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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의 차이 또는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마주하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삶 속에서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쉽게 터부시되고 경계의 대상이 되지만 우린 모두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이동윤 | 영화 평론가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메인 포스터(출처: 네이버 영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신작, <강변의 무코리타>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 또한 각자의 사연 속에서 죽음을 경험한다. 그 모습이 타인의 시선에는 낯설고 고립된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으나, 적어도 감독은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하게 그들을 바라본다. 그래서일까? <강변의 무코리타>는 죽음이 아프거나 슬프지 않다. 오히려 삶과 죽음이 하나의 공간 안에 머무는 모습을 담아내어 관객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무코리타 빌라 사람들 무코리타 빌라에 모여 살아가는 사람들(출처: 네이버 영화) 삶의 비밀을 간직한 야마다가 낯선 어촌 마을에 들어온다. 오징어 젓갈 공장에 취직하고 ‘무코리타’라는 이름의 빌라에 새들어 살며 마을에 자리를 잡는다. 무코리타 빌라에는 남편을 잃고 딸과 함께 살아가는 외로운 집 주인 미나미와 시도 때도 없이 야마다의 집에 쳐들어와 자기 멋대로 목욕도 하고 밥도 먹고 가는 미사다, 아들과 묘석을 팔러 다니는 미조구치가 더불어 살아간다. 주변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그 어떤 교류도 원하지 않던 야마다에게 무코리타의 이웃들은 여간 귀찮은 상대가 아니다. 그다지 살갑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관심하지도 않은, 오히려 타인과 자신 사이에 그 어떤 경계도 존재하지 않은 것 같은 오지랖으로 야마다 주변을 배회한다. 결국 야마다는 무코리타 이웃들과 동화되어 잃었던 삶의 의미를 조금씩 되찾아간다. 물론, 이러한 해피엔딩이 그들에게 쉽게 허락되진 않는다. 각자가 극복해야 할 상처와 트라우마, 수용해야 할 아픔을 감내했을 때야 비로소 그들에게 해피엔딩이 찾아온다. <강변의 무코리타>가 알려주는 죽음 통찰의 비법 미조쿠치의 식사에 비집고 들어가 밥을 먹는 야마다와 시마다(출처: 네이버 영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에게 행복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자아 성찰의 과정을 넘어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인물들은 그 누구도 스스로 깨닫고 성장하지 않는다. 오직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서로 뒤엉켜 있는 관계망 속에서만 성장이 허락된다. <강변의 무코리타>는 그 관계의 중심에 ‘죽음’을 올려둔다. 죽음은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마주하고 있는, 또는 마주해야만 하는 실존적 조건이다. 야마다는 오랫동안 관계가 끊어졌던 아버지의 죽음과 만나고, 미나미는 남편의 죽음 이후 홀로 남겨진 자신의 삶과 만난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상실감 속에서 그 어떤 소유도 거부한 채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시마다는 이미 죽은 상태와 다름없고, 묘석을 파는 미조구치는 이미 존재 자체로 죽음을 깨닫고 상기시키는 저승사자와 같다. 아들과 함께 묘석을 팔러 다니는 미조구치(출처: 네이버 영화) 이들에게 죽음은 고통이자 외면하고 싶은 진실, 또는 극복할 수 없는 절망적 사태다. 하지만 감독은 그들의 곁에 놓인 죽음으로 그들을 연결시키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죽음의 의미가 사뭇 달라짐을 경험케 한다. 무엇이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키는가? 무엇이 죽음에 담긴 고통과 공포, 절망과 고독을 극복하도록 만드는가? <강변의 무코리타>는 이 질문들에 대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만의 답안지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시간, 무코리타 함께 폭풍을 견뎌내고 깨어난 야마다와 시마다(출처: 네이버 영화) 불교의 시간은 크게 찰나(刹那)와 겁(劫)으로 구분된다. 찰나가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짧은 순간을 가리킨다면, 겁은 우주의 태동과 멸망을 모두 포괄하며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긴 시간을 뜻하다. 찰나와 겁의 시간 모두 인간은 절대 인지할 수 없다. 근대화의 산물로 인해 시계가 탄생하고 그로 인해 인간이 시간을 통제한다 믿고 있지만, 불교에서 시간은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불교의 시간 개념을 통해서 인간은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역동하고 있음을, 이미 디자인된 원인과 결과의 세계 속에서 단지 우연의 연속으로 서로 관계 맺고 인연을 만드는 존재일 뿐임을 깨달을 뿐이다. 무코리타(牟呼栗多)는 찰나와 겁 사이 어딘가에서 변화되는 과정의 시간을 형상화한다. 1/30일, 48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시간은 곳 낮이 밤으로 바뀌는 시간, 세상이 전복되고 전혀 반대인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과정의 시간을 가리킨다. 찰나와 겁의 시간이 절대 인지할 수 없는 시간이라면 무코리타는 적어도 인지 가능한 시간이다. 문제는 그 인지 가능성을 우리는 모두 외면하거나 보지 못하며 살아간다는 데 있다. 삶이 죽음으로 전환되는 과정 또는 그 전환 속에서 잠시라도 공존하는 삶과 죽음의 공간은 인간에게 고통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소멸되는 것의 덧없음, 의미 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코리타의 시간과 대면하는 방법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메인 포스터(출처: 네이버 영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죽음이 절대 존재의 망각이자 생의 끝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죽음을 통해 우리는 삶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며 조금씩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고 위로한다. 그 과정은 오직 무코리타의 시간 속에서만 가능하다. 삶과 죽음이 서로 마주하는 순간, 해가 지면서 흩뿌리는 짙은 노을이 온 대지를 덮으며 서서히 어둠을 끌어들이는 변화의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의 순간이자 고통과 대면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이다. 우리는 어쩌면 죽음을 너무 강력하게 고통과 직결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통을 더 이상 느끼지 않기 위해 죽음을 터부시 여기며 삶만을 찬양해왔는지도 모른다. <강변의 무코리타> 속 인물들을 통해서 잠시 우리의 삶 속에도 존재하는 무코리타의 시간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혼자라면 외롭고 두렵고 쓸쓸하겠지만,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혹은 더 나아가 영화 속 인물들이 그러하듯 우리 주변 사람들과 함께 뒤엉켜 그 시간을 견뎌본다면 생각보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음을, 우리의 바로 곁에서 항상 더불어 살아가고 있었음을 깨달을지도 모르겠다. ‘카모메 식당’, ‘안경’ 등 따뜻한 힐링 무비를 선보인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작품이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 등에서 국내 관객들과 만나 호평받은 바 있다. ‘강변의 무코리타’는 8월 23일 개봉해 CGV 아트하우스를 비롯한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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