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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이토록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영화 관계자와 애호가들을 제외한 국내 대중들에게 오스카는 거리가 멀고 다소 생소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젠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국민 다수가 시상식 생중계를 지켜보거나 결과를 기다린다. 황금빛 트로피를 거머쥔 한국 감독, 배우를 보기 위해. 미국인을 포함한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한국 감독과 배우가 오스카의 영광을 차지하는 일이 점점 익숙하게 느껴질 것 같다. 시상식 자체에서 인종, 국적의 벽을 허무는 일이 조금씩 이뤄진 경향도 있긴 하다. 그러나 많은 국가들 중에서도 한국 영화인들은 독보적인 성과로 이들에게 성큼 다가가고 있다. 좋은 열매는 기름진 토양 위에서 만들어지는 법. 해외에선 급부상한 한국 영화의 결실이 어떻게 맺어진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102년 동안 차곡차곡 다져진 문화적 토양을 발견하고 감탄한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지난해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직후 이같이 보도했다. “한국의 영화 역사를 고려할 때 아카데미가 이 나라의 영화를 무시해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김희경|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이자 영화평론가, 한국영화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중문화 산업 관련 칼럼을 연재 중이다. 정서적 교차점을 찾아내다 한국 영화의 가진 보편성에 기인해 전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알린 ‘기생충’과 ‘미나리'(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1919년 김도산 감독의 영화 ‘의리적 구토’로 시작된 한국 영화의 시간은 모진 비바람에도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우며 흘러왔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정서적·산업적 요소가 어우러져 결합 됐는데, 이는 훌륭한 밑거름이 돼주었다. 한국 영화가 가진 정서는 중국, 일본 등 다른 아시아 지역의 영화들과는 차별화된 강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 등으로 주목할만한 성과를 보였고, 일본 영화도 사무라이 영화 등으로 서구권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 현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크게 공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한국 영화는 전 세계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보편성을 담고 있다. 극과 극의 상반된 역사적 경험으로 다채로운 감정을 느껴봤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랜 시간 식민 지배를 받은 아픈 경험과 전쟁의 상흔을 품고 있다. 굶주림에 허덕였던 개발도상국의 경험은 이로부터 비롯됐다. 이후엔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선진국 국민으로서의 경험도 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빈부 격차의 고통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과거 먹고 살기 위해 이민자가 된 아픔은 윤여정 배우의 ‘미나리’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교차점을 잡아낸 작품들은 양극화된 미국 영화 시장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도 하고 있다. 미국 시장은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급 작품 또는 매우 낮은 예산의 영화로 나눠져 있다. 우리 작품들은 이 공백을 파고들어 입지를 다지고 있다. 영화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기업들의 활약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수놓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한국 영화의 정서적 뿌리가 아무리 단단해도, 이를 확장할 동력이 없다면 글로벌화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지난해 ‘기생충’으로 봉준호 감독과 함께 각본상을 받은 한진원 작가는 그 배경을 상징하는 ‘충무로’라는 세 글자를 시상식에서 또렷이 밝히기도 했다. “미국에 할리우드가 있듯이 한국에는 충무로라는 곳이 있습니다.” 한국 영화 시장은 충무로를 중심으로 뛰어난 상상력을 품은 크리에이터, 그리고 이들을 발굴하고 전폭적인 지원한 기업들이 어우러져 발전을 거듭해 왔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영화 시장은 산업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감독 개인의 힘과 정부 지원으로 영화를 간신히 만들고 있었다. 무한한 상상력을 스크린에 모두 펼쳐 보이기엔 한계가 많았고, 한번 실패하면 재기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기업들이 이 시장에 잇달아 진출하며 영화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했다. 크리에이터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 몇몇 대기업들이 영화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곳이 CJ 그룹이다. CJ는 1995년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사 드림웍스 설립에 3억 달러를 투자하며 문화 사업에 첫 발을 내디뎠다. 전통적인 내수 산업으로 꼽히던 식품회사 제일제당이 영화 사업에 뛰어드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40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들어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상영을 염두해 뒀다. 이같이 쟁쟁한 기업들이 뛰어들었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만큼 문화적 토양을 닦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흑자를 내는 것조차 어려웠으며 큰 위기도 겪었다.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몇몇 기업들은 영화 사업을 철수하기도 했다. 반면 CJ그룹은 이 같은 상황에서도 영화 사업을 이어나갔다. 1997년 ‘인샬라’ 이후 현재까지 투자·배급한 영화는 300여 편에 달한다. 영화의 산업화에서 나아가 글로벌화까지 이루기 위해선 과감한 베팅도 필요했다. 그 베팅은 무모한 것이 아니라 뛰어난 창작자를 발견하고 육성하는 작업이었다. 40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들어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CJ엔터테인먼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으며, 기획 단계부터 전 세계 상영을 염두에 두고 체계적으로 만들어졌다. 상생 전략으로 만들어 가는 새로운 길 극장과 티빙에서 동시 개봉한 영화 ‘서복’ 최근에도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영화 관람 패턴이 빠르게 변하고 시장의 변동성도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그때마다 크리에이터와 기업은 함께 돌파구를 찾아 나서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에도 꾸준히 투자· 배급을 이어가며 활로를 모색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전략을 고안하고 있다.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서복’은 그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 작품은 극장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에 동시 개봉했다. 극장과 OTT의 상생을 도모하는 동시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한 것이었다. ‘서복’은 티빙에서 공개된 이후 지속적으로 영화 부문 1위에 오르며 그 효과를 증명해 보였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1995년 드림웍스 투자 계약을 앞두고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이 아시아의 할리우드가 되어야 한다.” 그의 목표대로 한국은 이미 아시아의 할리우드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이를 뛰어넘어 ‘진짜 할리우드’로 향하고 있다. 한국 영화 시장에 할리우드의 펄떡이는 심장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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