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설탕 탄생···눈처럼 하얀 희망이 쏟아졌다

1화. 국내 최초 설탕 탄생···눈처럼 하얀 희망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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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맛을 책임지는 재료는 수만 가지가 됩니다. 그중 우리 식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설탕’인데요. 요리의 과학자 해럴드 맥기는 “평범한 설탕조차 비범한 음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설탕은 감미를 가진 재료일 뿐 아니라 섬세한 맛과 여러 가지 용도를 가진 식자재인 것이죠.

그렇다면, 국내에서 설탕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언제일까요? 우리나라 최초의 설탕 탄생의 주역, CJ의 이야기를 통해 만나봅니다.

눈처럼 쏟아진 설탕 한 줌을 입에 털어 넣었다. 다디단 설탕 맛이 느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탕 생산이라는 역사적 순간이 다가온 1953년 11월 5일. 제일제당 부산공장에는 긴장감만이 가득 맴돌았습니다. 직원들은 삽을 들고 투입구로 원당을 퍼 넣었습니다. 하루 생산량 25t 설비 앞, 이병철 사장이 스위치 버튼을 누르자 ‘우웅’하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원당이 커다란 기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맨손으로 시작한 도전정신의 결정체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흐른 그때! 하얀 결정체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회사 설립부터 설비 도입, 자원 확보, 공장 건설, 시운전까지. 지난 6개월간 우리나라 최초로 현대식 시설을 갖춘 제당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모든 사력을 다한 과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무슨 일에나 제일의 기개로

1953년 6월 3일, 부산 대교로의 삼성물산 사옥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제당기업인 ‘제일제당’이 공식 출범했습니다. ‘제일제당’이라는 사명에는 알기 쉽고 부르기 쉽다는 이유뿐 아니라 ‘무슨 일에나 제일의 기개로 임하자’라는 큰 다짐이 담겨있었는데요. 제일제당은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 건설된 최초의 현대적 대규모 생산 시설로, 한국 경제의 제일 주자로서 국가와 민족의 번영에 크게 기여해 나가자는 굳은 의지와 힘찬 도전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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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공장 건설은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이었습니다. 삽과 곡괭이, 가래로 땅을 파고 퍼낸 흙은 지게로 져 나르면서 기초공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철재는 모두 중고품이었으며 건축자재나 공장 건설에 필요한 자재 또한 볼품없는 수준이었죠.

이렇게 설비와 자재 모두 부족함이 많았음에도 직원들은 한국 최초의 제당공장을 건설한다는 일념 하에 전 사원이 힘을 보태며 공사에 속도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53년 10월, 제일제당 부산공장은 악전고투의 시간을 거쳐 무려 두 달이나 공기를 단축시키며 완공되었습니다. 이때 부산공장의 생산능력은 일일 25t으로, 당시 기준으로 최신식 설비를 갖춘 대규모 공장이었죠.

우리 손으로 만든 설탕의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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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초의 설탕 생산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간의 연속이었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1953년 11월 5일, 마침내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설탕이 탄생했습니다. 첫날 생산한 설탕량은 6,300kg. 직원들은 ‘제일제당’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찍힌 우리나라 국산 설탕을 직접 옮겨 싣기 시작했습니다.

11월 5일, 바로 오늘이 우리 제일제당의 창립기념일입니다.

발기인 대회를 가졌던 6월도, 창립총회를 가진 8월도 아닌 11월 5일을 창립기념일로 정한 것은 그만큼 첫 생산에 대한 감격이 컸기 때문일 텐데요. 그날 저녁 임원들은 책상 위에 놓인 매출 전표 한 장을 바라보며 폭풍전야와도 같았던 지난날을 회상했습니다. 창립총회를 개최한 날로부터 정확히 97일 만에, 제일제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설탕 생산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100% 설탕 국산화를 위한 결단

1950년대 초반, 설탕은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물품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만큼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었는데요. 실제로 당시 설탕 공급 부족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수입 설탕 가격은 600g당 300환까지 상승했습니다.

제일제당은 최초 생산 직후 설탕 가격을 600g당 48환으로 정했습니다.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가격 인상 논의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병철 사장의 생각은 달랐는데요.

가격 인상보다는 설탕의 수입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병철 사장의 생각에 따라 제일제당은 가격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달고 맛있을 뿐 아니라 가격까지 저렴하기에 그의 예상처럼 설탕 주문은 폭주했죠. 하지만, 수요를 따라잡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1954년 4월, 이병철 사장은 생산 시설 증설을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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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제당의 목표는 일일 생산량 50t으로, 생산능력을 이전의 두 배로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일제당이 생산 시설을 확충하자 수입 설탕의 위세는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953년만 해도 우리나라 설탕 총소비량은 2만 3,800t, 수입의존도는 97.5%로 거의 100%에 가까웠는데요. 제일제당의 등장 이후 1954년에는 66.7%, 1955년에는 34.3%로 수치가 차차 낮아지더니 마침내 1958년에는 설탕 국산화 비중이 100%에 다다랐습니다.

“제일제당은 수요 증대에 따라 시설을 확장하고, 원가절감을 위해 최신 시설을 도입했다.

불과 3년 만에 설탕 수입대체에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러한 성공은

한국 최초의 선험 자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0% 설탕 국산화에 성공한 제일제당은 이후에도 대대적인 추가 증설을 이어 나갔습니다. 더 이상 수입 설탕은 제일제당의 경쟁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새로 설립되기 시작한 국내 제당사들이 경쟁자로 떠오르기 시작했죠.

설탕 전쟁이 시작되다

1954년부터 시작된 7개 사의 설탕 전쟁, 초반에는 경쟁이 그다지 치열하지 않았습니다. 후발 주자들은 공장 설립 이후에도 기술적인 문제와 원당 확보 등으로 인해 시설을 가동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곧 전 제당사가 생산을 시작하면서 그 규모는 15만t을 넘어섰는데요. 이는 우리나라 전체 설탕 수요의 2.5배에 달하는 규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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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에 들어서면서 설탕에 대한 물품세는 큰 폭으로 인상되었습니다. 600g당 20환이었던 물품세가 60환으로 3배 이상 인상되면서 설탕 소비자 가격 역시 정백당 70원에서 205원까지 3배가량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급격한 설탕값 인상은 곧 수요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1957년 소비량은 1년 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급감하게 되었고, 공급은 넘치지만 수요가 격감하니 제당사들의 경쟁은 더욱 과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고의 품질로 이룬 부동의 1위

제일제당은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품질 개선에 힘을 쏟았습니다. 시설 확장은 물론 1957년 6월, 업계 최초의 시험연구실을 신설했죠. 연구원들은 생산단계의 불합리한 요소를 개선하는 한편 더 좋은 설탕을 생산하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반면, 경쟁사들이 걸어간 길을 달랐습니다. 이들은 가격 경쟁을 선택하며 제일제당보다 20% 이상 저렴한 가격정책을 들고나왔는데요. 거의 덤핑이나 다름없는 가격에 제일제당의 매출액은 설립 이후 처음으로 하락하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지만, 제일제당은 굴하지 않고 시장 질서를 바로잡고자 노력했습니다.

1958년, 무리한 시설 확장과 덤핑 판매로 여러 제당 회사들은 차례로 폐업의 길을 걸었습니다. 1957년부터 시작된 제당전국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제당업계는 비로소 안정화를 찾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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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제당은 업계 선두의 위치임에도 시설 개선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1960년 제4차 시설 확충이 시작되었으며 이때는 생산량 증대를 위함이 아닌 품질 향상과 공정 합리화에 주안점을 두고 진행되었습니다. 1953년 최초의 공장 건설 이래 네 차례에 걸친 확장. 그 결과 제일제당의 생산 능력은 일산 265t으로 늘어났으며, 국내 제당 기업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1953년 산업의 불모지였던 땅에 제당업을 일으킨 지 17년 뒤인 1970년, 제일제당은 매출 100억 원을 달성함과 동시에 연간 설탕 생산 10만t을 돌파하며 국내 제당산업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탕 생산부터 ‘설탕’ 하면 ‘제일제당’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까지. CJ는 명실공히 국내 설탕 업계 부동의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지금도 최초, 최고, 차별화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CJ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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