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하우스 칼럼] 그들은 왜 유목민의 삶을 자처하는가! ‘노매드랜드’

지난해 열린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 ‘노매드랜드’는 탄광산업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미국의 산업도시가 몰락한 이후, 작은 밴을 타고 미국 전역을 떠돌게 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자신은 홈리스(노숙자)가 아니라 하우스리스(주택이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인물의 속내는 어떤 것일까.

옥미나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사진

옥미나 |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영화로 사람과 세상에 대해 배우고 있지만, 갈 길이 멉니다

‘노매드랜드’ 여정의 시작은?

프란시스 맥도맨드 주연, 클로이 자오 연출 영화 '노매드랜드'의  스틸로 프란시스 맥도맨드와 클로이 자오가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주인공인 펀 역의 프란시스 맥도맨드와 연출을 맡은 클로이 자오. 특히 클로이 자오는 이 작품 이후 ‘이터널스’의 연출을 맡았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의 시작은 르포 작가 제시카 브루더가 쓴 논픽션 ‘노마드랜드’이다. 그는 3년 동안 캠핑용 밴으로 미국 전역을 약 3만 km를 여행하면서 ‘노매드(유목민)’ 생활을 하는 이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내밀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다. 그들은 대부분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집을 포기하고 자동차에서 거주하면서 저임금 노동으로 생계를 근근이 유지하는 퇴직 이후의 노년계층이다. 단순 육체 노동, 낮은 임금, 불안이 된 일상을 살면서도 그들은 생존을 목표로 삼는 대신 예측 불가능한 일상 속에서 단순한 것에 감사하며 희망을 품고 서로 위로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노마드랜드’의 가능성과 매력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배우 프란시스 맥도맨드와 피터 스피어스(그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프로듀서이자 배우 겸 감독으로 영화에서 피터 역으로 출연했다)였다. 두 사람은 일찌감치 영화화 판권을 선점하고 연출을 맡길 감독을 물색하다 2017년 토론토 영화제에서 ‘로데오 카우보이’를 보고 클로이 자오 감독을 적임자로 낙점한다.

클로이 자오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감독으로 2015년 사우스 다코타 아메리칸 원주민 청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 ‘내 형제가 가르쳐준 노래’로 데뷔했다. 2017년에 공개한 ‘로데오 카우보이’는 사고로 카우보이 생활을 관둬야 하는 입장에 처한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전작 두 편 모두 미국 중서부를 배경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세미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현한 그녀야 말로 논픽션인 ‘노마드랜드’를 영화로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감독이었던 셈이다.

배우부터 스탭들까지 진짜 노매드 생활을 한 이유?

프란시스 맥도맨드 주연, 클로이 자오 연출 영화 '노매드랜드'의 스틸로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랜턴을 들고 유목민들이 모여 사는곳으로 가고 있다.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실제 밴에서 생활했던 프란시스 맥도맨드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2018년부터 4개월 동안 이어진 촬영 기간 동안 감독과 주연 배우인 프란시스 맥도맨드를 비롯한 영화 스탭들은 밴에서 생활하면서 진짜 노매드의 일상을 경험한다. 또한 원작 르포에 참여했던 실제 인물들이 영화에 직접 실명으로 출연했는데, 린다 메이, 샬렌 스왱키, RTR 행사 주최자인 밥 웰스 등은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배우라는 사실을 미처 눈치채지 못하거나, 영화를 저예산 독립 다큐멘터리쯤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카메라 앞에서 털어놓았다고.

금융 위기와 대침체를 겪으면서, 직장과 집을 잃고 유랑 생활을 시작한 노매드들에게는 각자의 비극과 상실의 상처가 있다. 직접 경험한 적이 없으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선택과 생활. 그래서 노매드들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친근하고 유효한 도움의 손길을 건네며 서로의 존재를 위안과 희망으로 삼는다.

‘노매드랜드’가 바라보는 현대의 유목민들의 삶

프란시스 맥도맨드 주연, 클로이 자오 연출 영화 '노매드랜드'의 스틸로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차로 이동하는 유목민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영원한 이별은 없으며, 모두 다시 언젠가 길에서 만나게 된다’는 극중 늙은 노매드의 이야기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부분이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유독 기온과 날씨에 예민해지는 생활, 계절에 따라 다른 행선지와 떠날 시기를 가늠하고,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이따금 커뮤니티를 이루기도 하지만 때가 되면 대단한 작별 인사도 남기지 않고 자동차의 시동을 거는 사람들. 그들은 자본주의가 약속한 안정과 행복이 얼마나 허약하고 깨지기 쉬운 환상인지 잘 알고 있다. 혼자 누구보다 먼 길을 떠나고,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세상이 크고 아름답다는 것을 깨우치면서 이들은 각자의 고립된 고독과 비극 속에 침잠하는 대신 자연의 이치와 아름다움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노매드랜드’는 방랑하는 이들을 추방자나, 낙오자 혹은 그래서 실패와 좌절을 털고 일어나 구도의 길을 찾아 헤매는 서사시의 주인공처럼 과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구원해야 할 대상으로 묘사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일상에 포진한 고독과 비애를 헤아리되,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대신 그들의 선택에 공감하러 노력할 뿐이다. ‘영원한 이별은 없으며, 모두 다시 언젠가 길에서 만나게 된다’는 늙은 노매드의 이야기는 길 위의 삶을 사는 이들이 경험으로 터득한 삶의 지혜이자, 가까운 이들을 잃은 다음에도 남은 시간을 버텨야 하는 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 위로가 된다.

혹독한 비극을 겪었을 이들은 차량에서 생활하고, 하루 단위의 노동으로 연명하면서도 여전히 낙천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우연히 들판에서 마주친 사슴의 이야기를 하며 눈을 반짝인다. 미래는 막연하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 영화는 인간은 역경과 마주쳤을 때에도 그 의미를 찾고, 서로 연대하며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놀라운 존재라는 사실에 집중한다. 황량한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연기는 ‘파고’, ‘쓰리빌보드’를 능가하는 궁극의 경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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