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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밥은 맛이 없다? 무슨 소리! 이제는 맛은 물론, 골라먹는 재미까지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CJ프레시웨이 FS본부 병원4지점장 안한국 님 덕분이다. 자타공인 병원급식 전문가인 그는 10여년 넘게 병원 치료식과 메뉴 개발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고 치료에 도움을 주는 환자식. 의사가 환자를 처방한다는 마음으로 업무에 임한다는 그의 말에 약과 음식의 근원이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란 말이 절로 생각났다. 한 끼에 2,000식, 하루 6,000식을 준비하다! 안녕하세요. CJ프레시웨이 FS병원사업부 4지점장 안한국입니다. 학창 시절, 음식 만드는 게 취미였던 안한국 님. 대학에서도 식품영양학과에 들어가 남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사람이 되고팠던 그는 군대 전역 후 이듬해인 2005년 CJ프레시웨이에 입사했다. 학교와 오피스 등 여러 곳의 급식 점포를 거친 그는 언제나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과 패기를 갖춘 신입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던 중 2007년,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병원 급식 막내 조리사로 발령받는다.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해 이 일을 택했지만 병원에서 일할 줄은 몰랐어요(웃음). 당시 CJ프레시웨이에서는 다수 대형병원의 급식 점포를 위탁 운영 중에 있었는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신촌세브란스병원이었다. 안한국 님은 첫 출근 당시 대규모 인원에 놀랐다고. 일반적으로 병원 급식 점포를 운영하는 인력은 조리사, 영양사 각각 1명, 그리고 흔히 ‘여사님’이라 불리는 다수의 조리인원으로 구성된다. 이와 달리 신촌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조리실장, 영양팀장 등 관리자만 10명, 조리인원은 무려 50명에 달했다고. 인원수만큼 하루 나가는 환자식과 치료식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환자들의 건강상태에 맞는 음식을 고루 담고, 식판에 올려놔야 하는 것만으로도 약 1시간이 걸린다. 인원 수와 급식량에 놀란 것도 잠시. 아침, 점심 저녁 배식 시간을 기준 90분 전까지 필요한 모든 음식을 준비해놓고, 환자들의 건강상태에 맞춰 일일이 식기에 음식을 옮겨 담아야 했다. 배식 형태로 운영되는 학교, 오피스 등의 급식과 비교했을 때 공수가 많이 가는 일이었다. 특히 음식 자체가 환자의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고, 음식이 맞게 들어갔는지 체크도 수없이 했다고. 삼시세끼 환자를 위하는 마음으로 일해온 그는 어느새 막내 딱지를 떼고 약 8년 간 조리실장으로 책임을 다한다. 본관 내 식사 제공이 주요 업무였던 그는 이후 심혈관 병동, 암 병동에서의 환자식도 맡게 되며, 평균 한 끼에 2,000식, 하루에만 무려 6,000식의 치료 및 환자식을 제공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힘은 부쳤지만 매순간 동료들과의 긴밀한 협업을 이끌어 내며 최상의 식사 제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치료식 개발을 위해 곤충까지 활용했다? 환자들에게 제공되는 음식은 언제나 체크가 우선! 안한국 님은 조리실장 시절, 새로운 영역 확장을 위한 도전을 계속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병원 치료식이다. 병원 치료식은 주로 연하(삼키는 것), 저작(씹는 것) 등이 곤란한 환자의 섭취를 돕기 위한 음식으로 환자의 건강 상태에 맞게 제공 되야 한다. 혈액 투석 환자를 위한 환자식 (당뇨환자식) 그는 본격적인 치료식 개발에 앞서 함께 일하는 영양사, 조리사와 함께 스터디 모임을 꾸려 각 질환의 원인과 상태, 치료 방법과 도움이 되는 음식 등을 함께 공부했다. 음식을 제공받는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낮으면 환자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지 못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영양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는 등 열의도 보였다. 예전만 해도 조리사가 관여하지 않았던 치료식이라는 영역에 그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다양한 메뉴들을 개발하는 데 대표적인 게 바로 ‘무스식’이다. 기존에는 연하가 곤란한 환자를 위해 갈아낸 음식을 메뉴로 제공해 왔지만, 이를 본래의 음식 형태로 만들어 외형을 복원해냈다. 어떤 음식인지 모르고 모르고 섭취하는 경우 환자들이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점에 착안한 것. 돼지고기볶음이나 연근, 잡채 등을 본래의 형태로 만들려고 노력했고, 이 음식을 드신 환자분들도 만족해하셨죠. 무스식 이후 또 다른 메뉴 개발에 도전한 건 바로 곤충식이었다. 생각만 해도 눈을 질끈 감게 되는 곤충식은 말 그대로 식용곤충을 활용한 음식이다. 개발 계기는 식욕이 떨어진 암환자 나 노인층 환자에게 음식으로 부족한 영양을 공급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농촌진흥청에서 식용 애벌레인 갈색거저리(일명 ‘고소애’) 공급 받았고, 외형 때문에 거부감이 생기는 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갈거나 혹은 분말 형태로 콩고기에 섞거나 미숫가루 같은 것에 타서 제공했다. 현재 CJ프레시웨이가 선보이는 고소애 메뉴는 100여종. 특히 환자분에게 고기를 넣은 볶음류가 인기였다. 중동에서 온 환자를 위한 맞춤형 치료식 (할랄식) 중동 국가에서 온 외국인 환자들을 위한 할랄식 메뉴 개발도 맡았다. 신촌세브란스병원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환자 협약 체결 이후 중동 VIP 환자들이 급증했고, 그들을 위한 일반식이 필요했다. 문제는 ‘할랄’ 이었다. 할랄제품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2012년 당시 이태원 중동 음식을 하는 모든 식당을 다녀보고 음식도 싸와서 연구도 했다. 이후 외국인 마트에서 할랄제품을 구매해 음식을 만들었고, 처음 보고 맡는 향식료와의 전쟁도 치뤘다. 완성된 음식을 가지고 무작정 카타르 대사관에 가서 품평회를 여는 용기도 발휘했다. 이 모든 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한 노력. 듣도 보지도 못한 향식료와의 전쟁을 치르는 등 2년의 고군분투 끝에 VIP 환자들도 인정하는 음식 레시피를 완성했다고. 그는 할랄식 개발 당시, 독특한 향식료 향이 온 몸에 베여 아내가 반갑게 맞아준 적이 별로 없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어제의 도전이 오늘의 경쟁력으로! 팀원과의 협업을 통해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안한국 님 환자식 조리사로 보낸 지난 12년의 세월을 되짚어보면 그는 쉬지 않고 도전을 즐겼다. 연하, 저작 곤란 환자들을 위한 치료식인 무스식, 암 환자들의 영양 보충을 위한 곤충식, 할랄식을 포함한 외국인 환자식 등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개척자였던 셈.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다양한 환자식 대령이요~ 성취감은 높았지만 그만큼 힘은 많이 들었다. 특히 환자의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무스식이나 곤충식의 맛의 기준을 확립할 수 없었다. 실패를 거듭하고 다시 도전하면서 안정화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다. 오랜 시간 동안 쉼 없이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한 그의 노력에는 언제나 함께한 팀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매번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와 팀원들은 어느새 성장했고, 이제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각각의 병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더불어 환자 및 치료식 관련 각종 강연 및 시연 행사에 참석하며 많은 이들에게 노하우를 전하는 중이다. 최근 안한국 님은 조리실장이 아닌 관리자로서 서울 수도권 대형병원을 위주로 매출, 인력 등 운영에 관한 업무를 주로 맡고 있다. 맡은 일은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뒷짐지는 스타일은 아니다. 신규 병원점포 오픈, 대학병원에서의 시연회 행사 등 바쁜 상황이면 곧바로 투입, 현장 인력들을 도와주고 맞춤 코칭도 진행한다. 현장 DNA가 온 몸에 흐르는 그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런 그의 노력은 병원과의 계약 유지를 위한 CJ프레시웨이 만의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이처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관리자로서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그의 계획은 무엇일까? 입사 당시 메뉴 개발을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병원에서 그 꿈을 이뤘거든요. 현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있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다양한 환자들을 위한 세분화된 메뉴 개발을 해보고 싶어요. 인터뷰를 앞둔 어느 날, 안한국 님은 집에서 먼지 쌓인 책 한 권에 눈이 갔다. 조리실장이 된 직후 상사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책 맨 앞장에는 ‘ YES맨’이라는 단어가 써 있었다고. 그 때부터 ‘부정’ 보다는 ‘긍정’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된 것.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그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섰다는 그는 말한다. 지금도, 앞으로도 ‘YES’를 외칠 준비가 되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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