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서양인들이 아는 아시아 국가는 두 곳 정도밖에 없었다. 중국과 일본이다.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 배경엔 문화의 힘이 컸다. 중국의 문화는 오랜 시간 서양 문화에 영향을 미쳤고,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는 유럽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감을 줬다. 다른 나라의 문화는 특별히 접할 일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 앞에 느닷없이 새로운 아시아 문화가 나타났다. 음악부터 영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한국 콘텐츠들이 불쑥 튀어나와 미국과 유럽 전역의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김희경|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이자 영화평론가, 한국영화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중문화 산업 관련 칼럼을 연재 중이다.
한류의 또 다른 이름 ‘0.7%의 반란’
그래서 한류는 ‘반란’이라고도 불린다. 전 세계 인구의 0.7%에 불과한 한국인들의 문화가 시장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는 의미로 ‘0.7%의 반란’이라 한다. 이 반란의 파급력은 막강하다. 한국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시카고국제문제협의희(CCGA)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100점 만점에 60점으로 나타났다. 1978년 첫 조사 이래 역대 최고 수준이다.
첫 조사 당시 47점이었던 점수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2010년께 들어서야 50점대로 진입했다. 최근 60점대로 뛴 것엔 단연 한류의 영향력이 컸다. 칼 프리도프 CCGA 연구원은 “성공적인 바이러스 방역 사례와 K팝의 인기,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넷플릭스를 통한 한국 프로그램 확산 등 문화적 요소가 호감도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각인되고 스며들기 위해선 유형적인 하드웨어 이상의 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한국의 가전 제품, 자동차 등은 뛰어난 품질로 인정 받아왔지만 외국 사람들의 견고한 인식의 틀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화는 달랐다. 잘 만들어진 한국 콘텐츠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해체하고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냈다. 프랑스의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이 “상품과 문화를 동시에 수출해 본 나라는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과 한국 뿐”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한국은 이제 상품 뿐 아니라 문화까지 판매하며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가 됐다. 물론 우리의 문화는 오랜 시간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힘이 증폭되어, 전 세계 곳곳에 닻을 내렸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한류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이유는?
한국 문화계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관왕을 휩쓸었다. 이때 ‘기생충’이 작품상으로 호명되자 봉준호 감독 뿐 아니라 배우, 제작자 등이 함께 올라 감동과 기쁨을 나눴다. 콘텐츠가 감독 한 명만의 창작물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과 시스템의 결합체임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기생충’의 영광 뒤엔 숨은 주역들이 존재한다. 특히 콘텐츠를 해외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 시키는 힘들고 지난한 작업을 해온 사람들이 있다. 미국 아카데미 상은 8000여명의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관객들의 반응도 중요하지만 영화계 오피니언 리더인 AMPAS 회원들의 표심을 사로잡아야만 한다. 이 경쟁은 ‘할리우드판 대선’으로 불릴 정도로 치열하게 펼쳐진다. 수많은 인력, 예산을 동원해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이를 위해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캠페인 전담팀을 상설 조직으로 두고 있다.
한국 영화계 관계자들에겐 이 모든 과정이 처음이었다. 하나하나 부딪혀 가며 진행해야 하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름의 정교하고 체계적인 전략을 짜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CJ ENM은 지난해 5월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직후부터 캠페인에 돌입했다. 예산 수립부터 개봉 현황 관리, 시사회 개최, 광고와 같은 현지 프로모션을 총괄했다. 북미 배급을 맡고 있던 NEON과 분업화도 진행했다. NEON은 북미 프로모션 전략을 짜고 북미 영화제 출품 등 실무를 맡았다. 이같이 작품과 감독을 전 세계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지원하는 시스템은 영화의 가치와 결합해 기적을 만들어냈다. 나아가 승리의 전략은 한국 영화 산업에 내재화 되어 ‘제2의 기생충’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만약 동양인들에게 배타적인 현지에서 수상 가능성만 따지고, 실패를 두려워했다면 이런 시도는 처음부터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문화 뿐 아니라 모든 산업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하고 지원하는 주체들이 있어야만 발전할 수 있다. 세계 산업의 중심에 있는 실리콘밸리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처음엔 천재성을 가진 몇 명의 인물들이 허름한 창고에 모여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이후엔 벤처투자자(VC)들이 나타나 이들의 아이디어가 꽃필 수 있도록 기다려주며 지속적으로 투자와 지원을 해줬다. 천재, 자유로운 분위기, 후원자의 결합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어냈고, 현대 사회 문명은 이 정신을 기반으로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됐다.
우리가 반복해서 회자하는 ‘르네상스’ 시대도 마찬가지다.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조각가들은 메디치 가문의 ‘조각정원’에서 탄생했다. 조각정원은 메디치 가문이 소장하고 있던 고대 조각들로 장식된 곳이다. 메디치 가문은 이곳에서 조각가들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도 실시했다. 미켈란젤로는 15세의 나이에 조각정원에 들어와 조각 활동을 하며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했다.
든든한 투자와 지원 시스템을 통해 이어 나가는 한류
다시 한류 얘기로 돌아가 보면, 한국 문화 시장에도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봉준호 감독,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뛰어난 아티스트들은 그들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투자와 지원 시스템 위에서 마음껏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 이후에 다시 한번 기적을 쓸 아티스트가 배출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국내 중소형 기획사의 아이돌 그룹들은 K컬처 페스티벌 ‘케이콘(KCON)’을 통해 2012년부터 꾸준히 해외 무대에 오르고 있다. 지난 6월과 10월엔 디지털 플랫폼에서 열린 ‘케이콘택트(KCON: TACT)’를 통해 전 세계 팬들을 찾아갔다. 10월에 열린 케이콘택트 시즌 2엔 440만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시청했다. 8년간 오프라인으로 선보인 케이콘 누적 관객 수의 4배에 달한다. 이 관람객들의 마음에 앞으로의 한류를 이끌 누군가가 깊이 새겨지지 않았을까.
“마침내 첫 문장을 쓰는 순간, 나는 100년 후의 세계를 믿어야 했다.” 지난해 소설가 한강은 100년 후 출간될 미공개 소설 원고를 노르웨이의 ‘미래도서관’에 전달하며 이같이 말했다. 현재 해외 곳곳에 뿌려지고 있는 한국 문화의 씨앗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보다 더 빛날 한류의 미래를 그리며, 새로운 문장을 함께 쓰고 있다.
『지난 시리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