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화려할수록 그 이면엔 수많은 사람의 흘린 땀과 노력이 배어있다. 일일이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이들이 협업을 이루는데, 이를 조율하면서 멋진 무대를 완성하도록 이끄는 게 바로 무대감독의 역할이다. <엠카운트다운>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CJ ENM 무대감독 김민재 님을 만나봤다.
무대도 하나의 건축이라는 생각으로~
김민재 님은 2013년 CJ ENM 하반기 공채 입사 후, 현재 T&A사업부 아트크리에이션 3팀에서 무대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약 6년 동안 그는 <엠카운트다운>을 비롯해, <슈퍼스타 K> 시리즈 <프로듀스 101> 시리즈, <코미디 빅리그> 등 쇼, 예능을 맡으며 무대감독으로서의 노하우를 쌓았다. 하지만 처음 그의 관심사는 방송이 아닌 건축이었다.
원래 건축을 전공한 그는 방송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무대감독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잘 몰랐다. 보통 디자인, 건축 등의 전공자들이 지원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명도 건축 조명밖에 모르는 등 주 관심사가 다르다 보니 그에게는 새로운 세상이었던 것. 그러던 그가 직접 스튜디오에서 쇼 프로그램을 본 후 생각이 바뀌었다. 자신도 모르게 방송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이다.
그의 마음을 빼앗은 건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가 아닌 무대 자체였다. 건축의 경우 설계 디자인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바로 건축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이 일은 빠른 시간 안에 설계 도면에 맞는 건축물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에 매력을 느꼈고, 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신입 시절, 힘들게 만든 무대가 방송이 끝나면 온데 간데 사라지는 허탈함에 시달렸지만, 언제부턴가 자신도 빨리 철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어버렸다고.
매번 새로운 무대를 창조하는 비결은?
CJ ENM의 무대감독은 연극, 뮤지컬 분야와 타 방송사와 다르게 세트, 영상, 전식(전기효과), 조명, 소품, 특수효과, 연출까지 담당 영역이 넓다. 이는 하나의 무대가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매주 목요일 방송되는 <엠카운트다운>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방송 전 주 금요일 사전 기획 회의를 갖는다. 이때 아티스트 라인업이 정해지면, 그것에 맞게 제작될 무대 컨셉트를 논의하고, 무대 제작 스케줄 가안을 뽑는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무대 디자이너들이 작업한 도면 시안을 갖고 2차 회의를 진행한다. 이때 세트팀, 영상팀, 전식팀(전기효과), 조명팀, 소품팀, 특수효과팀, 구조물 팀 등 각 팀의 수정 의견을 받고 도면을 확정한다. 이후 각 팀에 맞게 무대 세팅 일정을 잡고 방송 전날인 수요일부터 본격적인 무대 세팅 작업에 들어간다.
이처럼 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탄탄한 준비작업은 물론, 많은 스탭들이 참여한다. 그만큼 각 파트별 의견이 나올 수 밖에 없을 터. 무대감독은 원활한 협업 원칙을 기준으로 의견을 받아들이고, 조율해야 하며, 무대 완성이라는 종착점까지 이들을 이끌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각 영역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물론,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은 갖춰야 한다.
<엠카운트다운> 경우, 컴백무대가 있는 날이면 그의 역할은 커진다. 컴백무대 경우 보통 2~3곡을 하기 때문에 각기 다른 콘셉트로 무대를 꾸며야 하기 때문. 이를 위해 선공개 되었던 뮤직비디오 등 영상물을 통해 아티스트 및 댄스팀 인원과 동선, 곡 느낌 등을 미리 파악해 조명에도 힘쓴다고. 조명감독으로 출발한 그는 누구보다 조명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조명 담당 스탭과 의견을 나누며 마지막 조율에 들어간다. 인터뷰 당일 엑스원과 선미의 컴백무대가 있었는데, 두 아티스트의 메인 곡 느낌에 맞춰 다른 무대 분위기를 선보였다.
다른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시작한 <퀸덤>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무대를 꾸민다. 총 6팀의 걸그룹의 컴백 대전을 그린 이 프로그램에서는 미션에 따라 걸그룹 수만큼 각기 다른 6개의 무대가 펼쳐져야 한다. 김민재 님은 조명과 영상, 특수 효과 등을 사용해 아티스트 별로 차별화를 구현하는 걸 중심으로 잡고 작업을 진행했다고.
(여자)아이들 경우, ‘LATATA’의 곡 특성상 어두운 톤을 유지하며 무대 상부와 바닥에 레이저 장치를 설치, 붉은빛이 무대를 가득 채우며 기묘한 분위기가 연출되도록 디자인했다. 다른 걸그룹과 달리 솔로로 나온 박봄은 중앙 영상의 슬라이딩 장치를 사용해 영상을 좌우로 열고, 영상 뒤쪽의 조명을 함께 사용해 솔로임에도 무대가 꽉 차 보이는 공간감을 구현했다.
글로벌 프로덕션 매니저라는 새로운 모험?
김민재 님은 2018년부터 글로벌 프로덕션 매니저로서 새로운 업무를 맡고 있다. 그가 담당한 글로벌 행사는 ‘2018 MAMA in HK’과 ‘KCON 2019 LA, NY’. 성격상 ‘MAMA’는 쇼인 동시에 시상식 컨셉트라서 아티스트마다 다르고, 고퀄리티의 무대를 선보여야 하는 게 특징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신기술 및 무대 장치 등을 사용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워너원 무대에 사용했던 모션 인터렉션 기술을 접목한 영상 트랙킹 기술이다.
당시 워너원은 3년의 공식 활동 마무리 시기였는데, 연출팀과 회의를 통해 워너원으로서의 첫 시작부터 그들의 걸어온 발자취를 되새기고 마지막 끝맺음을 한다는 스토리라인을 잡았다. 중요한 물품은 가방. 가방을 통해 프로젝션이 되는 영상은 강다니엘이 이동하는 동안 그를 따라서 움직인다. 기존 모션 인터렉션 기술을 차용해 MAMA 스타일로 구현한 사례 중 하나. 이를 위해 기술력을 보유한 협력사, 연출팀, 미술·기술 감독 등 유관 부서 담당자들과의 긴밀한 협업이 필수라는 걸 깨달았다.
KCON 2019 LA, NY 행사는 해외 업무 자체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려준 계기가 되었다. 해외다 보니 그 나라 스탭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 환경인데, 우리 방식대로 밀고 나가지 않고 그들의 문화에 맞춰 협업을 이루는 체계를 몸소 부딪치면서 습득한 것.
이번 KCON 2019 NY는 모든 아티스트들이 꿈의 무대로 꼽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장에서 열렸는데, 비자 문제로 세트 작업 완료 후 리허설 날 도착했다. 3개월 전부터 이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기에 처음부터 작업하지 못했다는 것에 아쉬움은 들었지만, 큰 사고 없이 피날레 무대까지 마칠 수 있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
더 나은 무대감독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대감독으로서 반갑지 않은 손님은 항상 현장을 방문하는 변수다. 늘 준비한 대로 안 되는 게 바로 이 일이라 매번 변수와의 전쟁을 벌인다는 그는 언제나 플랜 B, 플랜 C를 생각한다. 무대감독 역량 중 하나는 변수를 맞닥뜨렸을 때 바로 대안을 찾아 담당 PD에게 의견을 피력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하지만 이런 능력은 단시간에 이뤄질 수 없다. 다양한 경험과 관련 분야의 공부가 수반 되어야 가능하다.
김민재 님도 이런 부분에서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신입 시절 선배들에게 무대와 인물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조명의 중요성을 배웠고, 해마다 새로운 트렌드와 최신 무대 기술이 선보이는 MTV VMA(Video Music Awards), 슈퍼볼 공연 등은 꼭 찾아본다. 열심히 일하다가도 사무실에 마련된 모니터를 통해 최신 공연 무대를 즉각적으로 보고 메모도 한다고. 기회가 되면 CES(세계가전전시회) 등 기술 관련 전시회도 참관하며, 자신만의 레퍼런스를 축적하고 이를 자신의 방식대로 실행에 옮기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에게 더 나은 무대감독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게 앞서 말한 것들이라고 물어보니, 되려 ‘안전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설 시설물이 가득한 무대 현장에서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안전이 곧 기본이라는 자세로 손전등과 형광테이프는 꼭 갖고 다니며 암전 시 일어날 수 있는 안전 사고를 대비한다.
이렇듯 오랫동안 현장에서 결과물을 내고 있는 김민재 님. 조명 오퍼레이터로 시작해서 한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무대감독을 지나, 글로벌 업무를 병행하는 등 해를 거듭할수록 자신의 역량을 표출하고 있다. 과연 그의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
글로벌 업무를 하면서 프로덕션 매니징 업무에 흥미를 느꼈어요. 해외에서 공연 무대가 기획대로 문제없이 설치되고, 철수까지 되는 총괄 업무를 지금보다 더 디테일하게 잘 해내고 싶어요.
김민재 님은 매번 이 일이 쉽지 않다고 느낀다. 일의 강도를 떠나 너무 빠르게 변하는 방송 트렌드에 입각해 결과물을 내는 게 어렵기 때문. 하지만 그만큼 성취감은 배가 될 수 있다. 어쩌면 그가 이 일을 계속하는 건 열정과 성취감이 비례한다는 게 아닐까. ‘오늘도 해냈다’라는 성취감을 얻기 위해 현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의 뒷모습은 그래서 빛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