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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일본에선 한 편의 한국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었다. 남한의 재벌 2세 윤세리(손예진 분)와 북한 장교 리정혁(현빈 분)의 사랑 이야기에 일본 열도는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를 통해 일본에서 공개된 직후부터 오랜 기간 드라마 부문 1위를 차지했을 정도이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 내에 팽배하던 혐한 분위기마저 씻어내며 ‘4차 한류’를 일으켰다. 2024년 또 한 번 일본 열도가 한국 드라마로 들썩이고 있다. 그 주역은 지난 3월 첫 방영된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다. <사랑의 불시착>을 집필한 박지은 작가의 4년 만의 신작이다. 이번엔 재벌 3세이자 백화점 사장인 홍해인(김지원 분)과 시골 출신의 변호사 백현우(김수현 분) 부부의 다시 시작된 사랑 이야기가 담겼다. 김희경|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이자 영화평론가, 한국영화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중문화 산업 관련 칼럼을 연재 중이다. <눈물의 여왕> 공식 포스터 / 사진출처 : tvN  <눈물의 여왕>은 <사랑의 불시착>을 뛰어넘어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지난 12회 시청률은 20.7%로, 역대 tvN 드라마 가운데 2위에 올랐다. 1위인 <사랑의 불시착>과는 단 1%포인트 차이로, 곧 종전 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다. 일본에선 그 열기가 더욱 뜨겁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순위 1위에 오른 것은 물론, 이전보다 더 크고 강력한 한류를 일으키고 있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전문 매체인 리얼 사운드(Real Sound)는 “<눈물의 여왕>이 5차 한류 열풍을 견인하고 있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잘 만든 콘텐츠 한 편이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과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류의 여왕’이 된 <눈물의 여왕>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에서 견고한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고, 탄탄한 K콘텐츠 팬덤을 구축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아가 한국이 아시아 최고의 콘텐츠 강국임을 입증하며, 더 넓고 거대한 한류 확산의 동력을 마련하고 있다. ‘홍백 커플’로 온통 핑크빛 <눈물의 여왕> 스틸컷 / 사진출처 : tvN <눈물의 여왕>의 국내외 인기 비결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스토리 등을 꼽을 수 있다. 홍해인 캐릭터는 남편에게만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인물이다. 윤은성(박성훈 분)의 끝없는 구애에도 절대 곁을 내어주지 않고 자신만의 사랑을 지키는 단단한 모습도 보여준다. 백현우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다시 깨닫고, 이혼에도 아내를 떠나지 않는 든든하고 따뜻한 캐릭터이다. 드라마는 이 두 캐릭터를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로맨스와 가족애 등을 다루는가 하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스릴 넘치는 장면들도 펼쳐 보인다. 시청자들은 이를 통해 큰 재미와 위안을 함께 얻고 있다.  일본 시청자들도 이 같은 점에 매료돼, 호평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오랜만에 한국 드라마에 푹 빠진 것 같다”, “시간을 투자해 정주행할 가치가 있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 최대 콘텐츠 리뷰 사이트 필마크스(Filmarks)에서도 <눈물의 여왕>은 4.3점(5점 만점 기준)의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 주류 콘텐츠가 된 K콘텐츠  <눈물의 여왕> 스틸컷 / 사진출처 : tvN  이처럼 K콘텐츠가 파고든 일본 콘텐츠 시장의 규모는 12조5000억엔(약 112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제작 인력이 부족하고, 제작 공정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이 지연되고 있는 등 여러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열린 ‘아시안 TV 드라마 컨퍼런스’에 참석한 드라마 작가 노기 아키코는 “일본은 내수시장을 노리며 만화나 소설 각색에만 집중하다 보니 프로듀서도, 제작자도 오리지널 드라마를 만드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는 이 공백을 채우며 일본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불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상황은 지금과 크게 달랐다.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일본 드라마가 유행처럼 퍼져갔다.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도 많았고, 일본 드라마를 찾아보는 네티즌들도 많았다.  분위기가 바뀌게 된 첫 계기는 2003년 마련됐다. 일본 NHK에서 드라마 <겨울연가>가 방영된 것이다.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자주 회자될 만큼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마침내 1차 한류의 포문이 열리게 됐다. 하지만 이후 일본에서 나타난 한류는 드라마보다는 K팝이 주도하게 됐다. 2차 한류는 2010년대 초반 동방신기와 카라 등이, 3차 한류는 2017년부터 방탄소년단(BTS), 트와이스 등이 이끌었다. 문화적 간극이 드러나는 긴 호흡의 드라마보다는 짧고 직관적인 K팝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던 것이다. <사랑의 불시착> 스틸컷 / 사진출처 : tvN 그러다 2020년 <사랑의 불시착>이 일본에서 사랑을 받으며, 이전과 다른 차원의 4차 한류가 펼쳐지게 됐다. 과거 <겨울연가>는 주로 중장년층 여성들, K팝은 10~20대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와 달리 <사랑의 불시착>은 다양한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며 더 큰 화력을 뿜어냈다. 나아가 드라마를 중심으로 뷰티, 패션, 푸드 등 여러 영역으로 한류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이 입은 옷, 먹은 음식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눈물의 여왕> 스틸컷 / 사진출처 : tvN  그렇다면 <눈물의 여왕>으로 시작된 5차 한류는 어떤 모습일까? 5차 한류에선 한국 콘텐츠가 서브 콘텐츠에 그치지 않고, 일본 내 주류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한국인, 한국 문화, 한국어 자체를 적극 수용하는 경향이 나타날 전망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일본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지난 3월 종영한 일본 TBS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는 한일 합작이 아닌 일본 제작사가 만든 드라마이다. 그런데 한국인 배우를 최초로 캐스팅해 화제가 됐다. 그 주인공인 채종협 배우가 드라마에서 하는 한국말 대사는 자막도 없이 그대로 방영됐다. 그럼에도 작품은 큰 사랑을 받았고, ‘횹사마’ 열풍까지 일어났다. <눈물의 여왕>은 여기에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한류의 길을 만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Eye Love You> 공식 포스터 /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기업 투자와 협업까지↑…더 거대해질 N차 한류 5차 한류에선 한류의 규모와 범위 자체도 달라질 전망이다. 양국 기업들의 활발한 투자와 협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CJ ENM의 미국 스튜디오 피프스시즌은 일본 대표 엔터테인먼트 기업 토호로부터 2억2500만달러(약 29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CJ ENM과 피프스시즌은 향후 토호의 일본 콘텐츠를 기획·개발하고, 토호의 기획·개발 프로듀서는 피프스시즌의 인력들과 협업해 3사 간 크리에이터 교류를 이어갈 방침이다. CJ ENM은 일본 5대 지상파 방송사 중 하나인 TBS 그룹과도 크리에이터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엔 양사 크리에이터 50여 명이 참여한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하반기에도 동일한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할 방침이다. CJ ENM은 앞서 2021년 TBS 그룹과 글로벌향 콘텐츠의 공동제작과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무려 20여 년의 시간에 걸쳐 5차까지 일어나고 있는 일본 내 한류 열풍. 이 같은 현상에도 언젠가 끝이 있을까?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을 당시에도, 위기론은 계속해서 나왔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재밌고 다채로운 K콘텐츠가 꾸준히 나오면서, 한류 역시 끝나지 않았고 지속 발전해 나가고 있다. 이젠 양국의 기업들도 적극 뛰어든 만큼, 한류는 보다 거대하고 정교하게 시스템화되어 확산될 전망이다. 무한대로 뻗어나갈 N차 한류가 갈수록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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