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98억년 된 유령 메이크업도 OK! ‘비틀쥬스’ 이숙 분장 팀장

‘유령’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핏기없는 얼굴에 어딘가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외모! 그런데 뮤지컬 ‘비틀쥬스’에 등장하는 유령은 좀 다르다. 98억 살로 추정되는, 산 이도 죽은 이도 아닌 비틀쥬스는 흰 얼굴, 초록색 머리, 줄무늬 옷을 입은 경쾌한 외모의 소유자다. 그의 이런 동안(?) 외모는 ‘이 분’의 손길을 거쳐 탄생했다는데. 바로 20년간 ‘모차르트’, ‘엑스칼리버’, ‘명성황후’, ‘팬텀’ 등 뮤지컬 작품에서 분장을 해온 이숙 분장팀장이다.

*본 인터뷰와 촬영은 수도권 코로나 4단계 격상 이전,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습니다.

수염 한 올까지 신경 쓰는 무대 분장의 세계

비틀쥬스 분장을 맡은 이숙 팀장이 분장 도구를 늘어놓은 테이블 앞에 앉아 화장품을 왼손으로 들고 있는 포즈를 취하며 카메라를 응시히고 있다.
뮤지컬 ‘비틀쥬스’ 분장팀을 이끌고 있는 이숙 팀장

Q. ‘비틀쥬스’ 등장인물에는 유령이 많다. 그래서인지 분장도 일반적인 뮤지컬과는 달랐을 것 같다.

메이크업이 얼굴을 더 매력적이고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면, 무대 분장은 얼굴을 다른 인물로 만드는 작업이다. 그래서 뷰티 목적의 메이크업과는 달리 과감한 터치로 과장된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다. 비틀쥬스는 캐릭터의 대부분이 유령이다 보니 짙은 다크서클, 푹 파인 볼 등 윤곽을 강조하는 화장이 주를 이뤄 일반적인 뮤지컬 보다 더 다양하고 과감한 분장이 많았다.  

Q. 일반적인 뮤지컬 분장과도 다른 만큼 준비 기간도 더 많이 소요됐겠다.

분장 작업의 준비 기간은 배우들의 인원 혹은 가발 개수 등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한 달 반전부터 시작하는데, ‘비틀쥬스’는 두 달 전부터 준비했다. 라이선스 작품의 분장은 디자인의 큰 들이 정해져 있어 오리지널 팀과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틀쥬스도 라이선스 작품이기 때문에 기존 자료를 참고해 분장의 방향을 잡고, 한국 프로덕션 연출 맷 디카를로와 함께 수정을 거치며 지금의 무대 분장을 완성했다.

뮤지컬 비틀쥬스에서 비틀쥬스 역을 맡은 정성화와 유준상 배우의 모습. 두 배우 모두 검정, 흰색 세로 줄무늬 정장을 입고 있고, 머리는 곱슬거리는 초록색이다. 정성화 배우는 우쿨렐레같은 악기를 들고 있고, 유준상 배우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
98억 년을 산 유령, ‘비틀쥬스’ 역을 맡은 정성화(좌)와 유준상(우) 배우. (제공 : CJ ENM)

Q. 한국의 비틀쥬스를 보면 오리지널 공연과 거의 유사한 모습이다. 어떤 부분이 수정됐는지 궁금하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공연을 보면, 비틀쥬스 역 배우가 수염이 많은 편이다. 그 공연에서는 이를 살려 수염까지 초록색으로 분장을 했더라. 처음에는 우리도 초록색 수염을 살려 분장을 했는데, 생각보다 어색해서 수염을 뺐다. 그런데 수염을 전부 없애는 건 또 허전해 보여서 연출 및 디자이너와 상의해 적당히 연출하는 방향으로 수정했다.

Q. 그럼 같은 캐릭터의 분장은 동일한 건가. 비틀쥬스를 보면 같은 캐릭터라도 분장이 조금씩 달라 보이던데.

배우마다 생김새가 달라서 그렇다. 얼굴형도 다르고 눈 모양도 달라서 일반 관객이 보기에는 분장이 다르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얼굴의 주름 문양이나 윤곽 분장은 동일하다.

공연 시작 3시간 전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 분주한 이곳!

분장 도구들이 수건 위에 가지런히 놓인 모습. 색조 화장에 쓰이는 쉐도우들과 붓 등의 도구가 놓여있다.
공연 시작 2~3시간 전부터 분주해지는 분장실.

Q. 공연 직전 분장과 헤어는 어떻게 준비하는지 궁금하다.

보통 뮤지컬의 경우 짧게는 공연 시작 2시간, 길게는 3시간 반 전부터 준비를 시작한다. 투입 인원은 배우들의 수, 가발 개수, 분장 스타일 등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6명이 공연을 준비한다. ‘비틀쥬스’는 4명이 한 팀을 이뤄 분장과 가발을 한꺼번에 작업한다.

Q. 델리아 역을 맡은 신영숙, 전수미 배우는 미스 아르헨티나 역까지 1인 2역을 맡았다. 공연 도중 빠른 시간 안에 분장을 바꿔야 하는데 어렵지 않았나.

분장 자체의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니어서 크게 힘든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내에 가발, 분장, 의상까지 전부 바꿔야 하기 때문에 의상 팀, 분장 팀 스태프 3명과 배우까지 총 4명의 합이 딱 맞추는 과정이 조금 어려웠다. 이 부분도 초반에 연습을 많이 해서 이제는 손발이 척척 맞는다.(웃음)

이숙 분장 팀장이 가발을 손질하는 모습. 왼쪽에 비틀쥬스의 초록색 가발이 놓여있고, 이숙 분장팀장이 그 앞에 앉아 고데기로 머리 모양을 만들고 있다.
비틀쥬스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헤어스타일! 비틀쥬스 가발의 경우 배우 별 4개씩 보유해 사용한다.

Q. 가발 같은 경우 한 번 사용하면 땀이나 이물질이 묻어 바로 재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

맞다. 배우들이 공연을 위해 장시간 가발을 쓰고 있으면 땀을 많이 흘려서 소독과 세척을 정기적으로 하고 새로 작업한다. 실제 머리를 감고 헤어스타일을 새로 세팅하는 것처럼, 가발도 깨끗하게 세척을 한 뒤, 처음부터 다시 헤어스타일을 만드는 거다. 또, 공연이 거의 매일 계속되기 때문에 가발은 여러 개를 준비해 놓고 사용하고 있다.

Q. 이번 공연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분장에 캐릭터의 성격, 성향을 반영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같은 옷을 입고 있더라도 각각의 개성이 드러날 수 있게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 ‘비틀쥬스’도 마찬가지로 모든 캐릭터에 신경을 썼지만, 지옥 세계가 나오는 장면에 가장 공을 들였다. 짧은 시간에 다양한 캐릭터가 한 번에 등장하는 장면이라 분장, 헤어, 의상 3박자를 잘 맞춰야 했고, 인물 한 명 한 명의 특징을 살리는 데 힘을 많이 썼다.

즐거움으로 이어온 20년간의 무대 분장!

이숙 분장 팀장이 붓을 들고 앞에 앉아있는 사람의 볼을 터치하고 있는 모습.
힘닿는 데까지 즐겁게 일하고 싶다는 이숙 분장 팀장!

Q. 20년 가까이 분장을 하고 있다. 그간 뮤지컬 분장에도 달라진 점이 있나.

무대 분장은 기본적으로 음영을 많이 살리는 것이 특징인데, 이전에는 진하고 과장된 스타일이 많아 가까이서 보면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음영은 살리되, 가까이서 봐도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분장으로 바뀌었다.

Q.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캐릭터에 맞는 분장을 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다.

일단 뮤지컬을 많이 본다. 분장을 맡지 않은 작품들도 최대한 많이 보려고 한다. 패션 잡지도 많이 참고한다. 요즘은 인터넷이 잘 돼 있기 때문에 분장을 맡으면 그 캐릭터에 관한 자료를 최대한 많이 찾아보고 연구한다. 또, 최대한 다양한 제품을 사용해보려고 노력한다. ‘비틀쥬스’를 맡았을 때에도 처음 접한 제품들이 있었는데, 미리 테스트를 해보고 현장에서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사실 거창한 목표는 없다.(웃음) 예전부터 뮤지컬을 좋아했고, 지금 하고 있는 무대 분장 또한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체력이 뒷받침해 줄 때까지 즐기면서, 재밌게 일하고 싶다!

약 20년간 무대 분장으로 수많은 캐릭터를 빚어낸 이숙 팀장. 지금까지도 그가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배우가 무대 분장을 마치고 캐릭터에 온전히 스며드는 순간을 지켜볼 때다. 98억 년 된 유령, 비틀쥬스를 비롯해 앞으로도 그의 손으로 빚어낸 캐릭터들이 무대에서 오래도록 빛날 수 있길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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