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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이하 ‘<밤쉘>’)은 직장 내 성폭력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빠르고 재치 있는 달변가의 화법을 잃지 않는다. 그 이유는 <빅쇼트>의 각본을 담당한 찰스 랜돌프가 드라마에 감정적 깊이를 부여하면서도 풍자와 재치 있는 톤 앤 매너를 유지했기 때문. 그가 <빅쇼트>와 마찬가지로 <밤쉘>에서 관객의 흥미와 주의를 끌고 제법 경쾌한 리듬감을 자처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작품을 피해자들의 영화가 아닌, 고발자들의 영화로 이해한 까닭이다. 폭로하는 여성, 연대하는 여성, 싸우는 여성,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은 여성들이 바로 <밤쉘>의 주인공이다. 김소미 |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제각기 고유하고 무모한, 영화의 틈새가 궁금하다 미국 언론계의 역사적 폭로 사건 2016년, 미국 최대 방송사 폭스뉴스 스캔들 실화를 다룬 <밤쉘>(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밤쉘>의 이야기는 먼 과거가 아니다. 불과 4년 전, 미국에서 일어난 폭스뉴스 CEO 로저 에일스 고소 사건이 바탕이 됐다. 2016년, 폭스뉴스의 인기 앵커 그레천 칼슨은 회사로부터 부당하게 퇴사를 강요 받은 뒤 과거 로저 에일스의 성폭력 사실을 고발했다. 그레천 칼슨은 로저 에일스의 성상납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주요 방송 시간대에서 밀려난 전력이 있었다. 이후 놀랍게도 당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앵커 메긴 켈리가 칼슨의 움직임에 동참하면서 많은 여성들이 속속 목소리를 보탰다. 이 사건은 미국 거대 미디어 산업계 내 최초의 직장내 성희롱 소송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 사건은 훗날 미투 운동과 더불어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폭로 사건을 잇게 한 촉발점이다.(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이 역사적 변화가 하필이면 미국 내에서 가장 보수적 성향을 가진 폭스사라는 점은 세간에 적잖은 충격과 파장을 낳았다. 그레천 칼슨의 첫번째 폭로 이후 사건은 약 16일 간에 빠르게 진전됐다. 여성들이 용기가 일으킨 약 2주 간의 폭풍은 앞으로의 20년을 바꿀 만큼 거셌다. 2016년에 시작된 이 변혁은 이후 시작된 ‘미투 운동(#MeToo Movement)’과 무관하지 않다. 2017년에 할리우드 배우들과 지망생들이 거물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여러 성폭력을 폭로할 수 있게 된 데에는 폭스뉴스 사건이 심어준 긍정적 선례도 중요한 작용을 했다. <밤쉘>은 그런 의미에서 방송-연예계에 만연한 성폭력에 대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는, 최초의 촉발점이자 분수령을 포착한 영화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캐릭터의 묘 극중 다면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세 명의 앵커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 케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정치계 블랙리스트를 다룬 <트럼보>의 제이 로치 감독, 그리고 <빅쇼트>의 작가 찰스 랜돌프는 <밤쉘>의 주요 인물인 세 명의 앵커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 케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이 제각기 무척 다면적인 인물이 되길 바랐다. 영화는 세 인물들이 영웅적인 면모만큼 각자의 모순 혹은 비판받을 만한 지점까지 내보이도록 유도한다. 일례로 메긴 켈리는 성평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2016년 미 공화당 대선후보 토론에서 트럼프의 여성 비하 발언을 문제 삼아 일약 주가가 오른 변호사 출신 앵커다. 여성의 주체성과 권리를 주장하는 동시에 자서전에서는 페미니스트라는 용어를 부정했고, 산타클로스는 당연히 백인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종주의적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인종주의적 발언 등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메긴 켈리. 그렇다고 해서 성희롱이 무효화 되는 것은 아니다.(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로저 에일스를 고발 후 폭스를 떠난 메긴 켈리는 미국 3대 방송사인 NBC로 이직했는데, 할로윈 뉴스를 전하며 ‘블랙 페이스’라는 표현을 사용해 지난해에는 결국 퇴출당하기까지 했다. 인종주의적 발언과 페미니즘에 관한 모순적 발언들은 메긴 켈리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발언의 유해성이 끼칠 여파가 상당하고 비판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메긴 켈리가 여성 앵커로서 로저 에일스(존 리스고)에게 당해야 했던 성희롱이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 사내 계급과 젠더 권력의 측면에서 그는 약자였고 피해자였으며, 앞서 언급했던 고발자로서 그의 용기는 세상을 바꿨다. 주요 인물 세 명중 허구의 인물로서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선 보인 케일라(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비슷한 맥락에서 그레천 칼슨은 세계 소녀의 날에 메이크업을 전혀 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설만큼 주관이 분명한데, 한편으로는 총기 소지에 동의하는 의견을 강력히 피력해서 반대파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허구의 인물인 케일라 포스피실은 스스로를 기독교 밀레니얼 세대라고 지칭할 만큼 젊은 보수파로서의 성향이 뚜렷하다. 그레천, 메긴과는 세대의 구분이 확연한 90년대생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 밀레니얼 세대를 가장 쉽게 대표하는 이미지로는 보기 어려운 복음주의자적 특성을 부여한 것 또한 다층적인 캐릭터 해석을 시도하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선명한 지점이다. 클로짓 레즈비언이고 힐러리 클린턴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케일라의 동료 제스(케이트 맥키넌) 또한 폭스뉴스에서 누구보다도 유능하게 일하고 있는 독특한 캐릭터다. 이렇게 <밤쉘>은 피해자 혹은 소수자이면서 한편으론 기득권이고, 세상을 바꾸는 운동가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논란의 요소들을 품고 있는 인물들이야 말로 곧 우리 현실 속의 주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밤쉘>은 여성들의 피해 사실에 집중하기 보다는, 미투 운동의 복잡다단한 내부 사정과 회색 지대, 저마다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정의와 허점을 모두 보려는 시도를 통해 진정 흥미로워진다. 미래 세대를 향한 메시지 메긴과 그레천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어린 딸! 이는 미래 세대를 향한 이들의 싸움이 다음 세대들을 위한 것이라고 암시한다.(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선구적이고 의미심장한 역사적 사건을 다룰수록 영화는 자칫 균형을 잃고 뜨거워지기 쉽다. 그런 맥락에서 <밤쉘>은 섣불리 교조적이거나 통쾌하려들지 않는다. 대신 매우 분명히 미래 세대를 향한 책임감과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과업들을 이야기한다. 특히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자신보다 어린 세대들을 바라보는 장면들을 눈 여겨 볼 만하다. 이를테면 메긴은 극 중에서 그레천의 폭로에 동참하기 전 자신의 남편에게 로저 에일스에 대한 양가 감정을 이야기한다. 자신을 스타로 키워주었던 에일스에 대한 일말의 유대감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메긴이 이렇게 내적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남편과의 퇴근 장면은 뒷좌석에서 잠든 어린 딸을 바라보는 메긴의 시선으로 마무리된다. 퇴사 후 대부분을 실내에서 머무르며 로저 에일스와의 싸움을 지속 중인 그레천이 승리를 예감 후 또렷이 바라보는 대상 또한 어린 딸의 얼굴이다. 영화는 클로즈업을 통해 이 소녀의 얼굴을 스크린에 확실히 각인시킨다. 마고 로비가 연기한 캐릭터 케일라 포스피실 또한 밀레니얼 세대로서 메긴에게 일침을 놓는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그랬다면 다음 세대들이 조금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밤쉘> 속 고뇌하는 인물들이 결국 용기를 갖도록 독려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다음 세대를 향한 책임감이다.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여성들의 거센 분노가 하나 둘 모여 거대한 물살을 이루고, 이 물살은 언제나 과거가 아닌 미래로 가려 한다. <밤쉘>은 바로 그 미래로의 움직임에 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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