐기기 어려웠던 현지인을 위해 매운 정도를 조정했다. ‘비비고 썰은 김치’를 주력으로 내세우되, 베트남인에게 익숙한 향신 채소인 고수를 넣은 ‘고수김치’를 만들었다. 종교적 신념으로 동물성 식재료를 먹지 않는 소비자를 위해서는 젓갈이 들어가지 않은 ‘베지테리언(Vegetarian) 김치’를 선보였다.
두번째 전략은 ‘K-김치라는 한국 정통성 강조’와 ‘제품에 대한 신뢰도 확대’였다. CJ제일제당의 현지 소비자 조사 결과, 베트남 소비자는 ‘품질 안전’과 ‘좋은 원재료’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컸다. 이에 CJ제일제당은 비비고가 한국의 대표 식품기업의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이미 검증된 브랜드라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또한, 좋은 원재료 사용과 자연발효 과정을 강조해 건강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품질 안전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쌓는 데도 주력했다. 구매 이후 맛과 색깔 변화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산 공정을 개선하며 품질 안정성을 꾀했다. 더불어 소포장 단량을 주력으로 하는 한편 지퍼백을 적용해 편리하게 보관하면서도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사이드에서 메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김치
CJ제일제당이 펼친 이 두 가지 전략은 현지에 제대로 통했다. 빅씨마트, 코옵마트, 메트로 등 현지 대형마트를 비롯해 베트남 전역 4,300여 개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게다가 현지에서 김치를 사는 사람 둘 중하나는 ‘비비고 김치’를 선택할 만큼 사랑받는 제품으로 거듭났다. 지난 3년간(2018년∼2020년)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유지하며 현지업체들을 압도적 격차로 따돌리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베트남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20∼30대 젊은층 인구 비중이 높고, 건강과 웰빙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김치의 인기는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치 문화 확산에 따라 김치가 밥에 곁들이는 반찬(사이드 디쉬)의 역할을 넘어 20∼30대는 면 요리 등의 토핑으로, 40대 이상은 볶음요리나 ‘러우’라는 국물요리 재료 등으로 활용도가 확장되는 추세다.
불과 5~6년 전만해도 지금과 같은 사랑을 받지 못했던 한국 김치. 발효 기술과 같은 김치의 핵심은 지키되 현지에 맞는 유연한 전략으로 지금의 비비고 김치가 탄생할 수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김치를 볶아 먹고, 끓여 먹듯 베트남에서도 김치가 메인 요리가 되는 그날까지, 꾸준히 사랑받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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