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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조율이 필요한 순간은 피아노 소리가 이상하게 들릴 때만이 아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내는 의견이 난무할 때도 그렇다.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 리딩공연작 <헤르츠>는 이 두 순간이 무대에서 펼쳐진다. 피아노 조율사를 소재로 서로 다른 두 인물의 파열음이 점차 조율되는 과정을 통해 각자 감춰진 내면의 상처까지 치유되는 이야기는 보기보다 그 울림이 크다.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처음 만난 유지혜 작가, 김여우리 작곡가는 어떤 조율 과정을 통해 울림의 진동(hertz)을 만들어냈을까? 피아노 조율사의 이야기로 뭉치다!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 뮤지컬 <헤르츠>의 김여우리 작곡가, 유지혜 작가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의 마지막 리딩공연작 <헤르츠>는 죽은 조율사 아이슨(유성재)의 딸 울림(박란주)이 유언에 따라 아버지의 제자인 현(안창용)을 만나 피아노 ‘나무’를 조율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피아노 ‘나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이슨의 감춰진 인생을 알게 된 울림과 현은 각자 피아노와 관련된 아픔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한다. <헤르츠>만의 매력은 다수의 작품에서 많이 다뤘던 피아노 연주자가 아닌 조율사를 극의 중심에 세운 점이다. 멋진 피아노 연주를 위해 꼭 필요한 조율사지만, 정작 자신의 아픈 상처를 조율하지 못하는 상황의 아이러니함, 그 또한 누군가의 도움(조율)을 통해 상처를 치유 받고 아름다운 세상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는 공감을 자아낸다. 배우로 시작해 작가로 선회한 유지혜 작가는 2015년 독일 베를린 여행 당시 바이올린 공방에서 한 장인이 바이올린 수리를 하는 모습을 눈여겨봤고, 이에 영감을 얻어 <헤르츠>의 시놉시스를 쓰기 시작했다. 관객과 작품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바이올린에서 피아노로 변경했고, 피아노 조율사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써 내려 갔다. 피아노 조율사의 이야기는 김여우리 작곡가에게도 흥미로웠다. 지인을 통해 유지혜 작가가 작곡가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헤르츠>의 대본을 읽었고, 연주자보다 주목을 덜 받지만 중요한 일을 하는 조율사가 극의 중심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움직였다. 이후 김여우리 작곡가는 그 새로운 도전에 같이 동참하기로 했다. 스테이지업 과정을 통한 ‘헤르츠(hertz)’ 찾기 뮤지컬 <헤르츠>의 (좌부터) 박란주, 유성재, 안창용 배우 유지혜 작가는 <헤르츠>의 시놉시스를 쓸 때부터,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 공모를 염두하고 있었다. 신인 창작자라면 누구나 신청한다는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은 뮤지컬 <모비딕> <여신님이 보고계셔> <풍월주> 등 2010년부터 신인 창작자들의 작품 개발 및 시장 진출을 돕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200만 원의 창작지원금을 비롯해 전문가 멘토링과 작품 개발 지원, 리딩공연 제작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들 또한 스테이지업의 주인공이 되고자 노력했고, 합격의 결과를 얻었다. 면접 당시 심사위원들도 피아노 조율사의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더불어 극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 면접 때부터 작품 개발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합격 이후, 더욱 심도 있는 멘토링을 통해 리딩공연을 위한 수정 및 개발이 이어졌다. 멘토들의 도움으로 보게 된 책과 영화로 피아노 구성의 가닥을 잡았다는 창작진들 9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자신들의 생각하는 바를 작품에 담는 건 신인 창작자들에게 힘든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멘토링 전문가들의 도움은 절실하게 필요할 터. 특히 <헤르츠> 같은 경우 조율사가 주인공이라는 특징은 있었지만, 극 후반까지 주요 인물을 끌고 나가는 과정, 그리고 극의 또 다른 주인공인 피아노에 어떤 방식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이들의 어려움을 알게 된 멘토들은 피아노 조율에 관련된 도서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과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를 추천해줬고, 이후 고민의 실타래가 하나씩 풀려나갔다. 그 결과, 리딩공연작으로 선정된 두 사람은 극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두 주인공의 내적 상처와 치유 과정을 잘 보여주기 위해 극 초반 경쾌했던 분위기 톤을 낮췄고, 후반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야기를 드러내고 이를 직시하는 인물에게 집중하는 구조로 다잡았다. 더불어 피아노도 울림과 현의 내면을 보여주는 쓰임으로 각각 그랜드피아노와 망가진 업라이트 피아노를 위치시켜 시각적, 청각적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냈다. 이처럼 지속적인 수정과 보완을 통해 관객들의 박수 갈채를 이끌어낸 완성도 높은 리딩공연이 완성됐다. 불통의 세상에서 외치는 소통의 울림 작가를 꿈꾸는 울림은 타자기를, 조율사인 현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등장하며, 이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알게 해주는 극 초반 장면 <헤르츠>는 피아노 조율 장인에 관한 이야기로 출발했지만, 결국 불통의 세상 속에서 이뤄지는 소통의 순간을 이뤄내는 과정을 그린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완벽한 소통은 이뤄지기 힘들다고 믿는 유지혜 작가. 하지만 작품에선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것처럼 서로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소통의 울림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이를 위해 가족보다 조율사란 직업이 우선인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고 피아노를 멀리한 딸, 그리고 절망 뿐인 세상에서 자신을 구원해준 조율사 스승을 그리워하는 제자 등 인물을 배치하고 피아노 ‘나무’ 조율을 위해 현재와 기억을 넘나들며 한자리에 모인 이들의 이야기를 구성한 것이다.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는 바로 플래시백 장면. 영화와 달리 뮤지컬에서의 플래시백은 자칫 잘못하면 극의 분위기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유지혜 작가는 이 요소를 통해 과거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점차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울림과 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꼭 필요했다고 말한다. 이런 마음에서일까? 그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넌 듣는 귀가 아주 좋아,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걸 느낄 수 있어.”라는 아이슨의 대사다. 스승으로서 자신감이 부족한 현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인데, 아무리 절망에 빠져 있어도 그 사람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려주는 부분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리허설과 본 리딩공연 때도 무대에서 피아노를 담당하며 배우들과 호흡한 김여우리 작곡가 이번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피아노 자체가 캐릭터로 활용됐다는 점이다. 앞서 관객을 만났던 리딩공연작 세 작품과 비교했을 때도 단순히 극을 위한 음악적 장치로 쓰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건반 소리만이 아닌 현을 직접 튕기거나 조율이 되지 않은 피아노로 연주를 하는 등 활용 면에서 돋보였다. 특히 김여우리 작곡가의 손에서 시작되는 다양한 피아노 연주는 일품. 하지만 정작 본인은 너무 아쉬웠다고. 원래 계획상 피아노 수는 두 대가 아닌 세 대였다. 하나는 연주를 위한 것으로, 다른 두 대는 ‘나무’와 현이 연주하는 망가진 업라이트 피아노로 사용할 계획이었던 것. 하지만 공간상 두 대밖에 들여놓지 못했고, 가장 중요한 장면인 울림과 현의 피아노 ‘나무’ 조율 장면은 최소화로 표현해야 했다. 하지만 환경적 제약이 창작의 나래를 더 펼치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때가 있는 법. 피아노의 한 음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면서 점점 조율되고 있다는 것을 소리로 시각화 한 것이다. 리딩공연을 앞두고 리허설 무대에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김여우리 작곡가 뮤지컬 넘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나무’를 조율할 때 나오는 ‘서로 다른 줄이야’와 함께, 맨 처음 작곡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를 언급했다. 이 곡은 작품의 전체 음악 톤을 잡아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동시에 평소 자신의 색이 담긴 곡이라 애착이 갔다고. 더불어 뮤지컬 넘버는 아니지만 극 중 현이 망가진 업라이트 피아노로 연주하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Träumerei)’도 소개했다. ‘꿈’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이 곡은 1986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모스크바에서 6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뒤 마지막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연주해 알려졌다. 그녀가 이 곡을 사용한 건 상처를 딛고 일어나 또 다른 꿈을 꾸는 현의 마음과 잘 맞을 것 같아서 골랐다고. 피아노를 전혀 못 치는 안창용 배우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서 빛을 발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도 표했다. 조율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의 과거사를 담은 뮤지컬 넘버 ‘또 다른 문을 열어’ 창작자로서 공연이 끝나면 보람보다 아쉬움이 더 남는다. 최종 공연으로 가는 과정에서 열린 리딩공연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뮤지컬 <터키소녀> <다이얼> 등 다수의 지원사업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 개발을 경험했던 유지혜 작가는 이전 작품과 달리 가장 적은 세 명의 인물로 극을 구성하다 보니 후반부까지 끌고 나가기 힘들었다고. 인간 내면의 깊이와 본질을 전하는 데 한계점을 맞았다고 토로했다. 김여우리 작곡가도 아이슨이 피아노 ‘나무’와의 첫 만남을 소개한 넘버 ‘나무의 전설’, 현에게 좌절을 안긴 과거 사건 소개 넘버 ‘또 다른 문을 열어’ 등 곡 안에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지만 부각되지 못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에겐 조율의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 리딩공연 이후 각자 깨달은 아쉬운 부분, 그리고관객들의 피드백을 자양분 삼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예정. 이들은 CJ문화재단이 준 소중한 기회를 통해 더 발전된 모습을 선보이고 싶다는 공통된 마음을 전했다. 조율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점이 스테이지업을 통해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남들이 안 했던 소재를 찾아 꾸준히 작품화하고 싶어요.– 유지혜 작가 – <헤르츠>를 통해 신인 창작자로서 많은 힘을 얻었어요. 이번 공연에서 얻은 에너지로 힘을 내서 꾸준히 뮤지컬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김여우리 작곡가 – 피아노 줄은 저음을 제외하고 세 줄로 되어 있다. 조율은 한 줄씩 해야 하기에 나머지 두 줄은 묵음기로 소리를 죽인다. 마치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남의 이야기에 경청하는 이들처럼 말이다. 유지혜 작가와 김여우리 작곡가는 이번 공연을 통해 조율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했다. 자신의 의견보다 상대방의 의견에 더 귀 기울여야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보다 관객이 원하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율을 완벽하게 마친 피아노라도 줄은 느슨해지기 마련. 이들 또한 마찬가지지만, 그때마다 이번 공연의 준비과정을 기억할 것이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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