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리포트] 신인 작가, 오펜과 만나 콘텐츠 시장의 주류로

콘텐츠 리포트 - 콘텐츠 리포트는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 K컬처와 문화산업의 현주소를 들여다 보는 코너입니다.

tvN ‘블랙독’ ‘왕이 된 남자’, 넷플릭스 ‘좋아하면 울리는’, JTBC ‘18 어게인’···. 방송사와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OTT)에서 방영된 드라마다. 이 작품들은 참신한 시각과 아이디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들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모두 신인 작가들이 집필했다는 것이다. CJ ENM의 신인 작가 육성센터 ‘오펜(OPEN)’에서 교육을 받고 정식 데뷔한 작가들이다. 신인 작가가 단막극이 아닌 정극으로, 주요 방송사와 OTT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작품을 선보이는 일은 4~5년 전만 해도 드물었다. 이젠 분위기가 달라졌다. 콘텐츠 시장 중심에 신인 작가들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가열되고 있는 스토리 전쟁은 어제와 다른 상상력에 대한 강력한 대중적 욕구를 창출하고 있다. 넷플릭스, 월트디즈니 등 글로벌 기업 뿐 아니라 물론 많은 국내 사업자들이 스토리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여기서 승기를 잡기 위해선 차별화된 콘텐츠를 확보해야 한다. 그 핵심은 이야기를 생각하고 만들어 내는 작가다. 이로 인해 시장에선 뛰어난 작가를 영입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신인 작가들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더 커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인 작가가 스토리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핵심 인재라고 공급자들은 판단하고 있다. 신인 작가들의 가치가 높아진 이유와, 과거와 달리 신인 작가들의 작품이 호평 받는 비결을 보다 깊이 파헤쳐 보자.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김희경 기자 사진

김희경 |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김희경 기자는 한국경제신문 문화부기자이며 한국예술종합대학교 겸임교수로서

한국 대중문화 산업 관련 칼럼을 연재 중이다.

킬러 콘텐츠 찾아 신인 작가들에 관심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중 두 주인공인 이병헌과 김태리가 서로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는 장면으로, 왼쪽에 검은 정장을 입은 이병헌, 오른쪽 한복을 입은 김태리가 손을 서로의 입에 가져가 눈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이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한 편을 수출한 데 따른 생산유발효과만 해도 1,500억원! 그만큼 웰메이드 콘텐츠의 중요성은 해를 거듭할 수록 커지고 있다.

잘 만들어진 콘텐츠 하나는 막대한 파급효과를 창출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방송 수출을 통한 생산유발액은 1조 9,900억원에 달한다. 국산차 10만 대를 수출하거나, 외래 관광객 130만명이 한국을 방문한 효과와 비슷하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한 편을 수출한 데 따른 생산유발효과만 해도 1,5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킬러 콘텐츠를 탄생시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콘텐츠 수 자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최근엔 더욱 그렇다. 콘텐츠 홍수 속에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기 위해선 기존 콘텐츠와는 다른 신선한 충격을 선사해야 한다. 그러기엔 기성 작가들만의 작품으론 한계가 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신인 작가들의 가치가 더 높아진 이유다.

신인 드라마·영화 작가를 발굴하고 데뷔까지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CJ ENM 대표 사회공헌사업인 오펜 4기 작가들이 전용 창작공간 오펜센터에서 카메라를 향해 화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펜 4기 작가들이 전용 창작공간 오펜센터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물론 이전에도 재능 있는 신인 작가들은 많았다. 하지만 신인이라 위험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배제되어 왔다. 최근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지원 시스템이 나오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2017년부터 시작된 CJ ENM의 사회공헌사업 ‘오펜’이 대표적이다. 오펜은 신인 드라마·영화 작가를 발굴하고 데뷔까지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지금까지 129명의 작가가 오펜을 통해 배출됐다.

그동안 창작자의 ‘창의력’은 온전히 개인의 역량으로만 치부됐다. 다양한 훈련과 지원으로 창의력도 증대될 수 있다는 사실은 간과됐다. 창의력은 기본적으로 많은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남들보다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알면 알수록 색다른 아이디어를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많이 안다고 해서 무조건 창의력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정보와 지식을 어떻게 연결하고 조합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오펜은 재능은 있지만 혼자만의 힘으론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알기 힘들었던 신인 작가들에게 그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지식을 연결하는 힘

오펜 작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오펜 센터 내 개인 집필실 내부 모습으로, 중앙에는 컴퓨터가 놓여져 있는 책상과 오른쪽에는 낮은 서랍장 및 다수의 책자, 벽에는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붙여놓았고, 왼쪽에는 휴식이 필요할 때 쉴 수 있는 침대가 놓여져 있다.
오펜 작가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개인 집필실 내부

오펜의 지원 시스템은 세분화 되어 있다. 우선 서울 상암동에 센터를 마련해 신인 작가들만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작가들의 개인 집필실엔 작업용 데스크가 있고, 편히 누울 수 있는 침대도 갖춰져 있다. 함께 모여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회의실도 갖추고 있다. 로비엔 커피, 간식 등이 마련돼 있다. 한데 모이는 것은 중요하다. 수많은 발명이 교수 개인의 연구실이 아닌, 교수 휴게실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정설이다.

또 집필 전 단계에선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익힐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교도소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개인적으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작가들을 데리고 가 취재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극을 쓸 때 도움이 될 만한 역사 강의도 해 준다. 창덕궁 등 궁궐에서 직접 현장 특강을 진행하는 식이다. 역사학자 등이 궁궐 곳곳을 안내하며 책과 인터넷에서 찾아도 잘 나오지 않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알려준다.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함이다.

2020 드라마스테이지 티저 영상

본격적인 집필이 시작되면, 신인 작가들을 위한 협업 시스템이 가동된다. 기성 작가와 PD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신인 작가들을 돕는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대중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한다. 이 과정에서 신인으로서 실패할 확률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결과물은 CJ ENM이 주선한 비즈매칭으로 제작사에 소개된다. tvN 단막극  ‘드라마 스테이지’에 편성되기도 한다. 저작권은 작가 본인에게 귀속되고, 활동에 따른 제약도 없다.

벤처 DNA가 콘텐츠 시장 안으로

왼쪽에는 오펜 1기 신하은 작가가 참여한 여진구, 이세영 주연의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 오른쪽에는 오펜 1기 박주연 작가가 집필한 서현진, 라미란 주연의 tvN 드라마 '블랙독' 포스터다.
(왼쪽부터)오펜 1기 신하은 작가가 참여한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 오펜 1기 박주연 작가가 집필한 ‘블랙독’

오펜의 지원 방식은 하나의 벤처를 만드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고 돕는 오펜은 일종의 스타트업 육성 센터 기능을 한다. 한명의 반짝이는 원석이 발견되면 방송사와 제작사 등을 통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이 결성돼 그를 돕는 방식도 벤처 인큐베이팅 과정과 유사하다. 이들에 대한 투자도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광고주도 더 이상 기성 작가의 작품에만 얽매이지 않고, 신인 작가의 가능성에 과감히 베팅한다. 벤처 시장을 발전시켜 온 창작-협업-인큐베이팅-투자의 선순환 구조가 콘텐츠 시장에도 이식된 것이다.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려 스케치북을 꺼내든 순간이 떠오른다. 여러 색깔의 물감을 이리저리 섞어 보았지만 예쁜 색깔을 만들어 내기 어려웠다. 성심 성의껏 그려보아도 서툴기만 해서 스케치북을 다시 접어서 넣어두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방법을 알려주면 꽤 근사한 결과물이 나왔다. 물감을 섞는 방법, 적합한 비율 등을 조금만 알려주고 도와주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왔다. 신인 작가들이 새롭게 그려낼 그림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들 안에 갇혀 있던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가 이제 스케치북에 한가득 펼쳐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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