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하우스 칼럼] 미래가 겪어야 하는 십개월의 좌충우돌 관찰기 ‘십개월의 미래’

당신의 십개월 뒤를 상상해 본 적 있는가?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의 모호함을 고려한다면 십개월은 가까우면서도 멀게 만 느껴지는 애매한 미래적 시간이다. 하지만 스타트업 프로그램 개발자로 일하던 ‘미래(최성은)’에게 십개월은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촉각적으로 다가오는 시간대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십개월을 이토록 절실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는걸까.

이동윤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이동윤 |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프로그램의 세계 VS 카오스의 세계

회사 회의실 보드를 배경으로 검은색 옷을 입은 미래가 충격적인 사실을 듣고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다.
대표에게 임신 사실을 말하는 미래. 회사 중요 프로젝트를 운영 중인 그녀에게 임신은 카오스 그 자체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미래는 프로그래머다. 프로그램은 일정한 규칙과 법칙으로 이뤄진 코딩에 의해 설계된다. 문제가 주어지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미래의 세계다. 하지만 임신은 그녀를 한순간 카오스로 몰아넣는다. 임신 자체가 계획에 없던 일이었고 심지어는 어떻게 임신이 됐는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일의 세계에선 프로답게 모든 일을 풀어낼 수 있던 그녀가 예측하지 못한 임신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뒤죽박죽 혼란스러워 한다.

미래의 절친 김김(유이든)은 말한다. “답을 찾을 수 없으면 문제를 없애는 게 맞다고 본다” 이성적 사고체계로 이뤄져 있는 과학의 세계에선 지극히 합리적인 말이나 모순으로 가득한 우리의 삶 속에선 그다지 쉽게 적용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십개월의 미래’는 뜻하지 않은 삶의 이변 앞에 우뚝 서야 하는 미래의 좌충우돌을 재치 있게 그려낸다.

이 작품을 연출한 남궁선 감독은 2009년 ‘최악의 친구들’로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비정성시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한바 있다. 이미 단편에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은 감독은 ‘남자들’(2013), ‘여담들’(2019)을 거쳐 ‘십개월의 미래’를 통해 장편 데뷔를 한다. ’십개월의 미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장편영화 프로젝트로 선택되어 2018년 촬영했으나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려 2020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미 첫 상영 이후 입소문을 거듭하며 새로운 영화계의 떠오르는 거물급 신인이 등장했음을 많은 이들이 인정했다.

임신이 블랙코미디가 될 수 있다?!

산부인과 진료실을 배경으로 임신 초음파 사진을 들고 의사에게 진짜 임신이 맞냐는 제스처를 취한 미래와 그녀의 절친 김김이 의자에 앉아 있다. 그 뒤에 이 광경을 간호사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임신 사실을 믿기 어려워하는 미래와 그녀의 절친 김김.(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임신한 미래가 겪어내야 하는 현재는 지극히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다. 아기가 아닌 일을 선택하려는 미래에게 애 아빠인 윤호(서영주)는 ‘엄마’로서의 의무를 강요한다. 회사에선 임신했다는 이유로 모든 프로젝트에서 배제되고, 새로 면접 본 회사에서는 그녀의 임신을 부담스러워 하며 경계한다. 이 시대의 ‘82년생 김지영’ 보다 10년 이상은 젊은 그녀이지만 현실은 지영이 겪어야 하는 사회적 조건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십개월의 미래’는 임산부에게 부당한 사회의 모순들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서사는 오로지 ‘미래’에게 주목하며 이 상황을 그녀가 어떻게 타파해 나가는지에만 초점을 맞춘 채 때로는 지켜보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 그래서일까? 미래가 처한 삶의 조건은 지극히 지난하지만 영화는 이를 유쾌, 경쾌, 발랄하게 그려낸다. 블랙코미디라 부를 수 있을 법한 ‘십개월의 미래’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신인이라 하기엔 너무 원숙한 배우, 최성은

친구의 카페에서 의자에 앉아 임신 관련 고민을 말할까 말까 고민하며 뭔가를 만지작 거리는 주인공 미래의 모습이다.
친구의 카페에서 고민을 토로하는 미래를 연기한 최성은. 또 하나의 주연급 배우의 탄생을 알린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십개월의 미래’는 배우 최성은의 매력으로 온통 가득 차 있는 영화다. 영화 ‘시동’을 통해 대중에 얼굴을 알렸지만 막상 그녀는 다수의 독립단편영화제 출연하여 이미 독립영화계의 히로인으로 잘 알려져 왔다.

웨이브와 MBC, 한국영화감독조합이 함께 협력하여 만든 SF8 시리즈 ‘우주인 조안’을 통해서 보다 친숙하게 대중과 만났고, JTBC 드라마 ‘괴물’을 통해서 선명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 시킨 그녀는 아직 보여줄 것이 너무도 많은 가능성 많은 신인이다. 하지만 ‘십개월의 미래’속 최성은은 단순히 신인으로 분류하기엔 이미 너무도 원숙한 연기력과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을 선보여 또 하나의 주연급 배우가 출연했음을 인정하게 만든다.

어리숙하게 엉클어진 머리를 하고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가도 부당한 상황이 벌어지면 당당하게 소신 것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한 인물이 드러낼 수 있는 감정의 폭을 확장시키며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이성적인 과학도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감정에 충실한 미래 캐릭터는 절대 이성은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십개월의 미래’는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부터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제20회 뉴욕아시안영화제, 제41회 하와이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끊임없이 초청을 받으며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은 작품이다. 이는 전적으로 영화에 감독의 경험이 현실감 있게 베어 있기 때문이다. “막상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임신이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 사건이 되는지를 알게 되었던 것 같다”고 고백한 감독의 인터뷰에서 드러나듯 ‘십개월의 미래’는 임신을 추상적으로 사유하지 않고 구체적인 현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한 개인에게 도래한 역사적 사건으로 그려낸다. 이 작품이 지닌 보편적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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