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토일드라마 ‘슈룹’(극본 박바라/ 연출 김형식/ 기획 스튜디오드래곤/ 제작 하우픽쳐스)을 집필한 박바라 작가가 작품의 집필 계기부터 기억에 남는 시청평까지, 드라마 팬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를 전했다. 이에 일문일답 형식으로 진행된 인터뷰를 공개한다.
1. 드라마를 끝낸 소감이 어떠신가요?
기획부터 방송까지 꼬박 3년이 걸린 작품이었습니다. 집필하는 동안 다섯 살이었던 딸은 여덟 살이 되고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제 딸아이와 ‘슈룹’을 함께 키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둘 다 생각보다 잘 커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길었던 대장정이 끝나니 우선은 굉장히 시원합니다. 그런데 슈룹(우산)을 바로 접어버리면 좀 아쉬울 것 같아서 아직은 그 그늘 아래 서 있는 상태입니다. 저에겐 첫 번째 작품이라 너무 특별했고 감사한 일이 많았던 작품이라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어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2.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높은 수치를 기록해 2022년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청자분들의 뜨거운 사랑을 예상하셨나요? <슈룹>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방송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분들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세자가 정말 죽는 것인지, 권의관의 정체는 무엇인지 의성군의 친부는 맞는지 등의 질문들을 매일 받았습니다. 그때 “됐다! 반응이 좋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슈룹’이 시청자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궁금증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 수많은 추측들을 했을 테고 이야깃거리들이 많아지면서 재미를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유튜버들이 ‘슈룹’에 깔아놓은 복선들로 예측들을 해주시기도 했는데 지켜보는 작가 입장에서도 “와 아이디어 좋다”라고 할 만큼 재미있었습니다.
‘슈룹’은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작품으로 결말이 나와 있지 않으니 후반부를 함께 예측하고 반전을 즐길 수 있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앞으로도 오리지널 작품을 많이 쓰겠습니다.
3. <슈룹>은 작가님의 단독 집필 데뷔작이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데뷔작을 김혜수, 김해숙 배우 등 명배우들과 함께 한 소감은 어떠셨나요? 캐스팅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떤 기분이셨는지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캐스팅 소식을 접했던 날이 만우절이었는데 정말 믿기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볼을 꼬집었는데도 안 아팠거든요. 그 정도로 “정말? 진짜로? 그분들이 내 작품에 나와주신다고?”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대스타분들이 이제 막 시작하는 신인 작가를 선택해 주신 거니까요.
리딩 때 첫마디가 “출연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였습니다. 진심이었고 앞으로 좋은 글을 써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김형식 감독님께서 캐스팅에 많은 신경을 써주셨는데 캐릭터에 딱 맞는 배우님들을 모셔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요 인물부터 특별출연해 주시는 배우님들까지 제 눈엔 모두 찰떡이었습니다.
4. <슈룹>을 집필하게 된 계기에 대한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작품인가요?
‘오펜(CJ ENM의 창작자 양성 프로젝트)’에 있을 때 ‘궁 안에 상궁 스파이가 나오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으로 ‘조선 파파라치’라는 작품을 기획했습니다.
그런데 소재는 신선하고 재밌었지만 대신 호흡이 짧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시나리오로 쓰기로 하고 주요 인물인 상궁 캐릭터들을 모두 제외하고 나니 중전마마 딱 한 명만이 제 앞에 남아 있었습니다. 아찔했습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아 걱정하다가 ‘내 앞에 서 있는 중전은 대체 뭐가 다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고 ‘중전마마도 누군가의 엄마잖아’, ‘국모가 아닌 엄마의 모습은 어땠을까?’, ‘회초리 들거나 소리도 지르거나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화를 누르며 한숨을 내쉴 수도 있지 않을까?’, ‘계급은 높으니 맘만 먹으면 다 되지만, 그 자리 때문에 위협도 받지 않을까?’, ‘품위를 지켜야 하는 중전이 뛰어야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져야 할까?’, ‘중전에게 사고뭉치 자식들이 있다면?’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자료를 더 찾아보다가 ‘곤지곤지 잼잼’이 왕실교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왕실에선 왕자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시강원이라는 곳에선 스무 명의 스승이 단 한 명의 왕세자를 교육하지만 종학이란 곳에선 한 명의 스승이 수많은 왕자들을 교육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만약에 왕족들의 기본 학문만 배우는 이 종학이란 곳에서 임금이 탄생했다면 난리 났겠는데?!’라는 생각까지 닿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슈룹’이 탄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5. 드라마 제목이 가진 주목성도 컸다고 생각됩니다. 이전에는 ‘슈룹’이란 단어가 생소했는데 우산의 순우리말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사전적인 뜻과 의미적인 내용이 좀 더 쉽게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슈룹의 뜻을 알고 계셨나요? ‘슈룹’이 제목이 된 비하인드도 궁금합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제 취미 중 하나가 우리말과 옛말을 검색하는 일입니다. 제 이름이 한글이고, 당선작도 제목이 순우리말인 ‘너테’입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이미 잊힌 옛말 중에 영어보다 어감이 예쁘고 귀여운 단어들이 꽤 많습니다. 그런 말들이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슈룹이란 단어를 처음 봤는데 운명처럼 ‘슈룹? 슈루룹 펴서 슈룹이 됐나? 어감이 너무 귀엽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제목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화령(김혜수 분)의 우산이 되어주었네요. 요즘에 “비 오니까 슈룹 가져가”라고도 한다 들었습니다. 참 기뻤습니다. 발음이 어려워 제목을 반대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해외 팬분들이 ‘Umbrella’가 아닌 ‘Shroop’이라고 불러주실 때 이 제목을 사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 <슈룹>은 얼마 동안 준비하신 작품인가요? 집필을 위해 어떤 공부를 하시고 취재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집필하시면서 가장 고민했던 스토리가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본 집필부터 방송까지 꽉 채운 3년이 걸렸습니다. ‘슈룹’은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중 왕실교육을 가장 중점으로 공부하고 취재했습니다. 배동 선발전과 경합 부분에서는 문제를 출제하기 위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특히 시강원과 종학 교재를 중점으로 봤습니다. 대사 한 줄을 쓰는데도 논문, 조선왕조실록, 서책을 살펴야 하니 사실 중간중간 한탄도 했습니다. 게다가 모든 내용을 자문까지 받아야 해서 다시는 사극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사극의 매력에 푹 빠져서 썼습니다.
더불어 집필하면서 가장 고민되던 스토리는 권의관(김재범 분)과 대비(김해숙 분)의 최후였습니다. 윤왕후(서이숙 분)의 아들로 형들의 복수를 위해 비극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던 권의관을 ‘악인’이라고만은 볼 수 없으니 그에게 어떤 최후를 줘야 하나 고민됐습니다. 또 본인의 욕망을 위해 많은 이들을 희생시킨 대비는 누가 봐도 악인이니 권선징악으로 징계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사실 현실에선 죄지은 사람들이 더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으니 굉장히 고민됐습니다.
그래서 초고에는 대비를 죽이지 않고 살리는 버전이 있었습니다. 더 바짝 고개 들고 살며 “아무도 날 벌하지 못해!”라는 꼿꼿함으로 죄를 짓고도 타격 없이 살아가는 비극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 결말에 찝찝해했고 저도 시간이 갈수록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비가 과거의 죗값을 치르는 것으로 최종 수정됐습니다. 현실에서는 벌하지 못하는 상황이 더 많지만 드라마에서라도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7. 적통 승계가 원칙인 시대에 제왕교육을 받은 세자와 기초교육만 수행하던 대군 및 왕자들의 상황을 두고 ‘가장 총명한 자를 뽑는다’라는 택현의 방식은 긴장과 위협을 안기는 설정이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흔하지 않았던 ‘택현’이란 소재를 왕세자 경쟁에 접목하게 된 아이디어는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요?
조선왕조실록을 살피다가 서열에 관계없이 어진 사람을 골라 왕위에 오르게 해야 한다는 뜻의 택현(擇賢)(선조수정실록 1권, 선조 즉위년 10월 5일 병술 4번째 기사)을 알게 됐습니다. 보는 순간 뭔가 한 대 맞은 것처럼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저 시대에 ‘자격’이 아닌 ‘자질’을 보려는 시도를 했다는 서열의 틀을 깬 것이 너무 신선했습니다. 능력만 본 것이니까요.
우리나라의 가장 유능했던 임금인 세종대왕을 왕세자로 뽑을 때에도 ‘택현(태종실록 35권, 태종 18년 6월 3일 임오 1번째 기사/ “세자 이제를 폐하고 충녕 대군으로서 왕세자를 삼다” (중략) 한상경 이하의 군신(群臣)은 모두 제(禔)의 아들을 세우는 것이 가(可) 하다고 하였으나, 유정현은 말하기를, 신은 배우지 못하여 고사(故事)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일에는 권도(權道)와 상경(常經)이 있으니 어진 사람을 고르는 것[擇賢]이 마땅합니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위로 두 명의 형이 더 있었으니 서열만 따졌다면 결코 왕세자로 책봉될 수 없었지만 그 파격적인 선택이 멋졌습니다. 다른 시대에도 ‘어진이를 골라야 한다’는 택현이 실록에 꽤 언급되고 있으니 작가로서 눈을 반짝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극에서는 형의 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종학 깔째(꼴찌)로 살아가던 성남대군(문상민 분)이 이제는 엄마와 아우들과 원손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자질을 직접 증명하고 인정받는 과정을 그려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경합이라는 경쟁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결국 자격과 자질을 모두 갖춘 사람이 왕세자가 되어야 하니까요.
8. <슈룹>은 기존 사극에서 볼 수 없는 캐릭터들로 신선하다는 평이 자자했습니다. 무엇보다 ‘궁에서 가장 발이 빠른 중전’이라는 주인공 화령의 설정이 기품이 넘치던 중전 캐릭터와는 아주 상반된 모습이었기 때문인데요. 단지 똑똑하고 지혜로운 것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로 설정을 넓히신 이유가 있을까요?
중궁전 보료 위에 앉아서 아랫사람의 보고만 받는 중전마마를 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역사의 기록을 보면 화재가 났을 때 자리를 비운 임금을 대신해 화재를 진압했던 중전마마가 계셨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지아비에게 갑옷을 입혀 임금을 만들고 왕비가 된 여인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왕이 역사를 쓰는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거대한 질서를 구축했던 조력자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록은 왕의 그림자만 빼고 숨소리까지 기록했다는데 겹겹이 싸인 구중궁궐 안을 들여다보면 온갖 사건 사고를 막고 다니느라 발 빠르게 움직이던 누군가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또한 화령의 캐릭터를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로 설정을 넓힌 이유는 그녀가 권력을 지닌 왕비이기 때문입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반칙을 쓰려는 이들을 막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넘는 자들에겐 불도저처럼 찾아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을 보여줍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제대로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 권력을 이용해 누군가를 지켜주기도 하고 가차 없이 징계하기도 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더 기품 있는 중전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 또한 청하와 초월 캐릭터는 여성, 신분이란 제약 안에서도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어 <슈룹>만의 남다른 시선이 잘 묻어난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 정점은 오갈 데 없는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혜월각’이지 않을까 싶은데. 현대적 사고방식을 지닌 여성 캐릭터, 여성들의 연대를 그린 서사 등을 보여주고자 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여성들의 연대를 따로 그리고 싶은 의도가 특별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여성 계급 중에 가장 높은 중전마마가 주인공이니 기왕이면 강자에게 그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중전마마는 30cm 정도의 비녀를 꽂고 다니는데 그것이 누군가를 지키는 무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가 마음을 어떻게 품느냐에 따라 그것은 무기가 되기도 하고 타인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기도 하는 것이니까요. 화령의 한 손엔 우산이라는 방패가 들렸고, 나머지 다른 한 손엔 비녀인 무기가 들린 셈입니다. 화령은 계급사회에서 제약 안에서 살고 있는 일반 여성이 아니라 권력을 쥐고 있는 국모이니 약자인 사람들에게 동치미 한 사발쯤은 들이키게 해줘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10. <슈룹>에서는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같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은 달랐던 여러 유형의 엄마들이 등장했습니다. 자식이 곧 삶의 이유인 엄마가 있는 반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이용하는 엄마의 모습들도 보여주셨는데, 작가님은 화령 캐릭터를 가장 이상적인 엄마로 본 것일지요?
궁중 엄마들의 캐릭터를 만들 때 기획 단계부터 모든 인물들의 교육관을 만들었습니다. 그중 화령은 가장 유연한 엄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도 가장 많이 하는 엄마지요. 화령은 자신이 생각하는 확고한 신념은 있지만 때로는 자식에 따라 꺾을 때도 있고 변형할 때도 있습니다. 초에 들어있는 심같이 휘어지고 틀어져도 어떤 모양에서도 중심을 잡는 그런 엄마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화령이 가장 이상적인 엄마는 아니지만 작가로서 가장 닮고 싶은 엄마이기는 했습니다. ‘슈룹’엔 ‘부모는 앞서가는 이가 아니라 먼저 가본 길을 알려 주는이다. 자식이 위험한 길은 가지 않게 해야지’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저도 딸을 키우고 있지만 가장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화령에게는 “이 길로 가거라”가 아니라 “그 길은 가봤더니 중간쯤에 웅덩이가 있더라 조심하거라”라는 부분을 넣어주고 싶었습니다. 엄마라 해서, 어른이라 해서 다 맞는 것은 아니고 결국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이며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하는 것이니 그런 부분을 화령이가 사고뭉치들에게 알려줬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화령도 자식이 말썽 부리면 욱하며 소리도 지르는 평범한 엄마일 뿐입니다.
【아래는 엄마들의 캐릭터를 만들 때 설정했던 교육관입니다】
– 화령의 교육관 : 참여교육. 자식들을 이해하기 위해 다각도로 고민한다. 내 아이에게 맞는 교육은 따로 있다.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라!
– 황귀인 교육관 : 전략교육. 정확한 플랜으로 움직인다. 부모는 아이 인생의 열 걸음 앞을 보아야 한다!
– 태소용 교육관 : 방임교육. 자식이 워낙 알아서 잘하니 무조건 자식에게 맞춘다.
– 고귀인 교육관 : 압박교육. 사랑의 매는 있다. 자식이 따라오지 못하면 따라올 때까지 반복한다.
– 옥숙원 교육관 : 밥심교육. 무조건 밥심이다. 밥이 들어가야 힘이 나지. 배도 안 차는데 머리에 뭐가 들어와. 호동군, 많이 먹거라
11. 남과 다른 마음을 가진 계성대군 에피소드도 감동적인 회차로 기억됩니다. 화령은 결국 자식의 마음을 인정해 주고 보듬어주었는데요. 화령이기에 가능한 결정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마지막 계성대군이 궁을 떠나 사는 모습은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요?
독립입니다. 성장한 자식이 부모 곁을 떠나는 의미로 썼습니다. “어마마마… 언제까지 어머니 뒤에 숨어 살 수는 없사옵니다.” 계성대군(유선호 분)이 엄마인 화령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뜻을 밝히는 대사입니다. 이에 화령은 성장한 자식을 눈에 담다가 “우리 환이 다 컸구나…”라는 대사를 합니다. 이전에 화령은 계성대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기도 했지만 진짜 모습을 숨겨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뒤에 숨지 않고 네가 너의 삶을 책임지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성장한 자식을 인정하고 독립시키는 모습이라 해석하시면 되겠습니다.
12. 기존 사극과 색다른 시선을 가지다 보니 고증 오류와 중국풍 논란에 대한 이슈도 있었습니다. 특히 작가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퓨전 사극의 경우 창작의 자유와 철저한 고증의 문제가 엄격하게 따라붙기도 하는데요. 집필을 맡은 작가로서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셨는지요?
‘슈룹’을 집필하면서 한 줄의 대사를 쓰기 위해 수많은 논문과 실록과 책을 살펴보았고, 책문, 종부시, 택현, 신방례, 호슬, 예체, 왕실교육법, 지식법, 사신 수련법, 관상감 관천대, 가장사초, 의창, 배동, 시강원, 종학, 계영배 등 다양한 고유 전통 등을 ‘슈룹’을 통해 소개하였습니다. ‘슈룹’이라는 제목 역시 순수 우리말로 고안하였고요. 또한 ‘슈룹’에서는 아름다운 한복과 비녀는 물론 전통적이고 비견할 수 없는 멋진 풍경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김치 등을 비롯한 한국 고유의 음식도 소개됩니다. 해외에서 ‘슈룹’을 향해 호평을 보내준 데에는 이러한 다양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대인들 대부분이 외국어 교육에 많은 공과 시간을 소진합니다. ‘슈룹’ 역시 교육을 소재로 하는 만큼 외국어를 빼놓을 수 없었고 기획 초반에는 그 당시 대표 외국어였던 중국어를 능통하게 하는 황귀인 등의 설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청의 불편함을 최소화로 하기 위해 여러 설정은 제외 및 수정하였으나 ‘물귀원주’라는 자막이 남는 실수가 있었고, 방송 즉시 수정 조치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다시 한번 불편을 끼쳐드려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논란이 됐던 ‘태화’는 고려 시대부터 사용해 온 아주 흔한 한자이며, ‘슈룹’ 속 모든 명칭들은 제작 과정부터 전문가에게 한자 자문을 받은 것입니다. ‘본궁’이란 단어 또한 황원형이 감히 중전이 말하는데 끊는다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본인인 중궁(=중전)’의 말이 안 끝났다는 의미로 사용하였을 뿐입니다. ‘슈룹’엔 다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한국 고유의 것이 나옵니다. 열심히 찾아 준비한 만큼 화면에 나오는 한국풍을 맘껏 즐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판과 잣대, 그리고 이로 인한 개선도 관심의 연장선이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더욱 치열하게 고민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그 외 저뿐 아니라 저의 가족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악의성 짙은 비방과 근거 없는 허위 사실 유포의 행위 등은 자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퓨전 사극은 자유로운 상상력이 있어야 기획과 제작이 가능한 장르입니다. 상상력의 범주에 놓여있는 내용에도 지나치게 엄격한 고증의 잣대를 대면 상상력이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작가님들이 퓨전 사극이라는 장르에 도전하고 또한 활발히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저 역시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13. 배우들의 연기를 어떻게 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전무후무한 중전 캐릭터를 만든 김혜수와 무소불위 권력자를 오롯이 표현한 김해숙의 대치 연기는 늘 압도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열등감이 내재된 군주를 표현한 최원영의 입체적 연기 또한 인상적이었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셨던 캐릭터의 모습과 싱크로율이 잘 맞은 배우는 누구인지, 이와 반대로 예상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배우는 누구였는지도 궁금합니다.
‘슈룹’을 방송으로 보면서 ‘정말 난 복이 많은 작가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화령을 연기해 주신 김혜수 배우님은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겼다가, 울렸다가, 카리스마 있다가 또 부드럽다가 위트도 있는 화령의 모습을 너무 잘 표현해 주셨습니다. 특히 5회 세자가 죽을 때 오열하는 화령의 연기를 보고 김혜수 배우가 아니라 정말 자식을 잃은 화령으로 보였습니다. 그날 눈이 퉁퉁 부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대비마마이신 김해숙 배우님이 계셔서 시너지 효과가 더욱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배우님이 제 대사를 읽어줄 때 희열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화령과 대비가 붙을 때는 모든 내용을 아는 데도 몰입도가 대단했습니다. 화령과 대비 씬은 모든 씬들이 좋았지만 1회 후반부에 아픈 세자를 앞에 눕혀놓고 하는 두 여인의 씬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모친과 아내 사이에서 이호가 중심을 잘 잡아 준 것 같습니다. 임금의 고뇌와 지아비로서의 감정, 자식과 아버지로서의 입장을 모두 다르게 표현해 주신 최원영 배우님께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또 왕자들과 대신들 후궁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드라마를 빛내주셔서 너무 기뻤습니다. 특히 상궁라인의 신상궁(박준면 분), 남상궁(이정은 분), 오상궁(유연 분)은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해주셨고, 캐릭터 싱크로율 1위는 황원형 대감인 김의성 배우셨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배역은 고귀인(우정원 분)과 계성대군(유선호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남대군을 해준 문상민 배우도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었습니다. 다른 왕자들도 보는 내내 흐뭇했습니다.
14. 작가님이 생각하는 명장면 혹은 명대사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집필할 때보다 더욱 인상 깊게 보신 장면도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매번 최선을 다합니까? 피곤해서 못 삽니다”, “스스로 만족한다면 꽉 채우지 않아도 썩 잘 사는 것이다” 저도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사람이라서 이런 말들이 좋습니다. 굳이 나잇값을 하며 살아야 하고 남들과 비슷한 속도로 살아갈 필요는 없으니까요. 저는 긍정적인 사람이라서 세자빈인 청하(오예주 분)의 캐릭터와 가장 흡사합니다. 대비처럼 오금이 저리는 무서운 사람이 있어도 타격 없는 캐릭터입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3회 엔딩입니다. 우산을 함께 쓰고 가는 화령과 계성의 뒷모습인데요. 3회가 끝나고 김형식 감독님께 전화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음악, 화면, 배우분들의 연기, 그림자까지, “네가 어떤 모습이든 내 자식이야”라는 말을 건네며 계성대군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화령의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고 어깨가 흠뻑 젖은 우산 든 엄마와 우산 속,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자식의 모습이 ‘슈룹’의 함축적 이미지로 보였습니다. 자식에게 기운 엄마의 우산이, 들이치는 비에 다 젖어가는 엄마의 어깨가, 그리고 아들에서 딸로 변하는 수채화 같은 그림이 몽환적이고 아름다웠습니다. 3회 엔딩이 끝난 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여운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신의 자식은 아니지만 심소군(문성현 분)을 감싸는 계영배 씬과 유생들을 설득하는 화령의 씬, 또 성남대군이 박경우(김승수 분)를 설득하기 위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씬이 기억에 남습니다.
15. <슈룹> 대본집 출간도 앞두고 있습니다. 화면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어떤 지문과 대사로 이뤄졌는지 살펴보는 재미도 있을 텐데요. 대본집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이벤트들도 있을까요?
대본집에는 세자(배인혁 분)가 작성한 병상일지와 과거시험 보다 어려웠다(?)는 배동 선발전의 왕자들 답안지도 실려 있습니다. 호동군(홍재민 분)의 답안도 꽤 웃기고 재미있으니 확인해 보세요. 드라마에는 다 실리지 못한 미공개 부분이 꽤 있습니다. 편집 과정을 거쳐 위치가 이동한 장면들도 있는데 대본집에는 수정하지 않고 일부러 그대로 놔두었습니다. 어디가 달라졌고 어떤 장면이 더 있었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소지문을 꽤 자세히 쓰는 편인데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시면 극이 더 입체적으로 보이실 겁니다.
16. 시청자 반응도 확인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댓글들을 보신다면 시청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과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저는 SNS, 드라마톡을 모두 봅니다. 두 번째 작품을 위해서라도 제가 쓴 내용 중 어느 지점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단점을 보완하지 않고 제 장점을 좀 더 살릴 생각입니다. 그래서 재미있어하시는 부분들을 일부러 더 찾아서 봤습니다. 드라마톡에 계신 ‘슈님’(슈룹 팬들을 지칭하는 애칭)들과 친해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시청평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제작비는 직접 벌어올 테니 시즌 2를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장정을 마쳤는데도 다음이 궁금하다는 건 작가에게는 너무 기쁜 일이니까요.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은 ‘암에 걸리셨는데 ’슈룹‘을 보며 견딘다’는 말과 함께 ‘후반부로 갈수록 재밌다’는 댓글이었습니다. ‘슈룹’이 누군가의 슈룹이 되어주는 기분이 들었고 글을 놓지 않고 계속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7. 작가님이 생각하는 슈룹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믿는 구석’입니다. 비가 와도 두렵지 않고 누군가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느낌, 저에게 그런 존재는 ‘엄마’입니다. 저도 엄마가 되었지만 제 자식에게 그런 믿는 구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딘가에서 까불어도 실수해도 다쳐도 내가 든 슈룹 아래 와서는 내 아이가 다시 눈치 보지 않고 까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우산을 안 잃어버리는 유일한 방법은 그날 계속 비가 오는 것입니다. 계속 들고 있어야 하니까요. 사실 비는 싫지만 엄마가 제 곁에서 오래오래 슈룹을 들고 계셔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8. 마지막으로 <슈룹>을 시청해 주신 분들을 향한 인사 말씀과 향후 작품 계획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드라마톡에 있는 내용을 모두 읽어 보았습니다. 슈모닝으로 시작해 슈나잇으로 끝나며 ‘슈룹’을 사랑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슈님들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또 커피숍에서도 기차 안에서도 길을 지날 때도 ‘슈룹’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너무 감사해 안아드리고 싶은 걸 꾹 참았습니다. 해외에서도 평이 좋고 인기가 많아 기쁩니다.
‘슈룹’을 보고 한복, 비녀, 소품, 한국의 경치에 관심을 가지신다고 들었습니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순위를 보고 ‘내가 계속 글을 써도 되겠구나’라는 힘을 얻었습니다. ‘슈룹’을 아껴주시고 시청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드라마를 계속 쓸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아직 제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