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하우스 칼럼] 진실 넘어 빛의 진리가 가리키는 차갑고 날카로운 그곳! ‘빛과 철’

교통사고가 났다. 법적으로 책임 여부는 가려졌지만 사고의 곁에 남겨진 자들은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이들을 피해와 가해의 구렁텅이로 빠트린 자는 누구일까? 배종대 감독의 데뷔작 영화 ‘빛과 철’은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어 보이는 피해와 가해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든 두 인물을 통해서 고통의 무게와 원인, 그곳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있는지 질문한다. 데뷔 작품임에도 거친 감정의 결들을 섬세하게 주조하며 파국의 지도를 펼쳐놓은 감독의 시선과 염혜란, 김시은, 박지후 등 배우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살펴본다.

이동윤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이동윤 |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2021년의 강렬한 데뷔작 ‘빛과 철’내놓은 배종대 감독은 누구?

차 안에 비에 젖은 두 명의 여자가 앉아있는 모습. 왼쪽에 머리를 묶고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있다. 오른 쪽에는 눈물고인 희주의 얼굴이 보인다.
은영의 존재를 깨닫고 한없는 죄책감에 빠지는 희주(김시은)(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배종대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무척 흥미롭다. 2007년 첫 작품인 단편 영화 ‘고함’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부문에 출품하고, 부산독립영화제에서 특별언급을 받았다. 이후 두 편의 단편 영화에 스텝으로 참여한 후, 2009년에 단편영화 ‘계절’을 거쳐 2010년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간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엔 장편 상업영화 ‘시체가 돌아왔다’(2012), ‘곡성’(2016)의 연출부를 거쳤으니 감독이 되기 위한 길을 나름 착실히 걸어온 셈이다.

그로부터 첫 장편영화 ‘빛과 철’을 만들기까지 4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그 시간 동안 감독이 겪어내야 했을 고뇌의 시간들이 얼마나 길고 깊었을지 충분히 느껴진다. 인터뷰에서 차기작을 물어보는 기자의 질문에 “너무 오래 이 영화에 매달려서 이 영화 외에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작업해서 다음에 무슨 영화를 만들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씨네21, “’빛과 철’ 배종대 감독 – 타인의 마음을 읽는 미스터리”, 2020-06-03)라고 답한 것을 보면 그에게 이 영화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임에 분명하다.

캐릭터들의 감정보다 절대 앞서지 않는 극적 반전들

교통사고가 일어났던 도로변에 희주가 무릎을 꿇고 앉아 오열하는 모습. 그 뒤로는 앙상한 나무와 산이 보인다.
남편의 사고 현장에서 오열하는 희주(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빛과 철’은 희생된 자들이 남겨놓은 비밀들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인물들의 추적 서사를 중심에 놓는다. 미스테리 서사에서 탐정이 된 자는 범인을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사건 이면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를 맞이하게 하게 되는데, 이때의 음모는 일반적으로 희생당한 자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삭제하려 했던 근원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서사가 ‘미스테리’에만 초점을 맞추면 음모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억압된 자의 목소리가 다시금 복원되기 보다는 일종의 ‘탐정놀이’가 주는 유희에 빠지며 그 모든 가능성들이 희석되어 버리고 만다. ‘빛과 철’은 이러한 태도로부터 철저히 거리를 둔다.

비오는 도로에 서 있는 은영과 희주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
알 수 없는 은영(박지후)의 행동에 당황하는 희주(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희주(김시은)의 남편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잃은 아픔도 쉽게 가시지 않지만 남편이 사고의 가해자란 사실 때문에 살아남은 자로서 희주는 모든 죄책감을 오롯이 떠안는다. 상실과 죄책감이라는 이중의 고통 속에 묶인 채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던 그녀는 어느 날 어쩌면 남편이 가해자가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부터 희주는 사고 직전, 희생자와 가해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희주의 집착은 곧 자신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자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쳐 가는 과정 속에서 그녀가 만난 단서들은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스런 진실들을 대면하도록 만든다.

병원 환자 대기석에 있는 은영과 영남의 모습. 자리에 앉아있는 은영의 뒷모습과 그런 은영을 바라보는 영남의 모습.
진실을 말해버린 은영을 다그치는 영남(염혜란)(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감독은 이러한 서사의 결들을 절대 성급하게 풀어놓지 않는다. 은폐된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관객들에게 제공되는 반전의 카타르시스가 연출자로서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서사적 힘을 만듦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절대 이러한 서사적 힘이 캐릭터의 감정보다 앞서지 않도록 철저히 통제한다.

오히려 인물들이 지닌 감정의 힘을 통해서 은폐된 진실이 지니는 무게감을 온전히 관객에게 험토록 한다. 희주와 영남(염혜란)이 대면하게 되는 모든 진실들은 사고의 원인이 그녀들에게만 존재하지 않음을, 사회적 구조 사이에서 발생한 여러 모순들이 결국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음을 깨닫게 한다. 이 순간 관객으로서 우리가 경험한 그녀들의 고통은 곧 실존적 고통으로 다가오며 현실화 된다. ‘빛과 철’의 미스테리적 요인들이 관객들을 극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면 감독은 캐릭터들의 감정들을 통해서 영화적 상황들이 단지 영화적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만든다.

여성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욕망들의 향연

길 한가운데 서있는 영남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 모습. 그 뒤로는 컨테이너 박스, 화물차, 길 등의 풍경이 보인다.
남편의 희생에 대한 울분을 삭히는 영남(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여성들의 서사가 거의 부재한 한국영화계에서 세 여성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욕망들의 부딪침을 보는 것은 ‘빛과 철’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감독은 촬영 전 배우들이 가급적 만나지 않고 현장에서도 서로 친해지지 않도록 신경 썼을 정도로 영화 속 인물들이 서로를 향해 거침없이 낯설고 날카로운 감정들을 뿜어내길 바랬다.

그 결과 세 여성들, 영남과 희주, 은영이 서로에게 내뿜는 증오, 공포, 죄책감의 감정들은 거대한 풍랑의 파고를 일으키며 관객들에게 몰려온다. 영화를 보는 동안 세 캐릭터의 고통에서 쉽게 헤어 나올 수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를 연기한 염혜란, 김시은, 박지후 배우의 힘이기도 하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배우상을 수상한 염혜란 배우가 연기한 영남은 쉽게 고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모든 감정을 내면으로 삭혀내는 존재다. 영남에게 남편은 자신의 삶을 파괴시킨 원인이자 반드시 되살리고 싶은 존재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에 대한 죄책감과 그를 사고로 몰아 넣은 삶의 조건들에 대한 울분에 빠져 허우적대기 보다는 그 고통을 직접적으로 응시하고 바라보며 현재를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녀는 절대 도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끈질기게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며 반드시 일상을 회복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는다.

왼쪽에는 한 곳을 응시하는 희주의 모습. 오른쪽에는 눈물짓고 있는 은영의 모습.
희주를 연기하는 김시은(좌)과 아빠에 대한 비밀을 밝히며 눈물 짓는 은영 역의 박지후의 열연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반면 김시은 배우가 연기한 희주는 모든 감정을 뿜어내며 자신의 내면을 가시화 시킨다. 희주의 신경증적 불안 상태는 영화 전체가 유지하는 긴장과도 직결된다. 곁에 있는 자들을 밀어내고 오히려 고통을 주는, 줄 수도 있는 자들에게 집착하며 그녀는 모든 사건의 은폐된 진실을 파헤쳐 나간다. 그만한 힘과 에너지가 도저히 남아 있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그녀는 온 존재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 모아 서사를 이끌어 간다. 감정을 감추는 영남과 드러내는 희주 사이에서 영남의 딸 은영은 전적으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행동하고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나아가는 존재다.

‘벌새’의 은희 역할로 큰 사랑을 받았던 박지후가 연기한 은영은 아버지의 사고에 대한 은밀한 진실을 홀로 품고 있음에도 이를 고통으로 표현하거나 의도적으로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며 두 인물 사이를 연결 짓고 교란시킨다. 그래서 은영의 행동은 솔직하고 겸허하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힘을 지닌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영남과 희주가 앉아있는 모습. 그 뒤에 있는 창문으로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밝은 빛과 차가운 푸른 빛이 주를 이루는 ‘빛과 철’의 한 장면(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빛은 사상사에서 ‘진리’를 가리켰다. 진실을 넘어선 진리가 존재하는 곳. 그곳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데아가 아닐 수도 있다.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 재질의 그 무언가가 우리의 마음을 할퀴고 상처 내는 감당하기 어려운 어떤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감독은 그럼에도 우리가 그 진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진리가 지닌 모든 고통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해방될 수 있을 테니까. ‘빛과 철’이 강렬한 고통들을 나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벗어나기 힘든 감동을 안겨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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