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하우스 칼럼] 평행선 위에 놓인 두 여성의
사랑, 모성애, 그리고 진실. ‘패러렐 마더스’

2020년,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페인 앤 글로리>를 통해 자신의 유년기를 스크린에 투사하면서 영화에 대한 극진한 애정을 고백했다면, 2021년 베니스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패러렐 마더스>에서는 스페인 근대사에 대한 그의 정치적 태도와 책임감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수많은 한국의 TV 일일 드라마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에 이르기까지. ‘병원에서 아기가 뒤바뀐다’라는 소재는 이미 너무 뻔하고 진부한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알모도바르 감독의 상상력은(언제나 그랬듯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거침없이 뻗어 나간다. 

옥미나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사진

옥미나 | 영화 평론가

영화로 사람과 세상에 대해 배우고 있지만, 갈 길이 멉니다

도발적이면서 대담한 포스터에 담긴 스포일러

아트하우스 칼럼 패러렐 마더스 메인 포스터
국내 극장 개봉용 포스터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만의 독보적인 미장센과 ‘평행(Parallel)’의 의미를 담아 시각적으로 표현해냈다(출처: 네이버 영화)

스페인 극장 개봉용 포스터부터 짚고 넘어가자. 붉은색 포스터의 중심에 사람의 눈 모양이 있는데, 정작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유두가 있고, 모유가 한 방울 맺혀 있다. 그래서 얼핏 눈물을 흘리는 사람의 눈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의 눈과 어머니의 상징을 단박에 하나의 도발적인 이미지로 조합하면서, 유두가 암시하는 에로티시즘을 굳이 얼버무릴 생각도 없는 이 대담한 포스터는 그 자체로 이미 <패러렐 마더스>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스포일러에 가깝다.   

이 도발적인 포스터를 참조하면, 영화의 앞뒤를 장식하는 필름 프레임 모양의 크레딧, 카메라 촬영 감독이라는 주인공의 설정에서 나름의 일관성을 포착할 수 있다. 주인공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는 카메라 렌즈 너머 피사체를 관찰하고, 순간과 현재를 기록하는 직업을 가진 인물이면서, 동시에 암매장된 유골을 발굴하기 위해 행동하는 주체이고, 평행의 한 축을 이루는 어머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딸을 낳은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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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병실을 쓴 야니스와 아나는 몇 가지 공통점을 통해 빠르게 깊은 관계로 빠져든다(출처: 네이버 영화)

두 여성이 같은 병원에서 같은 날, 딸을 낳게 된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또 있다. 두 사람 모두 미혼이며, 남편 혹은 아이의 양육을 함께 책임질 아이의 아버지가 없다는 것.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세계에서는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설정이다. <산 정상의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사람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에 이르기까지. 페드로 알모도바르에게 아버지는 자주 부도덕과 악을 상징했고 없으니만 못한 존재였다. <패러렐 마더스>에서도 ‘괜히 옛날 상처를 들쑤시지 말고,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는 왜곡된 역사의식을 심어준 존재로 암시되는 것은 아나(밀레나 스밋)의 아버지다. 

반면, 화면에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어머니는 세 명이다. 반대하는 애인과 헤어지고 출산을 감행하는 주체적인 여성 야니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정확히 모르는 17세의 아나, 그리고 연기자가 되기 위해 이혼하고 양육권을 포기하는 바람에 제대로 ‘어머니’의 삶을 산 적이 없는 아나의 모친 테레사(아이타나 산체스 지욘)까지. 테레사는 아기를 낳고 달라진 딸 아나의 모습을 통해서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여성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목격하는 역할도 겸한다. 

화면에 등장하지 않지만, 그녀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 – 그래서 역사를 지나간 과거로 덮어버리는 대신에 들판을 파헤치게 만드는 힘은 어머니와 그 어머니들의 약속이다. 세대를 넘어 연결되는 여성들은 스페인 내전의 비극과 피해자들의 증인으로 남는다. 

침묵을 깨고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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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니스의 집에는 여성들의 사진이 주로 걸려 있는데, 이는 모든 여성과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이야기라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출처: 네이버 영화)

알모도바르는 에드아르도 갈레아노를 인용한다. ‘침묵의 역사란 없다. 그들이 아무리 태워버리고 아무리 부서뜨리고 아무리 거짓말해도, 인류의 역사는 침묵하지 않는다.’ 유해 발굴은 그저 남자의 수작이라고 말하는 아나에게 야니스는 정색하고 일갈한다. 실종되고 암매장된 이들을 찾아서 제대로 매장한다는 약속을 지킬 때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고. 

페넬로페 크루즈에게 알모도바르 감독의 목소리가 겹쳐지는 순간, 나는 스페인 내전이 언제였는지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1936년에서 1939년까지였다. 한국전쟁과 4.3항쟁, 5.18민주화운동은 모두 그 이후의 일이다. 한국 관객들이라면 <패러렐 마더스>를 그저 아이 뒤바뀐 여자들의 통속적인 멜로드라마로 마음 편하게 소비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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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크루즈는 2021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에 이어 2022년 아카데미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출처: 네이버 영화)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에 페넬로페 크루즈가 출연한 것은 이번이 8번째다. 그녀는 <패러렐 마더스>로 베니스영화제에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감독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그리고 배우에 대한 애정과 완벽한 이해 덕분에 <패러렐 마더스>에는 그녀가 가진 최대치의 매력과 역량이 십분 발휘되었다. 위태롭고 파격적인 알모도바르 감독의 내러티브는 페넬로페 크루즈가 아니었다면 납득 가능한 개연성을 획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CJ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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