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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부재는 단순히 대화가 안된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칫 한 가족이 생이별을 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영화 ‘리슨’은 힘들게 살아가는 한 이민 가족이 소통의 부재로 인해 겪는 고통을 오롯이 담아내며, 사회적 약자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사회 복지 시스템을 수면위로 끌어올린다.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묵직한 울림, 그 과정에서 비춰지는 모성애는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고 한숨 짓게 만든다. 과연 이 가족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이들은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옥미나 | 영화 평론가 영화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배웁니다 아나 로샤 감독과 ‘강제 입양’ 실화의 운명적 만남! ‘엄마는 나의 가정 좋은 리스너예요’라는 카피가 인상깊은 영화 ‘리슨’ 포스터(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포르투갈 출신인 아나 로샤 감독은 배우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미술 학위를 받고 설치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런던으로 거처를 옮겨 본격적인 영화 공부를 시작한다. 영국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우연히 듣게 된 ‘강제 입양’과 관련된 실화가 그녀를 사로잡았고, 이민자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자신의 경험이 더해져 마침내 영화 ‘리슨’으로 완성되었다. ‘리슨’은 아나 로샤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영화다. 이 작품이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던 2020년, 감독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아나 로샤 감독은 투명 마스크를 쓰고 베니스영화제의 포토월에 등장했다. 청각장애인들에게 입 모양과 표정을 통해 의사와 감정을 전달할 목적으로 특별히 제작된 마스크를 착용했던 것. 과연 ‘리슨’이란 영화 제목에 어울리는 감독의 행보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 해 아나 로샤 감독은 ‘미래의 사자상’과 오리종티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영국 런던에 살고 있는 포르투갈 이민자인 벨라(루시아 모니즈)와 남편, 그리고 삼남매. 어두운 분위기는 이들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 하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의 배경은 런던 교외. 포르투갈 이민자 부부가 삼남매와 함께 살고 있다. 실직한 남편은 몇 달째 월급이 체납된 상태고, 청각장애를 가진 어린 딸 루(메이지 슬라이)에게 젖먹이 막내를 맡긴 아내는 상점에서 빵을 훔쳐 아이를 먹인다. 남편에게 신신당부하는 아내의 말투로 짐작건대 사회복지사는 정기적으로 이 집을 방문하는 눈치다. 그리고 사회 복지국에서 유독 이들을 눈여겨보는 이유는 분명 그들의 빈곤일 것이다. 사회가 규정한 최소한의 ‘좋은 부모 자격’은 애정과 관심 같은 피상적인 개념 대신 바로 눈에 드러나는 경제력이 된지 오래다. 그러나 하필 보청기가 고장 난 날, 루의 등에서 알 수 없는 멍 자국이 발견되고 복지부 직원과 함께 출동한 경찰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친부모로부터 자녀들을 격리한다. 이민자 가족을 통해 바라본 영국 복지 시스템의 이면 영국 사회복지 시스템의 허점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부분은 ‘미안해요 리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등 블루칼라의 시인이라고도 불리며 영국 내 노동자계급의 실상을 영화로 옮기는 켄 로치 감독의 주제 의식과 일맥상통한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최근 가정이 은밀하고 견고한 감옥이 되고 말았던 유아 학대 관련 사건 사고들이 연이어 사회면에 등장하면서 부모의 도리와 자격에 대한 개탄과 반성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그러나 유교적 가부장 질서를 근간으로 삼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부모와 자녀는 여전히 국가나 제도가 섣불리 개입하기 어려운 ‘천륜’이라는 초월적 특수관계로 남아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리슨’에 등장하는 ‘강제 입양’은 낯설고 생경한 개념일 수밖에 없다. 국가 시스템이 부모의 자격을 규정하거나 박탈하고, 부모 및 자녀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격리 및 강제 입양과 같은 절차를 이행한다는 영국의 현실이 얼핏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아나 로샤 감독은 ‘리슨’을 통해 ‘강제 입양’을 추진하는 영국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아이들의 안전 확보라는 대의명분으로 순발력을 강조한 나머지 도리어 당사자들에게 정당한 해명의 기회를 차단한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그래서 그녀가 주인공으로 삼는 것은 영어보다는 포르투갈어가 더 편한 이민 가정이다. 평생을 영국에서 타자로 살아가야 하는 숙명, 포르투갈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번역해서 말하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간의 간극과 증발하는 의미와 의도들. 그들은 사회복지사들 앞에서 이미 주눅 들어 있고 영국에 머무는 것 자체가 죄인 것처럼 연신 아이들만 되찾으면 포르투갈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가족의 해체를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엄마 벨라 역에 루시아 모니즈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작가 제이미(콜린 퍼스)와 연인으로 발전하는 오렐리아 역을 맡은 바 있다. 간신히 만난 부모와 자녀들의 대화에도 모국어인 포르투갈어 대신 영어가 요구되고, 참관인이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수화는 금지된다. 부모들을 가정폭력 범죄자로 간주하는 상황에서 시스템의 논리와 절차를 설명하는 이는 아무도 없고, 모두 예외 없는 복종을 강요한다. 합리적 예외를 외면하는 규정과 규범이 비합리적인 폭력으로 돌변하는 것은 이토록 한순간이다. 시민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설립되었을 사회복지제도는 정작 이들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리슨’이란 제목은 청각장애를 가진 어린 딸 루의 이야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이들 가족의 당연하고 정당한 설명에 귀 기울여줄 것을 요구하는 감독의 주장에 가깝다. 자녀들을 되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 속에서 또렷한 성장을 보여주는 인물은 어머니 벨라(루시아 모니즈)다. 결국 가족들은 서로를 되찾아 부둥켜안고 퇴장하지만, 이들의 승리는 온전히 합법적인 것이 아니라 주변의 선의와 요행이 뒤섞여 있어서 해피엔딩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쓸쓸함을 남긴다. 일찍이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콜린 퍼스의 원고를 건지기 위해 연못에 뛰어들었던 용맹한 루시아 모니즈를 다시 스크린에서 만나는 경험은 반가운 것이었다. 또한 청각장애 캐릭터에 실제 청각장애 배우인 메이시 슬라이를 기용한 감독의 선택도 기껍다. 영화를 통틀어, 듣지 못하는 아이 루가 가장 열심히 집요하게 상대를 관찰하고, 상대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은 아나 로샤 감독의 역설적인 상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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