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떼 목장에서 함께 살아가는 두 남자, 한 사람은 양을 치고 한 사람을 시를 가르친다. 두 남자의 사랑은 도심으로부터 ‘정말 먼’ 그곳에 안착할 수 있을까? 영화 ‘정말 먼 곳’은 강원도의 수려한 풍경과는 이질적으로, 잔인하리 만치 날카롭게 갈라지는 두 사람의 파국을 묵묵하고 차분하게 응시한다. 그 영화적 응시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들은 무엇일지 살펴본다.
이동윤 | 영화 평론가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감정을 애둘러 가지 않는 박근영 감독의 시선
영화 ‘정말 먼 곳’의 박근영 감독은 2018년 ‘한강에게’를 통해서 먼저 주목 받았다. 세상을 떠난 자를 기억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 상실감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한 시인의 몸부림치는 창작 과정을 통해서 지울 수 없는 깊은 슬픔을 탐구했다.
그리고 그는 두 번째 작품을 통해서 사랑을 부정당 해야 하는 두 남자의 고통과 상실을 들여다 본다. 고통을 다루고 표현하는 것은 무척 조심스러운 일이다. 누군가가 머금은 고통이 또 다른 이들에게 상처로 전이될 수도 있으니까. 감독은 이 과정을 애써 생략하거나 지우지 않는다. 두 남자가 겪어야 하는 잔인한 현실이 때로 또 다른 고통과 분노로 전달됨에도 감독은 그 순간들을 외면하지 않고 잠잠히 바라보기를 요구한다.
비극적 서사를 철저히 배반하는 목가적 풍경들
도시에서 조카와 함께 이주해온 진우(강길우). 그의 애인 현민(홍경)까지 찾아와 오롯이 하나가 된다. 도시와는 달리 새로운 삶의 희망을 품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두 사람. 혐오와 편견으로 가득한 곳으로부터 정말 멀리 떨어져 나왔지만 그들을 향한 폭력은 여전히 가까이에 머물고 있었다.
‘정말 먼 곳’의 비극적 이야기는 강원도 화천의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목가적 풍경과 대비되어 더욱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로 다가온다. 석양에 일렁이는 황금빛 강물 위로 서로를 품에 안은 진우와 현민의 실루엣은 한없이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벌어지는 폭력은 그들이 욕망하고 바라는 꿈을 철저히 배반하며 파괴한다.
겉보기에 아름다운 전원의 풍경이 실상은 혐오로, 폭력으로 점철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의 끝, 도시라는 중심에서 벗어나 정말 먼 곳까지 타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펼쳐져 있음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독립영화계의 이상적인 협력이 이뤄낸 결과
‘정말 먼 곳’이 강원도 화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강원도를 기반으로 영화 제작을 이어오고 있는 ‘봄내필름’의 전적인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인을 만나기 위해 우연히 화천에 들렀던 박근형 감독은 도시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강원도 만의 매력을 느끼고 본격적으로 ‘정말 먼 곳’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 더 다양한 강원도의 매력을 화면 속에 담아내기 위해서 강원도 춘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봄내필름’과 함께 협업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춘천, 춘천’(2016), ‘겨울밤에’(2018)를 통해 춘천의 쓸쓸함과 고독을 잘 표현해낸 장우진 감독, ‘철원기행’(2014), ‘초행’(2017)을 통해서 강원도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김대환 감독, 이들이 주축을 이룬 ‘봄내필름’은 ‘정말 먼 곳’의 로케이션을 찾아내고 촬영을 이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도시적 이미지와 대비되는 강원도 산 속 깊은 곳의 풍경이 있었기에 박근형 감독은 자신이 계획한 비극적 이야기를 자신 있게 펼쳐낼 수 있었을 것이다. 독립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제작사, 봄내필름과 영화사 행방이 함께 협력했다는 점만으로도 ‘정말 먼 곳’이 지니는 가치는 충분하다.
편견없이 모든 인물을 바라보는 카메라 시선
‘정말 먼 곳’에는 두 명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진우의 친동생으로 평화롭던 그의 일상을 흔들어 놓는 은영(이상희)과 진우를 짝사랑하며 그 주변을 맴도는 농장주 중만의 딸, 문경(기도영, 배우 기주봉의 실제 딸로, 영화에서도 이들은 부녀지간으로 출연한다)이다. 이들은 진우와 현민의 사랑으로 인해 상처입고 아파한다.
일반적으로 남성 동성애 영화 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비극적 사랑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 소모적으로 희생되는 존재에 불과했다. ‘정말 먼 곳’은 이러한 일련의 영화들과는 달리 두 여성의 감정들을 쉽게 간과하거나 도구화 하지 않는다. 때로는 문경의 편에 서서 그녀의 감정을 오롯이 품어 안기도 하고, 때로는 서사의 방향이 휘어 버릴 정도로 강력한 분노를 뿜어내는 은영의 행동들을 판단 없이 바라보기도 한다. 피해와 가해의 경계가 모호한 각자의 상처들을 편견 없이 응시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적확하게 이들의 고통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깨닫게 한다.
얼마 전, 트랜스젠더로서 당당히 군 생활을 이어가고자 했던 변희수 하사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소수자를 향한 한국 사회의 폭력적 시선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영화의 비극적 결말을 마주하며 변희수 하사의 부재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은 영화 속 세상과 우리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 곳곳에 희망의 메시지를 심어놓은 감독의 목소리는 지금, 여기서, 우리가 품어야 할 감정들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정말 먼 곳’을 절대로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