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ULAR NOW

01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게” 뚜레쥬르의 빵 수요 예측 AI
2024.11.21

02

‘올리브영N 성수’에 다녀왔습니다
2024.12.09

03

[CGV아트하우스] 외면하기엔 지극히 아픈 이처럼 사소한 것들
2024.12.11

04

요리의 맛을 높이는 기술! ‘맛술’도 ‘술’일까?
2024.12.09

05

[CGV아트하우스] 아침 바다는 말이 없다
2024.11.27
주인공 현실(김예은)이는 시를 쓴다. 그리고 지인들을 만난다. 지인들에게 자신이 쓴 시를 한 편씩 건네며 품평을 들을라 치면 그 시는 곧 그들의 삶이 되고 목소리가 되어 현실의 삶에 일어난 균열들을 메운다. 김종재 감독의 당찬 데뷔작, ‘생각의 여름’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다. 그 시가 어쩌다 유서가 될 뻔 했을까? 현실이가 펼쳐놓는 그녀의 시 세계를 들여다본다. 이동윤 | 영화 평론가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시와 현실의 사이 어딘가에서 일하는 카페에서 시집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현실이(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현실이는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시를 쓰며 공모전을 준비한다. 하지만 그녀가 시를 쓰는 행위는 표면에 불과하다. 그 표면 아래 심층에는 사랑으로 상처받고, 지쳐있으며, 다시금 사랑을 되찾으려는 현실이가 존재한다. 시를 쓰는 현실이는 모든 것이 마냥 귀찮고 반려견 ‘호구’를 산책시키는 것조차 버거워 하지만, 시 속에 존재하는 현실이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의 관계를 재정립 시키며 자신의 삶을 지속적으로 변화시켜나간다. 이러한 현실이의 삶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MZ세대들의 초상화다. 20대 후반,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점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또는 그러지 못하는 모든 젊은 세대들의 고민이 담겨 있다. 여기에 우울과 자조, 답답함과 분노, 그럼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열정이 현실이의 모습 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여름의 열기와 냉기 사이 어딘가에서 반려견 호구를 산책시키는 현실이(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일반적으로 여름에 대한 이미지는 생동감으로 가득한, 그래서 움츠러드는 계절이기보다는 열정으로 가득한 계절로 그려진다. 하지만 김종재 감독이 그려내는 여름은 무기력하고 냉정하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서 이번 작품의 시작 계기가 자신의 무기력함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고백했다. 심적으로 힘든 시기, 시를 통해 받은 위로가 결국 시를 쓰는 주인공으로 승화되어 표현된 것. 현실이에게 투사된 감독의 상상력은 성별을 넘어선다. 단지 그들이 통과해야하는 숨 막히는 무더위의 여름을 그래도 조금은 덜 외롭게, 서로 손잡고 건널 수 있도록 응원한다. 극중 인물들은 모든 관계들이 단절되어 버렸고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상황 속으로 내몰려 있지만 그럼에도 시 세계를 통해서 그들은 하나가 된다. 판타지가 현실을 극복하는 순간들이 영화 속에서 찬란하게 펼쳐진다. 현실이와 그녀의 주변 인물들 사이 어딘가에서 첫사랑을 빼앗아간 옛 절친, 주영(한해인)을 우연히 산에서 만난 현실이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현실이가 만나는 인물들은 모두 가까운 지인들이다. 하지만 가까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거리감 있게 그려진다. 현실의 첫사랑을 빼앗아간 옛 절친 주영(한해인)을 비롯해,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전 남자친구, 문창과를 졸업하고 시나리오를 쓰다 독립영화 스텝이 되어버린 옛 동창, 한 때는 가깝게 지냈지만 두 사람이 헤어지는 바람에 덩달아 어색해진 선배 커플. 그들은 모두 현실의 과거 속 인물들로서 현실이의 동시적 시간대에 끊임이 침투하고 개입해 들어온다. 현실이의 시를 유일하게 알아봐주는 카페 동료 직원 유정(신기환)과 현실이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현실이와 주변 인물들 사이의 경계를 희미하게 그려내며 그들 사이를 느슨한 끈으로 연결시킨다. 이때 그 끈을 주도해서 엮어내고 끌고 가는 인물은 바로 현실이다. 표면적으로는 오히려 현실이 보다 그들이 더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내는 것 같고, 더 차갑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것 같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오히려 현실이야 말로 자신의 시간들을 진심 어리게 살아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시를 쓰는 것에 있다. 김종재 감독은 시를 쓰는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행위가 어떻게 한 존재의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를 잘 담아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시 창작은 쉽게 생산적 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감독이 직접 경험했듯, 시는 생산에만 몰두해 있는 삶 속에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생명력을, 역동성을 경험케 한다. 마치 영화 속 현실이가 그러하듯 말이다. ‘생각의 여름’을 통해서 코로나로 덥고 지치고 무기력해진 우리들의 삶을 상큼하게 리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