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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1월 5일 우리나라 최초의 하얀 설탕이 쏟아지던 날. 그로부터 70년이 지났습니다. 종합식품회사에서 식품·생명공학·유통·엔터테인먼트의 4대 사업군을 선도하는 미래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CJ가 걸어온 도전과 개척, 창조와 성취의 여정을 돌아봅니다. 9화. “최초·최고·차별화” 제일제당 독립경영시대 “최초로 하든가, 최고로 해야 합니다. 최초, 최고가 아니면 안 하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 세 번째 한다 해도 제품·서비스·시스템 등을 확실히 차별화해야 합니다.” CJ그룹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1순위로 마음에 새기는 가치가 있습니다. ‘ONLYONE’ 철학입니다. “모든 면에서 최초·최고·차별화를 추구하면서 핵심 역량을 갖춘 1등이 되자”는 의미지요. 시장을 선도하는 1등 제품과 서비스들이 모두 이 원칙 아래 생겨났습니다.“식품·식품서비스, 생명공학,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신유통 등 CJ그룹을 이끌어가는 4대 핵심사업군의 바탕에도 역시 ‘ONLYONE’이 있었고요. ONLYONE 정신이 CJ의 경영 전면에 등장한 건 CJ의 경영권이 삼성으로부터 분리된 직후였습니다. 삼성그룹의 모태인 CJ그룹은 1993년 창립 40주년에 처음으로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경영을 선언했고, 법적인 절차를 거쳐 1997년 독립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번 헤리티지에선 그 과정을 한번 살펴볼게요. ▶ 지난 헤리티지 보기 <국민기업 제일제당, 창업에서 독립까지> 독립 후 첫 사원 모집에 최대 지원자 몰려 CJ그룹의 가장 큰 성장동력은 ‘사람’입니다.‘인재제일’이란 제일제당의 창립이념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지요. 제일제당은 1993년 독립을 선언한 직후 첫 행보를 신입사원 선발로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곧 기업이다, 기업이 곧 사람이다. 1993년 10월 제일제당은 이런 슬로건을 내걸고 신문에 신입사원 모집 공고를 냈습니다. 모집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130명 모집에 무려 1만 7000여 명이 지원해 13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국내 최대 그룹인 삼성과 현대그룹보다 지원자 수가 더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화제를 모았죠. 이듬해인 1994년과 1995년에도 제일제당 입사 희망자는 계속 늘었습니다. 우수인력들이 끊임없이 제일제당의 문을 두드렸죠. 제일제당이 식품업을 넘어 종합생활문화그룹으로 발돋움하며 새로운 사업들을 추진하던 시기였습니다. 사원 선발 방식에도 혁신적인 방안을 도입해나갔습니다. 그중에서도 ‘인재 데이터뱅크’가 가장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제일제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개채용을 실시한 기업이기도 한데요, 1년에 두 번 있었던 그룹 공채와는 별도로 신규 사업 인력 수시 모집을 위한 인력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입니다. 대학교 3,4학년 학생들을 전공별로 전산화했고 미국에 있는 한국 국적의 과학자들과 금융 분야 전문 인력, 국외 입사희망자들을 모두 인력 풀에 포함했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외국 주재원과 외교관 자녀, 개발도상국가의 우수인력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채용도 적극 추진했죠. “국내 최대 생활문화기업” 제일제당그룹 출범 본격적인 독립경영이 시행된 이후 제일제당의 매출액은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1993년 1조 3062억 원이던 사업 실적은 1994년 1조 4318억 원으로 올라섰지요. 이재현 당시 상무 등 경영진은 직원들의 성장 발판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을 만들고 진화시켜나갔습니다. 사업 다각화를 위해 다양한 신규 사업을 검토하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1995년 1월부터 제일제당은 삼성 로고를 이용한 사기(社旗) 사용을 중단했습니다. 곧바로 1550만 원의 상금을 걸고 새로운 기업명을 공모했습니다 새 그룹명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제일그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제일’이라는 사명에는 지난 1950년대부터 이어온 이병철 선대 회장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습니다. 1996년 5월 1일엔 드디어 그룹화 선언에 나섰습니다. 1993년 6월 제일제당이 독립을 추진한 지 약 3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잠실 종합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제일제당그룹 출범 및 CI 발표회’는 큰 반향을 일으키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제일제당그룹의 종업원은 6000여 명, 매출은 2조 2230억 원을 규모로 건실한 실적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이날 최고 경영진이 발표한 그룹의 비전엔 원대한 꿈과 포부가 담겨 있었습니다. “향후 제일제당그룹은 단기 목표로 사업 영역 다각화를 통해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하고, 국내 최대의 생활문화그룹으로 우뚝 설 것입니다.” 이날의 다짐이 현실화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법적 독립 완성… 새로운 제일제당 건설 제일제당의 법적 독립은 사업 다각화를 위한 필수 요건이었습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이어왔던 식품 분야에서 혁신을 추구하고 ‘창조’와 ‘문화’에 바탕을 둔 신사업 다각화를 추구하는 것. ‘새로운 제일제당’을 건설하기 위한 방침이었습니다. 그러나 법적 독립 없이는 그룹 확장과 신규 사업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은행 돈을 추가로 빌리거나 신규 투자를 할 때마다 주거래 은행의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그때마다 삼성그룹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대출 액수를 결정하고 투자 허가를 얻어야 했죠. 신규 업종 진출이나 부동산 취득 한도도 제한됐습니다. 제일제당은 각종 규제에 따른 현실적인 문제들을 하나하나 돌파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1997년 4월 17일 완전한 법적 독립을 이뤄냈습니다. 이날 제일제당 그룹 산하에 있는 10개 기업들이 삼성그룹에서 동시에 분리됐습니다. 그동안 적용받던 출자 총액 제한, 지급 보증 등 각종 규제를 받지 않게 돼 기업 인수 합병 등 적극적인 경영을 할 수 있게 됐죠. 당시 제일제당의 자산 규모는 1조 8000억 원이었고 매출액은 1996년 기준 2조 3000억 원에 달했습니다. “ONLYONE해야 제일이 된다” 4대 사업군의 시작 1996년 제일제당 그룹화 선언을 하며 경영진은 새로운 기업이념을 발표했습니다. “꿈과 미래를 연결하는 새로운 생활문화 창조, 인간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공감경영 실천, 모든 경영 활동에서 ONLYONE 추구” 이후 ONLYONE 정신은 그룹의 전략과 문화 전반에 걸쳐 막대한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제일제당은 21세기 그룹 성장을 주도할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엔터테인먼트·미디어·정보통신·건설업·유통업 등이었죠. 독립경영이 가시화된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다양한 신사업이 전개되며 빠른 결실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제일제당의 신규 사업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최초·최고·차별화 등 온리원정신에 부합하는가?’ ‘제일제당의 창업이념인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에 잇닿아 있는가?’ ‘글로벌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후일 제일제당이 추진한 신사업들은 모두 이와 같은 온리원정신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21세기 종합그룹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분야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우리 생활과 뗄 수 없는 밀접한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ONLYONE을 추구하는 생활문화그룹’으로의 지향점을 분명히 했죠. 독립경영과 함께 시작된 신사업은 2000년대부터 4대 사업군으로 발전하며 CJ그룹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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