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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간 함께 해 온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의 사랑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치매라는 질병 앞에서 그 사랑은 여지없이 시험대에 오른다. 기억을 잃어가는 자의 아픔을 지켜보며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무엇일까?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잃고 싶어 하지 않는 자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 남은 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 영화’슈퍼노바’는 거부할 수 없는 이별을 목전에 둔 두 남자의 마지막 순간을 잠잠히 그려낸다. 떠나는 자와 남은 자의 풍랑 같은 격한 감정들을 차분한 어조로 그려낸 감독의 목소리를 영화 속 장면들을 통해서 살펴본다. 이동윤 | 영화 평론가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1 행동이 아닌 표정을 통해 전달되는 인물들의 표정 친구들을 위한 편지를 읽는 터스커(스탠리 투치)를 바라보는 샘(콜린 퍼스).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터스커를 향한 샘의 시선은 많은 감정을 담고 있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피아니스트 샘(콜린 퍼스)과 소설가 터스커(스탠리 투치)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연인이다. 터스커의 치매 진단 이후 두 사람은 복잡한 머리를 조금이라도 식혀보고자 샘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난다. 조촐한 트레일러를 몰고 좁은 시골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그들은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겨를이 없다. 샘은 터스커 걱정으로, 터스커는 그런 샘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뒤로 한 채 서로를 향한 폭풍 같은 감정에 휘말린다. 이들의 감정은 풍랑처럼 출렁인다. 하지만 카메라는 가장 정적인 상태로 두 사람을 응시한다. 홀로 생각에 잠긴 터스커의 모습. 스탠리 투치는 섬세한 감정선으로 표정으로 드러낸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마이크 리 감독의 ‘미스터 터너>’2014)로 영국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딕 포프는 두 사람의 세밀한 감정을 섬세하기 담아내기 위해서 1950년대 사용했던 쿡 스피드 판크로스(Cooke Speed Panchros) 렌즈를 사용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스파타커스>’1960)에서 사용했던 이 렌즈는 초첨도 흐릿하고 대상을 선명하게 잡아내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지만 오히려 흐릿한 초점을 뚫고 나오는 인물들의 강렬한 감정만큼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데 효과적이다. 샘과 터스커의 일상적 순간들 사이사이에 담겨진 단순하지 않은 감정들을 오롯이 표현하기 위해서 오래된 렌즈를 선택한 해리 맥퀸 감독과 딕 포프 촬영감독은 보이는 것을 흐려놓음으로써 그 이면에 자리한 인물들의 진심을 역설적으로 직시한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고통일 수밖에 없는 두 인물을 가장 윤리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2 경이로움을 볼 수 있는 눈 하늘을 보며 샘의 조카에게 별자리를 알려주는 터스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샘의 누이(피파 헤이우드)가 열어준 깜짝 파티로 샘과 터스커는 오랜 만에 친구들과 재회한다. 그 파티에서 터스커는 샘의 조카에게 G. K. 체스터튼의 문장을 들려준다. “이 세상이 굶주리는 것은 경이로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경이로움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어서다.(we will not starve for lack of wonders but from lack of wonder)”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조카에게 그는 말한다. “늘 질문해야 한다는 거지” 질문은 세상을 여는 열쇠다.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서 질문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은 반드시 위험을 동반한다. 위험은 고통으로 직결되고 탐험을 중단하고자 하는 마음을 야기한다. 결국 질문하지 않음은 진실을 외면하는 자세에 다름 아니다. 터스커는 그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 기억을 잃어가며 ‘나’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진실. 인생의 종말 앞에서 그 자체를 거부하기보다 오히려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터스커의 자세는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그를 사랑하는 샘이 없을 때에만 성립된다. 사랑하는 자의 애타는 구애는 진실을 직시하려는 자에겐 가장 참을 수 없는 고통일 뿐이다. 샘은 이러한 고통들까지도 모두 품어 안는다. 샘의 조카에게 들려준 체스터튼의 문장은 샘의 마음을 적절히 대변하는 문장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3 트레일러가 스쳐가는 북잉글랜드의 풍경들 북잉글랜드의 풍경이 아름다울수록 샘과 터스커의 현실은 안타깝게 느껴진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샘과 터스커가 떠나는 여행의 풍경들은 두 사람의 감정과 사뭇 대조적이다. 마음의 위로를 위해 떠났지만 풍경은 전혀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지 못한다. 감독은 바로 이러한 충돌 속에서 비극적 정서를 직조해낸다. 풍경이 한없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샘과 터스커의 상황은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아름다움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기록될 수 있길 바라는 관객의 애잔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인물들과의 대비를 위해 맥퀸 감독이 선택한 장소인 잉글랜드 북부 컴브리아(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맥퀸 감독은 이를 위해서 잉글랜드 북부의 컴브리아(Combria)를 선택했다.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존재했을 것 같은 풍경들은 치매로 건강을 잃어가는 터스커의 존재감을 더욱 왜소하게 만든다. 인간의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대자연을 창조한 신의 섭리와 동일시되며 더욱 숭고한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러한 감독의 의도는 제목 ‘슈퍼노바(Supernova)’의 본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초신성超新星’이라고도 번역되는 슈퍼노바는 노쇠한 별이 폭발하면서 만들어낸 빛들이 서서히 희미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한 때는 영원의 거리를 빛냈던 별이 스스로를 조각내며 한없이 창발하다 빛을 잃어가는 과정은 소설가로 명망을 떨치던 터스커가 결국 치매로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그리고 30년 간 사랑을 지속시켜왔던 샘과의 관계 또한 이별을 거부할 수 없는 현실 또한 적절히 반영한다. #4 샘과 터스커의 애정 표현들 여행 중 잠시 식당에서 쉬어가는 샘과 터스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30년을 함께 살아온 동성애 커플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성소수자에 대한 낯선 시선이 여전히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는 쉽게 상상될 수 없는 노년의 동성 커플을 우리는 ‘슈퍼노바’를 통해서 만나볼 수 있다. 샘과 터스커의 일상은 그 어떤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극히 평범한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애정 표현들은 샘과 터스커를 연기한 콜린 퍼스와 스탠리 투치의 우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가장 먼저 캐스팅 되었던 스탠리 투치는 감독에게 콜린 퍼스를 적극 추천하며 그와 함께 연기하기를 바랐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이 2001년 작인 ‘컨스피러시’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뒤로 꾸준히 우정을 이어왔기 때문이었다. 스탠리 투치는 이 영화 이전에도 함께 연기하기 위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 수차례 시나리오를 건네준바 있었다. 그때마다 거절했던 콜린 퍼스가 이번만큼은 거부하지 못했다. 그 또한 샘과 터스커의 아픔에 온전히 공감했던 것이다. 20년간 깊은 우정을 나눈 두 배우의 친밀감은 30년 간 이어온 샘과 터스커의 사랑을 단순한 연인의 사랑 그 이상으로,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들의 숭고한 사랑으로 승화시킨다. 성소수자의 사랑이 결코 낯선 감정들이 아님을, 오히려 모든 존재들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애 초기에 함께 여행했던 호수를 다시 찾은 샘과 터스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우리는 ‘슈퍼노바’에서 샘이 느끼는 고통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자를 지키려는 그의 욕망은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곧바로 분노로 표출된다. 분노에는 여러 감정들이 담겨져 있다. 혼자 남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하는 상실감, 어쩌면 기억을 잃어가는 터스커를 증오하고 미워하게 될 낯설어진 나 자신. 이 모든 감정 속에서 끝까지 사랑하는 자를 지키려는 샘의 선택은 절대적으로 숭고하다. 그 숭고한 선택이 타인을 향한 혐오가 난무한 시대 속에서 반드시 보편화 되어야 할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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