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하우스 칼럼] 레오스 카락스가 노래한 압도적 황홀감! ‘아네트’

1984년 흑백영화 ‘소년 소녀를 만나다’로 데뷔하며, 첫 영화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천재 감독 레오스 카락스. 이후 긴 시간동안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 ‘폴라 X’, ‘홀리모터스’까지 단 5편의 장편 영화를 선보이며 과작의 감독 반열에 오른 그가 9년 만에 신작을 선보인다. 6번째 영화 ‘아네트’는 놀랍게도 레오스 카락스의 첫 뮤지컬 영화다(심지어 송스루 뮤지컬이다).

아담 드라이버가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를, 마리옹 꼬띠아르가 오페라 가수 ‘안’을 연기하며, 두 사람은 사랑의 마법에서 풀려나 부모가 된 연인이 겪는 불화와 심리적 혼란 속으로 잠수한다. 영화 제목인 ‘아네트’는 이들 사이에 태어난 딸의 이름이다. 이번 작품에서 감독은 사람 대신 목각인형을 등장시키면서 허구와 진짜의 경계를 묻고, 뮤지컬 영화와 공연 예술의 자리를 넘나들며 영화의 본질에 대해서 탐색한다. 오는 27일 개봉 예정인 초현실적 사랑 영화 ‘아네트’를 소개한다.

김소미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사진

김소미 | CGV아트하우스 큐레이

제각기 고유하고 무모한, 영화의 틈새가 궁금하다

레오스 카락스의 첫 뮤지컬 영화, 그리고……

마이크를 앞에 두고 선글라스를 낀 레오스 까락스 감독이 앉아 있고, 그 뒤에 딸 나타샤가 앉아 이를 지켜보고 있다.
영화 ‘아네트’로 뮤지컬 영화에 도전한 레오스 카락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제74회 칸국제영화제 개막작,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초청작이기도 한 ‘아네트’는 레오스 카락스의 필모그래피 중 첫 번째 뮤지컬일 뿐 아니라 그가 직접 기획하지 않고 원안자가 따로 있는 첫 영화이기도 하다. 이 대담한 뮤지컬을 구상해서 감독에게 제안한 이는 미국 밴드 스파크스 형제. 이미 완성된 50여곡의 음악과 LA 배경의 러브스토리를 감독에게 전한 스파크스 형제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오프닝곡 ‘So May We Start’에서 카메라는 스튜디오에 앉은 레오스 카락스 감독과 그의 딸 나타샤, 맞은편에서 노래를 부르는 스파크스 형제를 차례로 비추고 마지막으로 배우를 등장시킨다. 모든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까지 끊김 없이 흐르는 이 숏은 감독, 감독의 가족, 음악감독, 배우, 그리고 마침내 캐릭터 속으로 관객을 이끄는 독특한 화술로 이목을 끈다. 영화라는 매체의 겉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다음 이윽고 서사 내부로 서서히 진입하는, 무척이나 투명한 숏이다. 감독 스스로 ‘홈 무비적인 방식’이라 명명한 오프닝의 태도는 ‘아네트’가 카메라 앞과 무대 위, 카메라 뒤와 백스테이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형식 실험을 즐기는 영화임을 공표하고 있다.

심연을 마주한 인간, 노래하다

드니 라방을 생각나게 하는 신체 연기로 특별함을 전하는 아담 드라이버가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오페라 가수로 분하며 특유의 매력을 전하는 마리옹 꼬띠아르에게 꽃다발을 전하며 입맞춤을 시도하고 있다.
드니 라방을 생각나게 하는 신체 연기로 특별함을 전하는 아담 드라이버와 오페라 가수로 분하며 특유의 매력을 전하는 마리옹 꼬띠아르(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헨리와 안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오페라 가수로서 커리어의 정점에 선 순간에 사랑에 빠진다. 화려한 두 연인, 서로를 향한 완벽한 매혹, 영원할 것 같은 낭만이 이들을 감싸지만 환상은(영화는) 언젠가 끝이 나기 마련이다. 역설적이게도 사랑의 결과물인 딸 아네트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행한 예감은 서서히 실현된다. 안과 달리 인기가 점점 식어가는 헨리는 자신의 불안과 시기를 숨기지 못하고 불화의 불씨를 만든다. 두 사람은 관계 회복을 위해 크루즈 여행을 떠나기로 하는데, 사태는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는다.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명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의 전기를 찾아 읽는 데 특히 몰두했다는 레오스 카락스는 특히 헨리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카메라 뒷편의 ‘광대’로서 카메라 앞의 여성 디바들에게 매혹되어 왔다는 것을 솔직하게 밝히는 그의 영화는 언제나 ‘소년 소녀를 만나다’라는 하나의 테마를 관통한다.

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아르가 오토바이를 함께 타며 어둠 속 도로를 가로질러 가고 있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아네트’ 구상 시 떠올렸다는 모타사이클 장면 중 하나(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아네트’를 구상할 때 광활한 LA를 배경으로 헨리가 안을 향해 모터사이클을 타고 질주하는 모습부터 떠올렸다는 감독에게 이번 영화는 오페라 세계와의 괴리를 맛본 코미디언의 혼란과 좌절, 자기 연민의 고백 서사이기도 하다.

감독은 특히 아버지로서 자질이 부족한 듯 보이는 헨리를 묘사하면서 ‘심연과의 교감’을 노래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전설적인 미국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가 쓴 표현인 심연과의 교감(Sympathy for the Abyss)은 레오스 카락스의 해석에 의하면 “삶에 위기가 닥친 어느 때에 문득 일어나는, 우리를 수렁에 빠트리고 내면의 어둠을 마주하게 하는” 존재론적 사건이다. ‘아네트’에서는 사랑의 희열이 영원하리라 믿었던 젊은 연인이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이 심연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레오스 카락스의 흥미로운 형식 실험

검은색 무대에 핀 조명 하나가 비춰져있고, 그 아래 한 남자가 목각인형으로 된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있다.
딸 아네트는 사람이 아닌 목각인형으로 등장한다. 이를 위해 3~4명의 인형조종사가 현장에서 직접 조종했다.(사진 출처: ‘아네트’ 메인 예고편 캡쳐)

전작 ‘홀리모터스’에 이어 ‘아네트’ 역시 초현실주의적인 터치가 느껴지는 형식 실험으로 시청각적 주의를 끈다. 10대 중반부터 20대 중반까지 영화에 파묻혀 살다시피 한 레오스 카락스에게 체화된 무성영화적 감각은, 감독의 본능과 직관이 되어 영화 곳곳에서 강하게 피어오른다. 오프닝 시퀀스와 마찬가지로 롱테이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아네트’는 서로 이질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순간들을 한 덩어리로 뭉쳐놓거나, 사실적인 장면에 인공적인 미장센을 가미해 관객을 혼란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예가 사람이 아닌 목각인형으로 설정된 딸 아네트다. 영유아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이후 감독은 3D 작업을 배제하고 마리오네트를 영화에 쓰기로 마음 먹는다. CG 기술로 갓난아이를 만들어내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이 시대에 감독의 선택은 다분히 고집스러운 무엇이다. 그는 후반작업(포스트 프로덕션)을 통해 없던 것을 재창조하거나 무언가를 고치는 행위를 경계하는 작가다. 촬영 현장에 물리적 실체로 존재할 것, 카메라라는 기계 장치 앞에 실존할 것. 레오스 카락스가 판단한 배우의 자질은 바로 이것이었고, CG 기술이 아닌 마리오네트가 어려운 자격시험을 통과했다.

결과적으로 ‘아네트’는 존재만으로도 영화에 희비극적 속성을 불어넣었다. 게다가 이 마리오네트는 기계 장치에 줄을 매달아 움직인 것이 아니라 많게는 3~4명의 인형조종사가 현장에서 직접 조종한 것이다. 영화에 쓰인 유일한 CG는 바로 이 인형조종사들을 화면에서 지우는 데 사용됐다. 어쩌면 레오스 카락스는 인형 조종사들에 의해 조종되는 마리오네트의 존재에 영화 매체를 환유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 모든 환상적인 일들이 카메라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 기이하게 이어지는 롱테이크를 사용하고, 장중하고 마술적인 뮤지컬 영화와 자기만의 홈 무비를 일치시키는 작가니까 말이다. 따라서 레오스 카락스의 경계 없는 판타지 안에서 관객은 자주 어리둥절할 특권을 누린다.

프랑스 영화의 외딴 문법, 레오스 카락스가 쓴 새 뮤지컬의 신화가 넋 나간 관객에게 내리는 첫 신탁은 이것이다. “이제부터 침묵해주십시오. 숨 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을 겁니다.”(영화의 첫 내레이션) 펼쳐지는 시네마틱한 장면들의 향연 속에서 관객은 머지않아 오만한 내레이션의 근거를 알게 될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압도적인 황홀감, 그 드문 경험이 ‘아네트’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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